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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6시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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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의 신앙에세이] 다른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성서 본문 신 5: 7

구약 율법의 초석이었던 십계명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실천덕목이자 하나님의 지상명령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전반부 4계명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후반부 6계명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사회에서 지켜야 될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신명(神命) 중 첫째 계명은 다음과 같다--“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첫 번째로 금하시고 있다. 소위 ‘유일신 신앙’의 원칙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1차적인 근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우상이나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을 질투하신다고 말하신다--“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신 7: 16) 금송아지를 섬기고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작태에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무서운 심판으로 대응하신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현대인에 있어서도 많은 “다른 우상들”을 섬기고 추종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주제에 대한 것이다.

1) 물질만능주의, 물질에 혈안이 된 현대인: 현대자본주의사회는 ‘물질지상주의 혹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적이 된 사회라 할 수 있다.

즉 현 사회는 ‘물신(物神)’을 숭배하는 사회이며, 화폐가 최고의 가치가 된 ‘화폐물신주의’의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하시길, “사람은 하나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은 우리가 물질추구에 빠져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세속의 가치에 매몰되는 것을 하나님 스스로가 경계하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곧 면죄부 강매 등으로 중세교권주의가 물질적 타락에 빠진 것을 비판하고 나선 새로운 신교 프로테스탄티즘의 기본정신이 근검과 청빈으로 된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교회 건물을 크게 짓고, 물질적 축적과 확장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데, 이는 물질에 대한 기독교신앙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2) 과학지상주의나 인간적 물질문명지상주의에 빠진 현대인들: 오늘날 과학기술문명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과학의 물신화(物神化)’와, 물질문명지상주의가 팽배해 있다. 이는 탈중세 이후 전개되어 온 인본주의(humanism)와 자연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것으로, 현대물질문명은 결국 인간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자본주의문명은 환경파괴나 자연오염, 인간의 기계화와 소외 심화, 전쟁과 부익부빈익빈 등 여러 병폐를 낳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과학문명의 이러한 모순은 인간이 하나님신앙을 비웃으며, 자기 과신과 자만에 빠진 나머지, 말세적인 ‘바벨탑’을 쌓는 인간문명의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과 물질문명이라는 “다른 우상”을 섬기는 현대자본주의문명을 지양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편이 하나님의 본래의 뜻에 더 충실한 것이 아닐까.

3) 여러 가지 정신적 이데올로기, 이념의 포로가 된 현대인들: 오늘날 가치판단의 기준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입장에 있어서, 인간이성 중심주의에 근거하거나 다른 여러 이념들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역사에 대한 신앙적 입장과 하나님의 그 섭리하심을 그 중심 잣대로 간주하는 것을 비웃으며, 자기만족에 빠져 있다. 이들도 역시 “다른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다.

4) 쾌락,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 이러한 것들도 들의 풀처럼 한 때 피었다가 시들어 버리고 마는, 유한하고 일시적일 뿐인 덧없는 것임을 성경은 지적하고 있다. 시편 저자가 묘사하듯이, 인간은 덧없고 허상뿐인 것들에 매이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사람들 사이에서 평안을 실현하는 데 더욱 정진해가야 하지 않을까.

더 높은 지위와 명예를 추구하기보다,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겸손한 자세가 더욱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그러한 권력을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남을 섬기고 (“내가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왔다”) 헌신하는 삶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

--물질을 추구하기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1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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