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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2시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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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성의 본질

우리의 삶에 있어서 사실과  진실은 별개의 문제인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일어난 현상에 기준하여 그 진의를 가늠하려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사실이 서술적(diegesis, descriptive)이라면 진실은 표출적인(minesis, emotives) 성격을 띈다.  사실이 정보를 담담히 전달하는 건조한 음성이라면 진실은 드라마의 대사처럼 오르내림이 무쌍한 배우의 음성이다.

사실에는 차갑고 건조한  머리와 세련되고 계산적인 간격이 담겨있을 때가 많지만, 진실에는 뜨거운 가슴과  간격을 허무는 다소간 극성스럽고 비 실리적인 촌스러움이 담겨있을 때가 많다.  전자가 남성적인 색채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후자는 여성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고도 표현할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있어서도 이 두가지의 밸런스가 잘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양성(兩性)적인 요소가 능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분석 심리학자인 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아니마(여성)와 아니무스(남성)를 소유한 존재이다.

이것들은 개인속에 있는 무의식적인 인격인데 남성과 여성 속에는 각기 다른 성(性)이 잠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 인간을 생각할 때에 이런 발견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런 관찰이 오히려 성별의 정의를 모호하게 하는데 까지 비약해 나간다면 저급한 사고의 유희가 될것이다.  그러므로 다만 성(性)의 사실성(事實性)에 성(性)의 진실성(眞實性)을 덧입힌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을것 같다. 우리의 실존이 본질로부터 멀어진 사건을 소외라고 주장한 틸리히의 표현에 앞서, 실존이 본질에 충실하므로 사실과 진실이 하나가 되었던 에덴의 초기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본질적 실존과 진실적 사실로서 남자와 여자 - 사람을 창조하셨다.  아! 이 태초의 창조는 오늘날 우리에게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회복의 꿈이요, 쉬임없이 부어지는 회복의 축복이다. (에베소서 4:24; 골로새서 3:9-10) 인간의 소외 사건(타락) 이후 오랜 세월,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은 비본질적 실존과 비진실적 사실들이 주도적으로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좀더 본질과 진실에 접근하고자 예외( 例外)라는 것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이 예외성은 세상에 차별성과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신념과 가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씌여졌다.  미국의 도덕주의와 이상주의, 구원주의(Messianism)적 외교정책은 곧 예외주의(exceptionalism)를 반영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예외성이란 기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에 대한 인간의 표현일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남성 우월주의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옛날에 여성에게도 나실인 제도가 허용되었던 것은(민6:2)  하나님의 본질-본성의 자연스런 표출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코드속에서 말하길 그 제도는 성차별을 넘어 여성도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한 인격체로서 독립적이고 자원적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허용한 파격적인 것이었다 라고 해석한다.

또 한 예로, 전형적 유대사회 관습에 따라 여자는 딸 외엔 랍비의 발밑에 앉을 수가 없었을 때에, 그래서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이 여자의 손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에 태워 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 때에, 그래서 예수가 사시던 그 시대의 유대 남자들은 매일 하루에 두번씩 또는 두번이상 “나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나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 했을 때에, 많은 남자 제자들 틈속에서 한 여성이 당당히 예수의 발밑에 앉아 있었다.

이 때에 예수께선 여성의 위치와 역할을 제한하는 전통과 구습에 물들어  말씀에 가장 가까이 근접하려는 마리아를 비난하는 마르다를 오히려 충고하시며, 사람들의 눈총과 편견에도 상관치 않고 예외적으로 한 여성을 배움의 자리에 버젓이 앉혀주셨던 것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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