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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7시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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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13 철수의 이야기(1)

[간증]13. 철수의 이야기(1)
 

오지 산골에 있는 종가 집 10 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난 사내 아이가 있었다. 세 명의 누나들은 태어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그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어머니는 9번째로 아이를  임신하고 태몽을  꾸었는데 시골 담장에  호박 넝쿨이 뻗어 있었는데, 그 호박 넝쿨에 작고 동글동글한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꿈을 꾸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까 마치 태몽에서 본 그대로 작고 동글동글한 사내 아이가 태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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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란 전()후 어려운 시대에 아이들은 많고, 먹을 것은 없고, 더욱이 시 부모님을 모시고, 시 동생들과 대 식구가 함께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어려운 삶의 환경이었겠는가마을이 산골 오지이기 때문에 천수답 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가뭄이 올라 치면 벼 농사를 하기가 어려운 지역이었고, 대부분 밭 농사를 주로 하는 지역이었다

종가집이라 1년에 15회 이상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야 했고, 집안의 대 소사 일을 모두  치러야 했으니 부모님의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런 중에서도 아버님이 교육열이 있으셔서 제일 큰 아들은  종가 집 종손이기 때문에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을 시키셨다교통이 어려운 시절이라 시내 가까운 곳에 하숙 집을 얻어 그 곳에서  학교를 다니도록 했으며 어려운  살림에도  50 년대 말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종가 집 장손으로 온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아들이었다. 그 당시 한 집에는 장손과  나이가 비슷한 삼촌이 있었는데, 그 삼촌은 공부를  초등 학교만 마치게 하고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종가 집 장손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어렵사리 공부를 시켰던 것이다

이제 그처럼 기대하던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그리고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 집안에 큰 일을 감당하리 라고 모든 집안 사람들이 기대를 했건만그만 안타깝게도 그 아들은 군대에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려운 시대상황인지라 정확한 사인도 알수 없이 유명을 달리했고, 눈보라가 치는 추운 겨울 날 한 줌의 유골이 되어 금의 환향한 것이 아니라 눈물의 귀향을 하게 되었고, 쓸쓸하게 선산 한 모퉁이에 자리를 하게 되고 말았다

부모님의 충격이야 어찌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었겠는가아버님은 그 충격으로 며칠 동안 시력을  잃고 사물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그러니 여자인 어머니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그러나 자식이 먼저 떠나도 같이 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그 큰 슬픔을 억누르고 다시 종가 집 며느리로, 아내로, 어머니로, 그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야 했으니 어머니의 고생이야 말로 어찌 다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 친정은 비록 깊은 산골이었지만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  논들이 많아 일하는 분들을 두실 정도로 남부럽지 않은  처녀 시절을 지내셨다고 한다유복한 집 둘째 딸로 태어나놀기도 좋아하고, 부족함이 없이 사시다가 아버님 17어머님 19살 때에 결혼을 하게 되어서 시집을 오셨는데, 시집을 오실 때 친정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오는데 큰 제를 넘어오는데 경사가 급하니까 가마를 타고 있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울면서 시집을 오셨다고 한다.  

체구가 작으시고, 고생을 모르고  생활하던 분이 가난한 종가 집 맏 며느리로 오셨으니  얼마나 여러 가지로 힘이 드셨겠는가. 그래도 인내하시며  종가 집 맏 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역할을  잘 감당하신 분이시다. 어머니는 성격이  밝으셔서 어려운 살림 살이를 잘 꾸려나가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들이 많다보니 이런 저런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시다. 아버님은 그 당시 한학을 공부하신 분이시라  마을에서 구장(현재 이장) 일을 오랫 동안 해 오셨다지금은 이장을 서로 하려고 한다이유는 월급(?)도 만만치 않고그에 따른 반대 급부를 얻는  것이 많기 때문에 서로 이장 일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장도 주민 투표를 해서 선출하는 마을도 있다. 그런데 옛날 구장은 마을 사람들이 주는 사례가 가을에 벼 한말여름에는 보리 한말이 전부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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