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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6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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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성령의 나타남

 

 

고전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전 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고전 14: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IHOP에 자녀들을 보내고 나서  10명의 유스 아이들을 위해 아내와 한 아이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를 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돌아와서 시키지 않았는데도  매일 저녁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라고 해도 안하던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된다며 공부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며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을 보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특별히 데보라를 위해 기도할때 환상을 보았는데 데보라 얼굴과 함께 전기와 불이 임하는 것을 보고 아내에게 데보라에게 큰 은혜가 임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데보라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작년에는 수양회에서 죠수아를 하나님께서 종으로 부르셨는데 이번에는 데보라에게 예언의 은사가 임하는 것 같아…  부르시는 것 같아. “  그런데 지난 주 데보라의 간증을 읽어보고 알게된 바,  비행기로 3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내게 임한 체험이 그대로 데보라에게 임했던 것을 보고는 너무 깜짝 놀라고 흥분이 되었다.

 하나님께선 구만리 장천에 가만히 계신 분이 아니시라,  성령 하나님으로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함께하시고, 만져주시고, 변화시켜 주신다는 사실보다 더 흥분되는 것은 없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성령의 역사보다 더 흥분되는 것은 없다.

그런데 대개 교회에서는 이런 이야길 안한다는 것이 문제다.  왜 칼비니즘을 신봉하는  80퍼센트 이상이나 되는 한국 장로교에서는 성령의 나타나심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를 해도 눈을 부릅뜨며 이단 삼단 사단하며 비방을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자.  예수님때와  초대교회에서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 

카타콤 지하 묘소에서 성령님께서 저들을 도와주시고 만져주시고 위로해주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면, 어떻게 무덤 속에서 5세대가 믿음을 유지하고 살 수  있었겠는가?  분명히 저들이 기도할때마다 저들을 간섭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왜 성령의 역사가 없어졌는가 ?  313년 콘스탄티노플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더이상 지하 묘소에서 예배할 필요가 없어졌다. 

앉아서 기도하면서 성령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자연히 예배는 틀에 밖힌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예식적인 예배가 되었다.  예식은 나쁘지 않지만 예식주의에 빠지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묵도 찬양 말씀 기도 55분 가운데 끝나는 예배는 라면 예배가 되기 쉽다. 라면은 끓여먹기 쉽지만 영양가는 없다.  밥은 뜸들이고 반찬 만들고 시간이 걸리지만 영양가가 있다. 

카톨릭 시대의 예식적 예배 중에도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이들은 산골로 굴속으로  들어갔다 . 중동지방에 많은 수도원들이 사막에 세워졌다. 이들이 열심히 기도하였을 때, 성령의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양손에 피가 나는 등 예수의 체험이 그대로 일어나기도 했다. 

문제는 성령의 역사가 신비주의에 쭉 빠져서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매달리니 마치 무당 푸닥거리같이 되었던 것이다. 성령운동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말씀과는 상관없는 가시적인 것에 매달리게 된 결과이다.   1517년 종교 개혁자들이 카톨릭의 잘못된 교리들을 개혁하면서 교회를 목욕시켰는데, 개혁자들의 잘못은 아기(교회)를 깨끗이 씻어서 더러워진 물을 버렸는데 물만 버린 것이 아니라 아기까지 같이 버린 것이다. 

개혁 교회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성경은 매우 매우 중요하지만 개혁자들의 잘못은 하나님은 성경보다 더 크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개혁주의는 성경안에만 하나님을  잡아두었다.  성령의 역사는 1세기에 끝났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1646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가  우리가 믿는 모든 장로교들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1장의  ‘성경’에는 이전 방법의 모든 계시는 중단되었다고 명시되었다.  성경이 우리에게 있으므로 더 이상 계시는 없다는 말이다.  즉, 은사 종식설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는가?  성령이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은 지금도 여전한것으로 누구도 이 사실을 거부할수 없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4)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5)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2:38-39)”
 

우리는 교리가 아니라 성경 말씀을 믿어야 한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심은 유익함을 주시려 함이니라(고전12:7)”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내가 너희를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롬1:11)” 라고 바울이 말씀한 것은 이들 로마 교인들이 믿음이 약해서 그랬는가? 아니다 . 

8절에 보면 내가 너희로 인하여 매우 감사하다.  이들의 로마인들의 믿음의 소문이 중동에 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 위에 성령의 은사와 나타남이 있을때 더 견고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이들이 IHOP에 다녀와서 얼마나 단단해 졌는가?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강건해 졌는가?  은사와 성령을 통해 강건해졌다. 

커네티컷 주 어떤 장로교회에 친구 목사님이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씀을 전했다고 한다.  그후 식사시간에 장로님들이 목사님께 오셔서는 “옛날이나 그랬지 지금 무슨 성령이 나타나신다고 그러세요? 무슨 그런 소리를 하세요? 큰일나시려구요“ 고 말씀들을 하셨다고 한다.  그 교회는 예일대 교수나 의학박사 등 지성적인 장로님들이 계신 곳인데 목사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시더란 것이다. 

다음시간에 목사님께서  장로님들께  앞에 앉으시라고 해서 허리 아프신 장로님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다리야  나올지어다” 하고 기도를 하여 드렸다. 그러자 장로님들의 다리가 쑥 나오는 것들을 보고는  다섯분의 장로님들이 깜짝 놀라셔서 점점 앞으로 나오시더라는 것이다.  이 분들이 무릎을 꿇고 보시더니 나중엔 엉엉울면서 보기 시작하셨다 한다.  장로님들은 하나님이 지금도 역사하시는 것을  깨닫고 영적으로 강건해지기 시작하셨다.  이처럼 치유사역의 유익이 있다.

예언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언은 구약의 예언자를 말하거나  점쟁이가 아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고전14:3, SEC: for strengthening & encouragement and comfort)”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떨어지는 말씀은 큰 위로가 된다.

 제작년에 입주하게 되었던 우리 교회의 모습은 폐허같이 엉망이었다. 언제 교회에서 입당예배를 할수 있을까하고 큰 불안감과 번민이 있었을 때에, 우리 집사님 한 분이 환상을 보고 웹 사이트에 올리신 예언의  글을 보았다.

 “포도나무 교회 주위에 앞으로 꽃이 만발할것입니다.” 이 분의 말씀대로, 지금 우리 교회는 양쪽으로 무궁화꽃이 피어난 것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사방에 각종 꽃들이 만발하고 있다.  당시 올리신 글이 큰 위로가 되었고 또 그렇게 되어가는 것을 보니 은혜가 넘친다. 이것이 에언이다. 

데보라가 베키에게 한 첫번째 예언의 말씀이 “God loves you”였다.  무슨 특별히 거창한 것만을 예언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때에 이 예언의 말씀을 들으라고 계시록 2장과 3장에 걸쳐 7번씩이나 나온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다음에, 성령의 4가지 단계에 대해  살펴보자.  1. 무지한 단계  2. 지식의 단계 3. 체험의 단계  4. 나눔의 단계가 있다. 

재민이가 본 환상이 우리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라서 한글로 번역해서  발표하라고 했다. 주신 말씀은 발표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교회 각 사람 성도님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주실 것이다. 

첫재로, 무지한 단계를 보자.   바울이 에베소의 신자들 즉,  하나님 잘 믿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너희가 믿을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엡19:2)”  그들은 성령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 인본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다.  그저 좋은 말씀, 도덕적 말씀, 교양적 말씀으로만 듣고 가려 한다.  요즘 설교를 코미디로 생각하는 사람마저도 있다.  인본주의적이고  친교만 원하는 신앙, 형식적 예배, 라면예배 는 무지에서 생겨난다.  성령에 대해 교리적으로 무지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작년에 시카고에 집회하러 갔을때 어떤 목사님을  만났는데 이 분은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Ph. D를 받으신 분이다.  미국인들도 보통 십여년이 걸리는 어려운 신학교이다.  이 목사님이 시카고 장로교회에서 목회를 잘하시다 지금은 은퇴를 하셨다.  그런데 은퇴하신 후 요즘 성령을 받으셨다고 한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고  환상이 보이기 시작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최 목사,  나 늦바람 났어. 내가 이전에 목회할때 알았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좀더 유익을 줄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몰라서 성경 말씀만 가르쳤어…그런데 지금 내가 늦바람이 나서 하나님 음성듣는 재미에 빠졌어!”라고 하셨다. 신학 박사가 되어도 얼마든지 성령에 대해 무지할수 있다. 

또한 성령 체험을 했어도 무지할수 있다.  나는 하나님 안 믿는 가정에 태어나서 대학 4학년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을때 아주 강권적으로 부르셨다.  듣지도 못하는 나에게 아주 큰 음성으로 “혁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내 귀에 아주 크게 소리를 지르시는 것 처럼 부르셨다.  한 마디로 성령의 역사였다. 

그러나 난 이것이 성령의 역사인줄 몰랐다.  많은 사람이 성령의 체험을 하여도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면 모른다.   다음 해에 독일에서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3-4년간 성경공부를 지독하게 했다.  그러던 중 기도하다 친구 하나가 방언을 받았다.  우리는 부러워하기는 고사하고 “자식아,  고만 둬” 이마를 때리며,  “정신차려  임마,  지금 말씀만 믿으면 됐지 무슨 방언이야?  누가 방언한다고 밥먹여 주냐?”고 다 말렸다.  왜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둘째로,  지식의 단계를 보자.  주님이 십자가 달리시기 전 날, 마가 다락방에서 12 제자들을 모아놓고 열심히 강연하신 것중 하나가 이 성령론이다 . 요한 14장과 16장에 보면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근심하지 말라…내가  떠나가야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신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비롯해서 성령에 관한 책,  간증과 쎄미나를 통해 성령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성령의 세미나 때마다 눈을 부릅뜨며 뭘 잘못했나 골라내려고 애를 쓰는 바람에 목사님들이 성령 세미나를 하시다가 다 문을 닫아버린다. 

난 10여년 전 부터 미국교회의  치유와 예언 쎄미나에 참석하였다.   세미나 인도하시는 사역자가 성경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왜 치유와 예언의 역사가 필요한지를 이론적인 것 뿐만아니라 실제적으로 Impartation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도록 하였다.

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성령의 역사를 잘 몰랐었다.  전도사 시절 김남수 목사님께 부탁을 받고 순복음 교회에서 이년간 일하게 되었는데, 김 목사님 서재에서 이영훈 목사님의 오순절 운동과 성령세례라는 논문집 두권을 발견하고 한 권을 부탁해서 받게 되었다.  줄을 치면서 꼼꼼하게 공부를 하면서 창1:3부터 계시록까지 성령자만 나오는 걸 찾아 다 기록을 하였다.  서점에서 오십 여권의 성령에 대한 책도 보았다.

성령론의 논지를 파악하고서는 성구를 암기하기 시작하였다.  눅 11에 나오는 ”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말씀은 곧  “하늘에 계신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아하! 이 말씀은 내가 원하는 걸 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성령을 구하라는 말씀이구나하는 것을 깨닫고는 놀라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후 하신 첫번째 말씀이 ‘성령을 받으라”였는데 왜 교회에서는 성령을 받으라는 말을 안하고 구하는 것을 자꾸 막는것일까?   의문이 일면서 성령에 대해 조금씩 눈이 떠지기 시작하였다.  지식을 갖는 단계였던 것이다.  제자들도 예수께서 성령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셨다 해서 성령을 체험한것이 아니고, 사도행전 2장에 승천후 10일 만에야 처음으로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식은 사진 같은 것이다.  실물이 아니니 재미가 없다. 

피터 와그너 목사님은  신학교를 나와  볼리비아 선교사로 갔을 만큼  매우 믿음이 뜨거우신 분이다. 이 분이 속한 남침례교회 교단은 성령의 역사를 인정치 않는 교단이다.  볼리비아에서 사역을 하다가 스텐리 존스라는 부흥사가 집회를 열때  교단 본부에서 피터 와그너 목사에게 사이비 집단이니 집회에 참석치 말라는 연락이 와서 자기 교회 교인들에게 가지말라고 광고를 하고는 안가려고 했다가  몰래 갔더니 자기 교단 총회장도 몰래 왔더라고 했다.  성령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저희 교회에 많은 분들이 방언, 불, 환상, 축사체험이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우리는 성경 공부도 매우 열심히 하지만 또 하나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 나눠주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2000년도에 성령 하나님을 알자라는 강의를 7-8번 다하고 혼자서 피아노를 치며 기도를 인도하고 안수를 하고 했었는데 10여명 교인들중 별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었다.  한 자매의 방언의 역사가  있었다.  2003-4년엔 6개월동안 금요일 마다 성령의 나타남과 영적 전투에 대해 설교를 했다. 

우리 교인들은 성령에 대해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으므로 성령 방언 축사에 대해 두려움이 없고 체험하길 원한다.  지식이 있음으로 우리 교인들은 자유함이 있다.  IHOP때문에 지금 뉴욕의 장로교회에는 담임 목사님이 문제가 되어 사표를 내게 되었다 . 지금이 이런 때이다.  지금 우리 교회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사모하는 분위기지 막는 분위기가 아니다.  교인들이 방언과 불체험 환상, 하나님의 음성을 많이 듣는데 여기서 끝나면 안된다.

고린도전서14:12에 보니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모하는데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더 풍성하게 구해야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나의 최고 은사이지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짜릿 짜릿하다.  이것 때문에 매일 금식하며 기도한다.  예언 사역 그룹과 치유 사역 그룹의 강의를 수요일 저녁 9시에 한다. 

유익한데 왜 안하겠는가? 명령 하셨는데 왜 안하겠는가?  “너희중 병든 사람이 있으면 손을 얹고 기도하라”고  성경에 분명히 쓰여있다.   “특별히 예언을 하라고 하라”는 것이 성경의 명령이다.  아직도 의심이 가나요 ? 아직도 거부하세요?  아직도 장로교의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제 1번인 잘못된 교리에 묶여져 있어요?  빨리 깨어나서 적극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운데 들어오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과 성령 이 다 있어야 한다. 외눈 있는 마을에 두 눈뜨고 들어가면  비 정상이라고  이단, 삼단이라고 한다.  아니다!  두 눈이 정상이다.  말씀과 성령의 두 눈이 있어야 한다.

예언의 은사는 매우 큰 유익이 있다.  난 특별히 이민 목사이다.  이민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한국에서 아무리 오라고 청빙을 해도 안간다.  저의 사역이 언어와  문화로 고통받는 이민자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위로주는 교회가 되길 원한다.  이민 목회는 쉽지 않다.  가끔 속 긁는 분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한 분이 긁을때 아프다.  성경 공부하라고 할 때마다 얼굴이 굳어지는 분도 있다. 

지난 봄 40일 기도 끝나는 마지막 날,  새로오신 성도님이 저희 교회에 와서 기도하면서 처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었는데 목사님께 주시는 말씀이라고 하였다.  내용인즉  사무엘 상의 말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3:19)”의 말씀이었다. 네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존중을 받으리라 ” 는 말씀이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지지난 주 아합에서 데이빗 청년이 날 안수해 주면서 예언해 주었다. “당신은 사무엘 같은 종이다…” 목사라는 신분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또 사무엘 같은 종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두번이나 내게 증거를 보여 주시는 구나하고 느껴졌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의 말씀이 불처럼 나올 것을 알려주셨다.  국제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거라고 하셨다.

그러고보니 성도들이 말씀을 퍽 잘 받는다.  매일 저녁마다 전하는 말씀마저도 감사받았다고 올리는 것을 보며 또 5학년 짜리 찬영이도 목사님 말씀을 듣고 감동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를 통하여 큰 뜻을 이루시길 믿는다.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란다.  목 말라야 한다 . 영적인 굶주림이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영적인 갈증을 해소하신다. 그러나  방언받는데서 끝나지말고  더욱 사모하셔서 말씀대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더 풍성하길 구하시길 바란다.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처럼 영적으로 굶주리는 자들이 와서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가시길 바란다.   가장 좋은 초이스 와인, 베스트와인을 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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