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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6시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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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아라
 

요20:19~23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 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즘 미래 학자들이 여러 통계들을 통해 과학적으로 앞날을 예측하는 바 토플러, 기소르망, 아탈리아, 마노다의 얘기는 들을 가치가 있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공통적인 내용은 21세기 즉 2000년 중반 이후부터는 서구세력이 아닌 동북 아시아권의 나라들이 세계 정치 경제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일본은 이미 미국 다음으로 총 생산량이 많은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고 중국은 늦게 문을 열었지만 미국과 맞서는 정도로 급 부상하고 있는 나라다.  한국은 60년대에 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나라에서 원조를 주게된 나라가 되었는 바 이는 세계 국가 중 유일한 예이다.  조그만 나라인 한국은 동계올림픽 5위까지 올라가 남녀 선수들이 금 은 동메달을 따내는 굉장히 저력있는 나라인 것이다.  

어떤 영국 학자는 아이큐를 각 민족별로 조사한 결과 동북 아시아권의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 보다 아이큐가 조금 더 높다고 하면서 이들을 앞으로 세계를 주도할수 있는 민족들로 예측하기도 했다.

동북 아시아권이 세계의 경제 정치 예술의 중심지가 되면 좋은 것인데 유독 지리적으로 동북 아시아에서 핵심 위치에 있는 나라인 북한만은 폐쇄적이어서 외국 투자나 외부의 것을 받을 줄 모른다. 금강산에 일년에 수천억씩 투자하는 현대 아산에게 북한은 지난 주에 3000억의 재산을 몰수 하겠다고 엄포하였으니 어느 나라가 이 같이 불안정한 나라에 투자를 하겠는가?

북한만이 유독 못 사는 이유는 밖에서 받지 않아서 못사는 것이다. 일본은 명치 유신때 제일 먼저 받았다.  다음은 한국인데 지금은 등소평의 흑묘 백묘론으로 죽의 장막을 걷어낸 중국이 한국울 우습게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와 하버드의 교수 임용 정책을 비교해 보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서울대는 서울대 출신만 뽑는 반면에 하바드 출신은 모교에 교수 임용이 잘 안된다.  그 이유는 하바드 대학의 생각은 자체에서 받으면 그것 밖에 안 나오므로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대학 출신을 임용하면  대학이 확장되고 강해지고 커질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60년대에 애국가를 작곡한 세계적인 작곡가며 지휘자인 안익태씨가 서울음대 교수로 지원했으나 임용이 안 되었다.  단지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유학하지 않은 서울대 출신만으로는 세계적인 음악가가 없다.

인간은 외부로부터 받아야 강해지며 신자는 위로부터 받아야 강해지며 뒤지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첫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19-20절에 있다. 영체(spiritual body)로 나타나신 예수님께선 놀란 제자들에게 당신의 상처를 보이셨다. 

왜 보이셨을까? 예수님의  상처는 수치의 상처가 아닌 영광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증표요  싸인이다. 우리는 하나님 일하다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상처가 클수록 간증거리가 된다.  큰 용사는 큰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상처 없는 신자는 어린 신자나 창피한 신자 혹은 예수님보다 더 영악한 신자일 것이다.  신자의 최종적 목적은 전도양육 훈련받고 파송받는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신학은 틀이므로 필요하다. 요한복음엔 보낸다는 말씀이 많은데 보냄의 형식(sending formula)에선 보냄 받은 자와 보낸 자는 동급이다(the sent one and sender are same). 대한민국 대사는 대한민국 대표로서 권세가 있는것 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와 같다 (마28:18).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신다(마 28:18). 

하늘나라의 계시의 원칙(the principle of revelation)엔 계시한 자와 계시된 자는 동급이다( the revealer and  revealed one are same). 똑같은 동급이라야 계시가 가능하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14:9).  아버지가 나를 보낸것 같이 너희를 (교회) 세상에 보내노라고 말씀하신다(21).  아버지가 가진 권세가 아들에게 있고 아들에게 있는 권세가 교회에 있다. 아버지와 예수가 동급인 것처럼 교회는 예수와 동급의 권세가 있다. 교회는 예수와 동급이므로  교회는 그의 몸이 되는 것이다(엡1:23).  교회는 세상의 어떤 기관과도 다르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즉 교회가 죄를 사하여 주는 권세가 있다고 말씀하신다(23).  죄사함의 권세는 하나님께 있지만 주님께도 있다.  주님은 지붕을 뚫고 달아 내려진 중풍병자를 향해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시자  참람하도다고 비방하는 서기관들에게 스스로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고 말씀하신다(막2:7-10).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그 권세를 교회에 주셨다.  어떻게 교회와 제자들이 예수와 동등된 권세를 가질수 있는가? 성령을 받음으로 가질 수 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22)"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다.  성령이 교회를 움직이면 하나님의 영이 교회에 역사한다.  예수님 마음에 성령이 역사하시므로 본대로 아버지가 시키신 것만 하시는 것처럼(요14:31) 교회가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이다.

교회는 담임목사도 아니고 신학박사도 아니고 정말 위험천만한 다수결의 원칙이 아닌 성령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이다.  교회가 성령을 받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주님께서 부활 후 하신 첫 말씀이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이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나는 대학 4학년 때부터 한국 이민 교회나 연합 집회에서 성령 받으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을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잘못된 성령 운동의 폐해로 인한 알레르기 증세가 교계에 편만하기 때문이다.  중세 카톨릭의 잘못된 신비주의와 혹세무민이 성행한 폐단 때문이다.  칼빈은 16세기 종교개혁때 기독교 강요에서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중요한 언급은 매우 잘 했지만 성령에 대한 언급을 다 배제하여 버렸다. 마치 애기를 씻고 물이 더러워지자 물만 버린 것이 아니라 애기도 같이 버린 격이다.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고 안수하고 치유하는 것은 성경에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중세 때의 문제 때문에  칼빈의 영향을 받은 장로교 개신교의 신학은 성령에 알레르기를 일으켰다.  한국인의 신앙은 타고난 열정으로 성령을 받게 되었으나 교만하고 악해진 박태선, 다미 선교, 영생교주 사건으로 성령의 역사가 막히게 되었다.  예수께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으라는 뜻이다. 

영혼의 첫번째 축복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믿음도 성령의 역사이다.  예수를 영접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받으라고 하셨다.  "너희는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성령의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고 주님은 분부하셨다. 이는 요엘서에  이미 예언된 말씀이다(2:28). 800년간 요엘 선지자 말에 주목한 이는 역사상 예수님 한 분이셨다. 역시 예수님은 예수님이시다.  제자들이 성령체험으로 방언을 하니 사람들이 놀라 새술에 취했다고 조롱하자 베드로는 요엘서를 인용하여 오순절 설교를 하였다(행2).

성령을 체험하면 예언, 치유, 방언, 영 분별의 능력이 생긴다.  성령의 권능이 생긴다.  현재 유럽의 불행이 무엇인가? 1903년 에반스가 웨일즈 부흥이 일어났다. 지금은 1900년 이후 부흥운동이  안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모슬렘들이 유럽에 들어왔다. 

미국에 사는 것은 축복이다.  1890년대 켄사스의 토페카에서 팔헴이란 목사가 사도행전 같은 교회를 만들수 없나 하고 연구를 시작하면서 신학생들에게 이에 관한 연구 과제를 주었다.  학생들은 연구결과로 사도 시대와의 차이점을 성령 역사와 방언 시작으로 발표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1899년 12월 31일 밤기도를 시작하였는데 1900년 새해 첫날 흑인 여인인 아그네스가 처음으로 방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또 성령을 사모하고 사역에 열정을 품었던 한쪽 눈만 볼수 있는 한 흑인 남자가 이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기 원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당시의 심한 인종 차별로 인해 신학교 창 밖에서 공부하도록 허락을 받았는데 이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주목하시지 않는가? 그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해 그는 성령 세례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LA에 집회 초청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외모를 보고 실망한 초청측은 확신을 못 가지고 그의 집회를 취소하고 만다.

이 같은 모욕을 겪는 중에 그는 어떤 교인의 도움으로 아쥬사 스트릿의 마굿간을 빌려 집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아쥬사 Revival이다. 이 후 1906년부터 흑백 구분과 교단 구분이 없어지고 놀라운 부흥의 오순절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첫번째 성령운동이 일어나자 하이 처치인 장로교, 루터, 에피스코팔, 감리교등으로부터 비난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엔 성령운동이 각 교파에 퍼지게 되었다. 1980-90년대에 새롭게 부흥운동이 확산되어 전 세계적인 제 3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었다.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나라라고 믿는다.  선교사를 가장 많이 4만명이나 파송하는 나라다. 미 남부 지방엔 바이블 벨트가 있어 대통령이 되려면 이들 교회 눈치를 보아야 하는 형편이다.  21세기 전망은 어떤가?  백인 교회와 교인들은 쇠퇴하게 되고 백인 선교사들은 전세계적으로 특히 911이후 거부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영어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언어와 문화의 위치를 자리매김 하고있다. 

그러므로 한국 이민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잘 생긴 백인보다 아시안들의 외모가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한국인의 얼굴이 세계 사람들에게 익혀지고 있다. 이란에도 한국 드라마가 5개나 상연된다.  한인 2세들의 복음 전파시대가 온것이다.  이는 와이엠 창시자인  로렌 커밍검과 신디 제이콥의 예언 말씀이기도 하다.  

케냐에 선교하고 학교와 교회와 병원을 짓겠다는 우리 2세들의 미래가 감격스럽다. 그러므로 준비하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의 두 종류의 선물이 있다.  구원은 거져주시는 것이고 능력은 구해야 받는 것이다.  간구는 영적 훈련이다.  훈련없이 성령의 권능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다이나마이트나 수술칼을 훈련없이 사용하면 위험한 것이다.  성령의 권능을 받고 성령의 역사를 보는 것은 그 어떤 올림픽 경기를 보는것 보다 신나는 것이다.  내 재능으로 살면 자기만 영광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의 권능이 있으면 원종수 박사,  벤 칼슨, 정재훈 박사처럼  하나님께도 영광이 된다. 

천재 파스칼이 성령의 불을 받기를 오랫동안 열심으로 굉장히 간구하였다.  1654년 11월 23일 파스칼은 성령의 불을 받고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가 기록한 회고록을 보면 " 10시30분에서 12시30분 사이, 불,  철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확신, 확신, 확신, 느낌,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세상의 것을 잊은 날, 그는 복음서에 가르쳐진 방법으로만 발견될수 있는 분"이라고 메모했다.  파스칼은 너무 감격이 커서 양피지에 이 글을 써서는 죽을 때 까지 이를 소매 밑에 항상 간직했다고 한다.  나중에 '팡세'라는 놀라운 작품을 썼다.

인간은 위로부터 받아야 산다. 하나님께로 부터  받아야 산다.  우리 교회  속에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간절히 보기를  원한다.   교회와  자녀, 유스 그룹,  40일 기도,  케냐 선교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역사를 보기 원한다.  그래서 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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