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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6시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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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대한 섭리: 골리앗을 격퇴한 다윗
 

[문국진의 신앙에세이]
성서 본문: 삼상 17: 45-46

너무도 유명한 골리앗과 다윗 간의 싸움 이야기, 초등부 시절에 성경학교에서 들은 이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진진하였고, 다윗의 활약과 그가 골리앗을 쳐부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통쾌하기까지 하였던 기억이 있다. 동화 속의 이야기와도 같은 이 한편의 드라마에는 사실 위대한 하나님의 손길, 그 섭리가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우선 양치는 목동이었던 다윗이 이스라엘과 불레셋 간의 전투 현장에 가게된 것 자체가 신비스럽게 보인다. 즉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볶은 곡식 한 에바와 떡 열덩이를 가지고 진(陣: 전투 현장)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라”고 한 아버지의 심부름 때문에 다윗은 골리앗에게 직면하게 되었고, 벌벌 떨고만 있던 이스라엘 군사를 대신하여 자신이 골리앗을 상대하겠다고 나서게 되었고(형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골리앗을 꺾은 뒤 일약 스타로 부상하여 끝내는 왕위에 추대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이야기 속에는 어쩌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손길이 숨겨져 있던 것은 아닐까? 한 사람의 목동이 불레셋의 거대한 장군을 무찌르고, 사울왕을 제치고 왕이 되는 이 이야기의 전 과정에는 어쩌면 하나님의 ‘예정조화’의 원리가 담겨져 있는 듯 보인다.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 우리는 사무엘상의 이 이야기 속에서 그 어떤 거룩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첫째, 다윗은 처음에 우연한 계기로 싸움터에 가게 된다. 그것은 단지 심부름이었지만, 거기에는 아버지 이새를 통하여 운행하신 하나님의 인도와 끌어당기심이, 이끄심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놀라운 힘이 인간의 가시적인 행동 속에서 그 행동을 이끌어내고, 인간을 통하여 스스로를 관철하는 것을 보게 된다.

둘째, 다윗의 놀랍고도 뛰어난 돌팔매질 솜씨는 원래 평소부터 훈련되고 단련된 솜씨였다. 즉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들로부터 양을 지키기 위해 그는 돌팔매질을 연마하였고, 평소의 이러한 실력이 민족이 위기에 처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고만장한 골리앗 및 불레셋 군대 앞에 극도로 의기소침하게 되어 모두가 다 노예가 될 전체 민족의 절대절명의 역사적 위기의 순간을 위해 하나님은 평소부터 다윗을 예비하신 것이다.

셋째, 꼬마 다윗이 스스럼없이 나서자, 형들이 만류한 사실을 주목해보자. 어떤 새로운 결단에서나 장애와 반대가 있게 마련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그 일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장애물이 뒤따르곤 한다.

사실 다윗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있는 형들의 생각은 매우 인간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즉 다윗 너는 양이나 치지 무엇 하러 전쟁을 구경하러 오느냐, 한낱 소년에 불과한 네가 어찌 “어려서부터 용사인” 거대한 저 불레셋 장군을 상대하겠느냐, 형들과 사울왕의 이러한 의문에 다윗은 이렇게 반문한다---“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불레셋 사람이리이까....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여기서 다윗은 인간적인 판단을 넘어서서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넷째, 그리하여 다윗의 판단과 언행은 오직 하나님을 모욕하는 세력으로부터 “하나님의 군대”를 수호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되고 있다. 다윗의 떨쳐 일어섬은 그 목적이 바로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전쟁의 영적인 차원에서의 의미는 곧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萬軍)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라는 것이었다. 즉 우상숭배자들의 승리냐, 여호와의 승리냐 라는 절대 절명의 대립이었던 것이다.

다섯째, 다윗은 사울왕이 권유하는 무거운 갑옷과 투구와 칼을 벗어던지고 자기에게 적합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그에게 무거운 갑옷은 단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수단과 방도로 사태에 임하는 것, 바로 다윗이 선택한 돌멩이 하나가 그의 놀라운 치명적인 무기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수호하기 위해서 떨쳐 일어선 다윗의 그 돌멩이 하나에 하나님의 힘이 함께 하신 것은 아닐까? 거기에 하나님의 힘이 서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

---거구 골리앗을 격퇴한 다윗의 신앙적 의지는 바로 역사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 작용하심을 결정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데에 있었다. 다윗의 다음의 출사표는 바로 이 점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내가 너를 쳐서....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노라.” 역사적 다윗의 이 용맹으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의 영예가 지켜질 수 있었고, 그 분이 역사 속에 살아계심이 만천하에 여실히 드러났던 것이다./// 1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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