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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2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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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人格)장애와 영격(靈格)장애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옴으로 인해 이십여년 동안 해빙 무드 속에 동포애를 싹 틔웠던 남북 교류는 파국을 맞게 되었다.
 전시도 아닌 상황 속에서 46명의 젊은 생명이 청천벽력처럼 한날 어두운 바다속으로 스러진 것도 차마 감당할수 없는 비참한 악몽이건만, 더군다나 그 목숨을 앗아간 정체가 다른 어느 것도 아니고 그간 천신만고를 기울이며 형제애로 다가선 동족이라는 사실에 망연자실 깊은 배신감과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악의 존재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우리 앞에 일어난 사건은 없었던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전 부터 내장되어 있던 악이 노출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 앞에 드러난 이 같이 검고 추한 현실 속에서 새삼 악(惡)의 근본과 악(惡)의 속성을 절감하면서 어떻게 악(惡)을 다루어 나가야 하는가 하는 과제를 떠맡는다.
어거스틴은 악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악의 본질을 선의 결핍(deficiency of good)이라 하였고 악(惡)은 인간의 왜곡된 자유 의지에서 나온다고 하였다지만, 인간을 창조 하신 후 하나님께서 현실적으로 그들 앞에 하나의 금기조항을 두셔야 했던 것은 하나님의 본성에 거슬리는 어떤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본성을 닮게 창조하신 피조물을 보호하시기 위해서였다. 
즉 어떤 어두운 사망의 존재 - 악의 존재가 이미 있었던 것이다. 이 존재는 하나님의 수종을 들도록 지음받았으나 자신의 외모와 능력과 지성으로 교만해져 하나님과 견주고 조물주 위에 올라서려다 저주를 받은 미혹의 영이요, 세상의 영이요, 거짓의 아비요, 멸망의 자식인 사단 곧 마귀인 것이다.(사14:14;요일4:6;고전2:12;요8:44;요17:12;계12:9))  
사망과 멸망으로 인생들을 끌고가는 마귀는 왜곡된 자유의지를 발동하도록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해 그른 생각, 그른 이념, 그른 정서를 심어준다.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했다면 아담과 하와는 결코 선악과에 손을 대거나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담의 후손으로 오늘 날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자기의 이성과 판단과 감정을 좇아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죄의 성향 - 죄성을 지니고 있다.
반 사회 인격장애자(sociopath)
하바드 대학의 임상 심리학자인 말타 스토트(martha stout)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통상적인 인구중 4%가 양심이 마비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통계는 25명중 한명에 해당되는 것으로 결코 적은 수가 아닌데 전제 군주나 군사 영웅, 기업의 CEO나 전문인, 성직자들 중에도 들어있다.
이들이 양심이 없다는 것은 옳고 그른것에 대해 지적인 구분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행동 제약에 실패함을 말하는데 이런 자에게는 감정적인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 반 사회 인격장애자(the sociopath)의 주특성은 대부분 아주 사람들을 끄는 매력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명석하여 성공궤도를 달리는 부류에 많고  끊임없는 자극을 원하며 지루한 것을 못참는 반면 이들의 생의 목적은 이기는 것과 경쟁심, 지배욕에 있으며 정서적 애착이 없는 사랑의 가면도 쓸  수  있는 사랑이 없는 냉혈한 적인 것이라 한다. 또 이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결합과 승리감을 얻기 위해 이성을 유혹하는데도 기묘한 센스가 발달되었다고 한다.
조직속에 숨어있는 반 사회 인격 장애자는 이 사람의 매력에 끌렸던 주위의 정상적인 사람들에 의해 보호를 받고있으므로 쉽게 그 정체가 발견되지 않아 어느 기간동안 정체를 숨길수 있다고 한다. 특별한 것은 이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못받는 것이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동정을 호소하여 악어의 눈물은 이들의 주특기라 한다.   
미 심리학회의 정신장애 진단기준에 따르면 다음 7가지 특성중 3가지 이상에 해당되면 '반 사회 인격장애자'로 진단된다. 1) 사회 규범에 불일치2) 속임과 조작 3) 충동성과 무계획성 4) 자극 과민성및 공격성 5) 자신과 다른 사람의 안전에 무모하고 게의치않음  6) 지속적인 무책임성 7) 남에게 상처를 주고 부당하게 대우하고 남의 것을 훔친 후에도 양심의 가책을 못느낌.
북한의 현 지도자가 천암함 공격을 승인한 배경에 작년 11월 대청해전 패배에 대한 보복과 스텔스 잠수함 성능 테스트 등 변화된 북한해군 전략 테스트와 남북 긴장 조성을 통한 안정적인 후계 승계 등 3가지가 있다는 신문 기사로 보건데, 북한의 현 지도자는 전형적인 반 (국제)사회 인격장애자로 위의 7가지 특성을 다 만족시킨다고 보여진다.
요컨데, 반 사회 인격장애자의 특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들은 극단적으로 소유양식만을 그들의 가장 당연하고 유일한  생존 양식으로 삼는 자들이라 할수있다.  이들의 세계와의 관계는 소유양식에 기반을 둔것으로 극단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며 철저히 대상을 수단화 한다고 볼수있다.
이런 이들을 '탐욕스런 사이코패쓰(covetous psychopath)'라 부르는데 이들은 남이 가진 것에 대한 과도한 욕구를 가지고 있어 종종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유난한 선심을 쓰므로 사람들이 쉽게 정체를 파악할수 없어 "양의 탈을 쓴 이리"처럼 자신을 위장한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인격 형성의 35-50%는 타고난 것이며(nature) 나머지는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nurture) 사회가 어떤 가치체계를 지향하느냐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상을 경악케 하는 빈발한 사회적 범죄현상도 소유와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 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영격(靈格) 장애
그러면 우리가 속한 교회 사회는 어떤가? 오늘 날 교회 사회  일각에서 발생하는 예기치않은 문제로 목회자의 신분에 대한 정체성의 투명한 인식과 책임감에 대해 때때로 의혹이 재기되는 현상도 이와 같은 소유와 수단을 앞세우는 세상적 환경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고 느낀다.  
목회자의 신분에 대한 직접적인 비유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선한 목자'와 '삯군'에 대한 설명과(요10:1-18), 부활후에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신 내용에 밝혀져 있다.
주님께서 삯군에 대해 말씀하신 바, 이리가 오면 달아나서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해치게 한다고 하신 비유를 영적으로 숙고해 보면 삯군과 이리를 동일한 자라 볼수 있다. 
삯군은 삯을 받기 위해 일하므로 양의 상태나 안녕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이 없다. 삯군에게 있어서 양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삯군은 양을 일신의 명예와 물질과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자이다. 
양을 치는 자가 양의 존재의 귀중함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책임감이 없다면 양을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의 유익(소유)을 위하여 양을 임의로 컨트롤하게 되면 양을 자연 도구화(수단화)하는 것이된다.   그러기에 존재와 소유에 대한 문제는 곧 목적과 수단이라는 문제와 상통하는 것이다.  
간혹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교회내 목회자의 윤리 문제는 목회자의 극심한 도구화 성향 - 이기적 소유욕의 병폐가 직접적 동인으로 작용되어 나타나는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회자의 부도덕 문제를 겉으로 드러난 피상적인 상황에만 국한해서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기저에 숨어있는 영적 실상을 간파하고 이에 대한 분별력과 방지책을 키워가야 한다.
교회안의 이단은 교회 밖의 이단 보다 더 위험하다. 교회 안 이단의 속성은 도덕적 탈선과 탐심을 위해 비 성경적인 사설로 성도를 미혹하는데 있기 때문이다(벧후2:).  이같은 자의 성향은 영지주의자들 처럼 도덕 방임주의자나 쾌락주의자에 가깝다. 
목회자와 교인 관계의 원칙적인 설정(設定)에 있어서는 신분에 따른 역할 즉 자격에 따른 리더십과 순응의 관계가 엄연히 주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찢기고 물리기까지는 양의 속성상 삯군의 정체 파악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요컨데, 교회 사회내 교역자의 부도덕의 문제는 남녀간의 애정문제나 잘못된 만남, 혹은 잠깐의 실수나 누가 먼저 시작을 했느냐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리더의 자질과 영성에 대한 교회적인 책임의 문제인 것이다. 대개는 오랜 세월 부도덕 행위가 만성적으로 진행되다가 결국 노출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가 생길때마다 사회가 피해자 여성의 성적 수치심에만 촛점을 맞추려든다면 이런 심리를 악용하는 거짓 교사들로 하여금 반복적인 유사범죄를 양산케 하는 결과만을 가져올것이다.
우리가 교회 안의 이단에 무심하면서 교회 밖의 이단을 척결하고자 한다면 넌센스다. 교회 밖의 이단자가 교회안의 이단을 대적할수 없는 것처럼 교회 안의 이단자가 교회 밖의 이단에 대해 대항할수 있다면 그건 위험한 코미디가 아니겠는가?
효과적인 대응(對應)과 대적(對敵)
여느 평범한 나라에서는 상상할수 없는 여성의 국방의 의무가 주변국의 침략에 오랜 세월 항시 노출되어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는 당연시 되듯이, 이제 교회 사회도 교인들이 아직 단단하지 못해도 교회 차원에서 새 신자교육에 필수 과정으로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에 대한 조기 교육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고 느껴진다(벧후2:).
말타 스토트는 일상에서 반 사회 인격장애자를 다루는 방법을 이렇게 소개한다. 1) 세상에  양심이 없는 자가 있다는사실을 수용하고 2) 상대의 신분보다는 당신의 직감에 의존하라, 3) 상대가 약속과 책임을 세번 저버리면 상대하지 말라 
4) 또 맹목적으로 권위에 순종할것이 아니라 권위에 대해 의심해 보고 5) 아첨을 믿지말라 6) 필요시 존경심의 기준을 재 점검하라 7)이들의  모의에 가담하거나 경쟁, 압도하거나 농담하는 것도 피하라 8) 어떤 연락과 대화도 하지말고 피하라
 9) 너무 쉽게 동정심을 품는 자신의  경향을 경계하고 10) 속죄 받을수 없는 자를 속죄해주려고 애쓰지 말라 11) 동정심이나 어떤 이유로든 그들의 진면목을 감춰주는데 동의하지 말라, 이들의 특기인 눈물어린 호소나 "당신은 내게 빚지고 있다(You owe me)'는 말등을 믿지말라
12)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과 사랑의 능력이 있는것을 믿고 낙담치 말라 13) 잘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이다라고 권고하고 있다.
알고보면 심리학자의 위와같은 관찰과 경계성 조언은 이미 성경에 다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여럿이그들의호색하는것을따르리니이로말미암아진리의도가비방을받을것이요...그들이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가지고 너희로 이득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벧후2:)"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知彼知己)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百戰不殆)"는 말이 있다. 손자는 더 나아가 “전쟁의 최상책은 ‘적의 계략을 치는 것(伐謀)’이고 차선책은 ‘적의 외교를 치는 것(伐交)’이며, 그 다음이 적의 군사를 치는 것(伐兵)이고 최하책이 ‘적의 성을 (직접)공격하는 것(攻城)’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적이 지키고 있는 성을 치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爲不得已)’에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성에는 무고한 양민이 살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단의 계략을 알면 용단있게 대응하여 교회사회를 양들의 피해없이 미혹의 영으로부터 보호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결혼전에 배우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처럼 교회를 선택할때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교회와 지도자를 만나게 인도해주십사 기도해야 절실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  
현재 우리의 조국은 악의 세력의 도발에 직면하여 강력하고 단호한 국제적 대응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의 안보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한 긴박한 시점에 와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 사회도 죄와 사단의 권세에 대항하여 피 흘리기까지 싸우되(히12:4)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지혜의  말씀과 능력의 기도로 싸워나가야 하겠다.
비록 전시상황이라도 우리가 무고하게 고난당하는 북한 동포의 영육간의 구원을 위해 늘 기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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