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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7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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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추억속의 한가위”

“어릴 적 추억속의 한가위”     

이제 내일 모레면 민족고유명절인 한가위 추석명절입니다. 벌써부터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귀성객들이 그리운 고향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어간에 민족대이동이 있을 것입니다.
 
명절 전에는 귀성차량으로, 명절 후에는 귀경차량으로 고속도로는 물론 모든 국도까지도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입니다. 물론 기찻길, 하늘길, 바닷길도 역시 붐빌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명절 때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 형제를 만나기 위해, 그리운 고향을 향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향은 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그립고 그리운 추억의 장소인 것입니다. 어릴 적 부모형제들이 다 함께 모여 살던 곳이요, 죽마고우(竹馬故友)들이 함께 뛰놀던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고향(故鄕)!’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입니다.  더욱이 명절 때의 고향의 정취는 그야말로 더더욱 그리워지는 모습입니다.

어릴 적 추석명절이 다가오면  명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50. 60년대 어려운 시절이지만 그래도 명절이 다가오면 부모님께서 해마다는 아니지만 새 옷과 신발을 사주시기에 새 옷을 입고, 새 신발을 신고 조금은 어색하지만 기분이 들떠서 좋아했던 기억이 아련히 생각이 납니다. 지금이야 명절에 상관없이 필요하면 새 옷, 신발을 사서 입고 신지만, 옛날에는 유일하게 명절 때만 새 옷을 한 벌 입는 때였습니다.  그런 명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해는 그만 새 옷을 사주시지 아니해서 마음이 상해하며 명절을 풀이 죽어 지낸 때도 있었습니다. 형제 들이 많다보니 어려운 시절에 자식들 모두에게 새 옷을 사 주실 수 없으니까 그 중에 몇 명만 새 옷을  입고, 나머지는 새 옷을 입지 못하고 형이 입었던 옷을 물려 입을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님들이야 사랑하는 자식들 모두에게  새 옷을 사서 입히시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만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는지라 그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셨으니 아마도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러하신 부모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당장 새 옷을 입지 못한 것 때문에 골이 난 모습으로 명절을 지내었으니 철부지의 모습인 것이었지요.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종가집이기 때문에 사촌집 식구들, 육촌집 식구들까지 모두 모이기 때문에 종가 집 며느리 되시는 어머님은 명절 음식을 만드시기에 명절 항상 분주하셨습니다. 형제들이 육남매인데 위로 아들만 다섯이라 음식 장만하시느라 분주하신 어머님을 도와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머슴애들이 무엇을 도와 드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곁에서 잔심부름이나 하고 부엌아궁이에서 불을 때는 일이나 겨우 도와 드리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다행하게도 추석 명절은 가을 곡식들이 막 여물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래도 풍성하게 음식을 장만하는 것입니다. 햇고구마도 캐오고, 풋콩도, 옥수수도, 햇밤도, 감도 따서 마당에 만들어 놓은 퇴비더미 속에 풋감을 넣은 항아리를 넣어 우린 감을 만들기도 하고, 갓 익은 대추도 따고,  먼저 익은 벼도 미리 수확해서 나락을 솥에 쪄 말려서 절구통에 절구질을 해서 올기(찐)쌀을 만들어 올기쌀로  밥을 짓기도 하고, 송편도 만들고, 여러 가지 전을 붙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풍성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추석명절의 고향의 모습입니다.

아버지께서 깊은 산속에서 천연 버섯을 채취해 오시면 어머님께서 들깨를 갈아서 넣으시고  버섯국을  끓이  시면 얼마나 맛있는지 고깃국은 명함을 내놓을 수 없는 맛 이었습니다.  아침에는 대 가족들이 차례를 지내고 조상님들 산소를 향해서 성묘를 떠납니다. 2, 30명의 대 가족들이 산소들을 찾아다니며 성묘를 합니다.

지금은 차량들을 이용하여 성묘를 다니지만 옛날에는 걸어서 성묘를 다녔고, 그 후에는 경운기를 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성묘를 모두 마치면 개구쟁이들이  뒷동산에 모여서 작은 고무공을 나무 베트 대신 주먹으로 치며 하는 야구 시합을 하면서 놀기도 하고, 학교 운동장에 가서 지금처럼 축구공이 없으니까 역시 작은 고무공으로 축구 시합을 하기도 하며 추석 명절을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아련한 어릴 적 고향에서의 추석명절이 그리운 시간입니다.

먼 이국(異國)에서 한가위를 잘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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