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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2시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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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무의 지식
며칠고등학교 이 학년인 아들 아이와 차를 타고 오면서 평균 이상의 샤워시간 때문에 약속 시간에 늦어지는 문제로 엄마로서 이런저런 훈계를 시작하였다. 요즘은 큰 아이와 대화를 시작하면 예전 같지 않게 결론이 부모도 아이들처럼 완전치 않다는 선에서 협상 정도로 마무리 되곤 하기가 일수인데 그날 대화 중 새어나온 아이의 볼멘 듯한 한탄이 유별나게 인상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Mr.
아담께 정말 유감이 많아요...아담이 선악과 대신 생명나무를 먹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How good it would have been had Adam instead chosen to eat from the Tree of Life!)"

 
마치 인류의 조상 아담을 할아버지로 생각하듯 살갑게 원망하는 투도 투려니와 내용 또한 생각할수록 우리가 일상적인 지식으로 간과하곤 해서 그렇지 너무도 지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인류 최초 조상들의 범죄를 옛날 이야기인처럼만 여기고 설교 예화용으로만 열을 내고 사용한 적은 있어도 언제 한번이라도 실감나게 분들이 저지른 죄와 유전되는 죄성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사무치도록 가슴 아파한 적이 있었던가내심 몰래 반성이 되면서 며칠동안 두고 두고 회개가 되었다.
요즈음 교회 사회는 원성과 질책과 염려와 비난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있는 분위기이다필자는 일년동안 기독교 인터넷 매체를 대하면서 새롭게 느끼고 배운 점이 많다

마디로 현대의 크리스챤은 너나 할것 없이 이성의 홍수 속에서 이성의 함정에 빠져있지 않나 하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우리 모두 선악과(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함정에 빠져선 선악과를 경배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정도로 당황이 되는 것이다
생각해본다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善惡果)먹지 말라고 오직 명령을 하셨던 것이다

최초의 인류에게 주어진 ()은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오직 따름으로만 얻어질 있었던 것인데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원칙(spiritual principle)보다는 보이고 만져지는 실체에 씌워진 선악이라는 지식에 온통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 하나님의 형상인 생명나무를 바라보지 않고 선악과에 눈을 먼저 돌린것은 자기 중심적인 자의식(自意識)우선 순위를 맞춘 소치이다.  행위의 결과 그들에겐 죄와 죽음의 세상으로의 눈이 열리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현재의 우리는 얼마나 다른마치 선악과가 목적인 것처럼 선악과에 현혹되어 아니 '(善惡)'의 지식판단에 박차를 가하고 몰입되어 가기 일수가 아닌가
나의 이성이 가진 악의 개념은 판단과 함께 자기 ()우위에 두게 하므로 원치 않아도 자기 교만의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달려가는 중에도 정신을 차리고 멈춰서 생명나무를 바라보아야 한다방향을 전환하고 목표를 새롭게 해야한다
영적 에덴에 사는 우리들은 우리의 눈을 길들여야 한다우리의 시선이 어느때고 선악과가 아니라 생명나무를 무시로 바라보도록 연습되어야 한다.
이미 주어졌지만 보이지 않는 말씀보다는 -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포함하고도 넘어서는 말씀보다는 그럴싸하게 우리의 오감(五感)호소하고 이성적 판단어필되도록 단장한 선악과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진 이후(以後)선악과(善惡果)어떤 경우에도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본연의 가치를 십분 발휘할 없을 뿐더러 이름의 불합리한 운명적 정황이 시사하는 자기 모순적 속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의 이성적 분별과 의지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없다세상에는이미 합의되고 보이지 않는 ()이 너무도 많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 또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향해 달려가다 멈춰서 생명나무를 바라보는 일에는 큰 수고와 고통이 따른다. 
이에 우리는 기도하며 전할 뿐 아니라 매우 지혜롭게 적절히 표현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것 마저도 바로 바로 내려 놓도록 연습해야 한다.
그러면 생명나무의 본질은 무엇인가영생이요, 예수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상함받게 하시길 원하시므로 질고를 당케 하셨다(Lord's will to crush him and cause him to suffer).  영혼을 사함의 제물로 드리게 하셨고 범죄자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영혼의 수고(suffering of his soul)감당케 하셨던 것이다
결과 예수께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the will of the Lord is prosper in his hand) 생명의 빛을 보고만족을 느끼는 선물이 주어지게 하셨다(see the light of life and be satisfied). 이것이 예수의 지식(his knowledge)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지식으로 예수님은 많은 이들을 구원하셨다(53:10-12).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righteousness from God)것이다(3:21-26). 세상의 지식으로는 알수없는 하늘의 지식이다선악의 지식을 먹은 후예들을 구원키 위해 내 놓으신 생명나무의 지식인 것이다
오늘우리 모두는 하늘의 지식의 나무 - 생명나무에게로 달려가야 한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처럼 우리도 상함받게 하시길 원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 마저도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고난을 통하지 않는 다른 뾰족한 방도가 없으셨다. 그 고난의 댓가로 부활의 생명을 누리는 특권을 부여 받은 우리 크리스찬에게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주님이 걸으셨던 같은 영적인 여정(spiritual path)이 필연적으로 주어질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명심하자. 우리의 상함(suffering)은 예수님과는 비교할 없이 매우 매우 작은 것이기에 우리는 다만 주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기쁨의 영예를 누리는뿐인 것을... 
요컨데 부활 신앙은 죽음의 신앙을 전제로 한다우리의 영혼이 죽음에 이르도록 매일 수고를 감당하며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는 - 이로써 주의 뜻을 이룰수 있고 생명의 빛을 볼수 있고 기쁨과 만족이 주어진다.
 
여기에 부활신앙이 사철 만발한다여기에 진정한 믿음이 있고 예배가 있고 회복이 있고 성장이 있고 부흥이 있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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