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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6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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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의 신앙에세이

우리 생활 속에서 기적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출 14: 21

신구약을 통틀어 기적 사화는 성경에 많이 나온다. 아니, 기적을 인정치 않고는 성경 한 페이지도 읽어 내려갈 수 없을 정도이다. 태초 이래의 구약의 하나님은 물론, 복음서들은 모두 예수님의 기적(질병 치유)와 비유를 통한 가르침의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눈먼 자가 보게 되며, 문둥병이 고쳐진다. 심지어 엘리야와 예수님은 죽은 자까지 살려내는 기적을 보여주신다. 이를 두고 어떤 목회자분은 예수님이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초능력의 기(氣)의 소유자라고 한 적이 있는데, 아무튼 성경은 이성적인 판단과 해석으로는 도저히 수용불가한 기적들에 관한 기록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본문에도 모세는 완고한 파라오왕(그 완고해짐까지도 하나님이 하신 일로 기록되어 있다)을 굴복시키기 위해 온갖 자연현상들을 동원하여 기적적인 공격을 감행한다.--물이 피가 됨, 개구리, 모기, 등에, 가축병, 피부병, 우박, 메뚜기, 어둠 등의 자연재해에 이어 열 번째 재앙으로 장남까지 잃게 되자 파라오왕은 비로소 손을 들고 만다. 그리고 다시 변심한 파라오의 군대를 바다를 가르는 기적으로 물리친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자연재해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일뿐더러 자연의 주이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인 자연을 지배하시는 자연의 주가 되신다. 초월적인 기적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예수님도 바닷바람을 잠재우는가 하면, 물 위를 걸으시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적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참 뜻은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사람들로 알게 하려 하심”에 있다. 하나님은 ‘엘 샤따이’ 즉 ‘전능의 신’이기 때문이다.

혹 사람들은 성서의 기적들을 믿지 아니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몸으로써의 부활, 온갖 비이성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일으킴을 인본주의자인 그들로서는 도대체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신본주의자들이며, 신적 이성과 신비적 이성의 현존, 즉 신비의 현존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3차원이나 4차원에서 사는 인간이성은 그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신비한 존재나 그 신비한 활동양식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빛이 1초에 지구 7바퀴를 돈다지만, 그 광속보다도 훨씬 더 빠른 원리가 존재한다면, 미래가 현재가 되고, 현재의 물리학적 시간 개념은 더 이상 무의미하게 된다. 인간의 능력과 지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더 높고 심원한 영적 세계가 현존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을 과신하는 과학적 이성의 세계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초월자와 그 영적 신비를 겸허히 수용하고 신 앞에 겸손히 나아갈 것인가? 자기중심과 자만을 버리고, 신이 우리 가운데에서 함께 하신다는 것(=임마누엘)을 기쁨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진정한 하나님 신앙’의 영적 존재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칼뱅(Jean Calvin)은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대로, 그 범위 안에서) 기적을 체험할 수는 있다. 깊은 신앙생활 속에서 신비한 체험을 겪은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세계에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나타나실 수 있다. 천사와 성령으로 그 임재하심과 섭리하심과 작용하심을 드러내시기도 한다.

이러한 초이성적이고 초자연적인 차원의 문제를 비신자는 물론이고 초월을 경험치 못한 신자 중 일부조차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도,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설명하기도 어려운 차원의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도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 우리는 그분에게 끊임없이 다가서며, 그분과 하나 되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동양철학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사람의 노력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세상적인 것이 따로 있고 하늘의 일이 따로 있다기 보다는,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세상적인 것은 무조건 멀리 해야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도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었으니,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진리와 사랑의 빛이 되어 비추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서 온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진력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 아닐까.  1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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