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하여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4월 29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포도나무칼럼
2011년12월28일 06시41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푯대를 향하여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한국에 두 주간 머무르는 동안 온통 들리는 이야기는 벤쿠버 동계 올림픽 소식이었다.  호텔에서 처음 티비를 켜니  이 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받고 시상대 위에서 눈물을 흘리는 광경이 나와 나도 눈물이 찡했다.  동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 광명역에 내리자마자 김연아 선수가 눈물이 글썽해서 시상대 위에  서 있는 화면을 보고 또 큰 감격을 느꼈다.  한국은 정말 굉장한 나라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  당시 부장 선생님께서  서양식으로 자유롭게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특출한 생각을 하신 바람에  신앙촌에서 이 삼백원하는 깡깽이 바이올린을  구입하셔서 아이들을 지도하셨었다.

그 때  배우던 중 선생님께선 내가 특출나게 바이올린을 잘 켜는 것으로 생각하셨는지  6개월 연습 후 경기도내 콩쿠르에 나가라고 하셨다. 육개월 연습이라야 낑깽소리 밖에 안나는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동산 고등학교 강당에서 헨델의 '뿔의 고전 무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다른 참가한 아이들은 이 삼년씩 배워 나와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수준이 높게 들려서 자신없이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다른 애들은 예선에서  떨어지고  본선에 진출한 대 여섯명 안에 내가 들어가 3등 안에도 못 들고 장려상으로 컵을  받게 되었다. 아마 심사위원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보아주셨던 것 같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바이올린을 보면 그때의 고무적인 기분이 살아나 지금도 마음이 즐거워진다. 상을 받으면 감격이 있지만  벌을 받으면 눈물이 나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은 상만 주시나 생각하기 쉽지만 계시록 21장에는 분명히  각 사람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벌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대신 믿음으로 잘하면 우리에겐 하나님의 상급이 주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상급을 받나? 금메달을  딸수 있는가?

빌립보 옥중서신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답답한 가운데 썼다.  걱정과  두려움 속에 떨고 있는 교인들에게 오히려 기뻐하라고 바울은 말한다.  바울은 그의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하였던 것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에베소서에는 기쁨( 카리스)이란 단어가  10번 이상 나온다. 기쁨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고 내적인 조건이다.

환경에서 오는 기쁨은 환경에 따라 변화하나 마음의 기쁨은 영원히 지속된다. 14절에 나오는 ”푯대"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한번만 씌여진 단어이다. 분명한 푯대가 있는 사람은 기쁘다. 푯대(스코포스)는 화살, 과녁, 목표를 뜻하는 것으로 목표가 없으면 맞출 것도  없다. 

목표는 있을 수록 좋고  단순할 수록 좋다. 한 가지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김연아처럼 고울은 하나로 단순하게 삼을수록 좋다.

그러면 우리에게 분명한  푯대가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7-8절의 말씀에서 보듯이  바울처럼 다른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분명한 푯대가 있는 자는 다른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  한가지 목표를 위해 다른 것들을  다 제거해라.  남들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어하고 먹고 싶어하고 다니고 싶어하지 마라. 하나면 족하다 .

조선일보에 삼성의 윤종현 회장이 인터뷰한 기사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어떻게 삼성전자가 쏘니를 극복할 수 있었는가?  1990년 초만 해도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히타치, 파라소니등 일본 전체의 전자제품보다 삼성 하나의 매출이 더 많게 되었다.

윤 회장은 20년동안 삼성의 사장으로 겨우 회사를 추스려 나갔는데 90년대 초만해도 20년이나 뒤떨어지는 삼성은  쏘니를 따라갈 수 없었다. 기술이나 자본력과  시장에서 비교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90년대 초,  윤 사장은 전자업계의  방향이 조금 달라져 아날로그에서 디지탈로 바뀌는 동향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 후 삼성에서 티비나 브라운관을 다 없애는 등으로 아날로그  제품을 다 처분하고 디지탈로 올인했던 것이다.  푯대를 분명히 세우고 출발점이 같은 디지탈로 경쟁해서 많은 수익을 창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마음을 버려야 한다. 쓰레기도 감옥도 버려야하고  실패도 장애도 상처도 버려야 한다. 먼저 분명한 푯대를 세워라. 그러나 푯대만 있어도 안된다. "부르심의 상을 위해 달려가노라(:14)"  달려가야 기쁜 사람이 된다. 게으르면 달려갈 수 없다.

한국에서 이경규 쇼 프로그램을 보니 일류 대학생들이 나와 어떻게 스카이대(일류대)에 들어간 것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일년만에 하위 꼴찌 그룹에서 상위 그룹으로 간 경우들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비결은 이랬다:

첫째, 시간을 절약하려고 애썼다. 티비도 인터뷰도 핸드폰도 여자친구도 게임도 다 끊고 밥먹는 시간마저  절약하려고 밥과 반찬을 믹서기에 갈아서 먹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공부 못하는 친구들을 버리고 스토커처럼 일등하는 애만 따라서 했다. 걔가 공부할 때 같이 공부하고 화장실도 같이 따라 갔다. 

셋째, 많은 참고서들을  버리고 하나만을  반복해서 공부했다. 이 얘기를 듣고 보니 역시 우리 교회의 마가 프로젝트의 구상이  옳다는 확신이 생겼다.

한가지 푯대에 고정하라!  영적 법칙도 동일하다.   바울의 푯대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삶중 하나님 나라가 분명한 목표를 삼도록 축원한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4 단계는 

1.  지식의 단계 - 이집트의 이스라엘인

2.  임재의 단계 - 광야 이스라엘인 

3. 친밀감의 단계 - 하나님과의 감정교류로 모세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4. 하나가 되는 단계 - 하나님의 푯대는 우리와 하나가 되는 것에 있으시다.   연애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  에덴 동산에 있는 것처럼 하나가 되는 연합의 단계이다.

하늘나라의 하나님과의 연합의 기쁨은 놀라운 기쁨이다.  그런데 각 단계마다 성령의 크레센토가 되어야 한다. 점층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어떻하면 되는가? 

해답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하나님의 임재와 기쁨과 평강이 넘쳐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느껴질 때 까지 기도 하십시오.  최후에  큰 상급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늘나라의 금메달리스트가  되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포도나무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42967084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포도나무칼럼
다음기사 : 성령을 받아라 (2011-12-28 06:42:18)
이전기사 : 말조심 (2011-12-28 06:41:06)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