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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7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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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신앙글 산책 (2)
 

*좋은 신앙글 산책은 설교, 성경공부 인도 자료나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수필, 신앙, 간증, 시 등의 저서등에서 발췌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본지 칼럼리스트 문국진 성도가 씨존 독자들을 위해 수고해 주십니다. (편집자 주).  

출전: 윌리엄 바클레이 저, 전풍자 역, 󰡔그리스도인의 365일󰡕, 종로서적 (본문 내에 첨부하는 필자의 글은 [감상]으로 첨부해두었다.)

행복한 생애를 사는 데는 다음 3가지 요건이 필요하다--1) 희망의 대상, 2) 일, 3) 사랑의 대상 등.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1) 희망의 대상: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은 꽤 기분이 좋았던 모양으로, 제법 호탕하게 부하들에게 선물을 베풀고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재산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영지를, 다시 또 다른 부하들에게는 명예 있는 지위를 주었다. 이런 일을 보고서 대왕의 친구가 말하였다--“이런 일을 하게 되면 폐하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게 아닙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하고 대왕은 대답하였다. “가장 소중한 것은 틀림없이 남겨 두었네. ‘희망’을 남겨 두었으니까 걱정없네.”

우리가 희망에 살지 않고 추억 속에서만 살 때에, 곧 과거의 추억이 내일의 생활에 대한 자극이 되지 못하고, 삶이 감옥에서의 도피가 될 때, 우리 인생의 마지막은 가까워졌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감상] 희망을 품고 있으니 삶을 지속시켜갈 힘을 얻는 법이다. 사회 속의 인간의 삶은 어쩌면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표현하였었지만, 우리의 인생이 절망만이 가득하다면 너무나 아찔할 것 같다. 절망을 걷어내고 한 줄기라도 실낱같은 희망을 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삶을 이어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음산한 절망의 기운을 걷어내고, 밝고 활기찬 희망의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그 삶의 과정 자체가 곧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2) 일: 제임즈 어게트는 어느 나이 많은 막일을 하던 부인의 임종 때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늙은 여자는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알고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나를 더 이상 불쌍히 여기지 마세요. 제발 불쌍히 여기지 말아주세요. 지금부터는 언제나 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러나 직업을 놓친 적이 있는 사람이라든가, 질병 등의 이유로 인해 움직일 수가 없게 되고,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느리고, 모든 일이 텅 빈 것같이 생각되는 경험을 한 사람은, 일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감상]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더구나 자기 자신의 장점이라든가 자아의 실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복 있는 사람인가! 현대인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일할 때에 열심히 일한다고도 하지만, 그 일하는 시간, 즉 노동의 시간이 자기 자신과 한없이 동떨어진 그러한 일의 성격이라면, 매우 큰 고역이 될 것이나, 반대로,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또 나의 일이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러한 일에 종사할 수 있다면, 그는 행운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보람이 되고 또 노력의 댓가가 정당히 주어진다면 우리가 흘리는 그 노동의 땀방울은 그 얼마나 소중한 것이 되겠는가! 하와의 애 낳는 수고가 결코 고통 자체만은 아니듯이, 또 밭 가는 아담의 수고도 결코 고생스런 일만은 아니듯이, 우리의 수고는 비록 힘든 노역의 과정일지라도, 우리 자신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또 그 일의 과정이 바로 우리 자신의 인간적 실현의 과정이 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창조적인 일 속에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3) 사랑의 대상: 브라우닝은 이렇게 쓰고 있다--“그는 그 여자를 보았다. 그 여자는 그를 보았다. 그 때 갑자기 생명이 눈 떴다.”

사랑이 삶 속에 들어올 때에 새로운 떨림, 새로운 겸허,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새 가능성의 의식이 찾아든다. 사랑이 태어날 때, 삶과 세계는 새로운 것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

[감상]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는 유행가 가사 중에 아마도 70% 이상이 ‘사랑’을 그 주제로 삼을 정도로 ‘사랑’이란 것은 대중적인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이고도 중요한 삶의 요소가 아닐 수 없으리라.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도 반드시 ‘아가페’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즉 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만이 아니라, ‘에로스’적인 사랑, 즉 인간관계 속에서의 사람들 사이의 상호간 애정도 필수적인 삶의 한 요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나의 주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또 나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그 사실은 우리를 더욱 힘 있게 하고, 강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풍요로운 행복감을 누리게 만들지 않는가!

--희망을 품고 사는 것, 즐거운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안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가를 말해주며, 행복은 다른 어떤 머나 먼 것에 있기보다는 이러한 소박한 것들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겠다.

--“지금은 너 자신의 밭을 열심히 갈아야 할 때이다.”--볼떼르, 󰡔깡디드󰡕 중에서/// 1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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