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엘리티즘을 경계하자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5월 20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참빛칼럼
2011년12월28일 02시44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신앙의 엘리티즘을 경계하자
                                      신앙의 엘리티즘을 경계하자
신앙에 있어 권위가 필요하지만 권위주의는 경계해야 되는 것 처럼 신앙의 엘리트는 필요하지만 신앙의 엘리트주의는 심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앙의 권위가 하나님께로 부터 나온 말씀에 권위의 출처를 두고 있다면 권위주의는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나온다마찬가지로 신앙의 엘리트란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엘리트주의란 인본주의적 사고에서 나오는것이다
영적인 엘리트중의 엘리트요 천재이셨던 예수님은 만나시는 사람 사람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을 뿐만 아니라 군중 속에 둘러싸여 있으시는 동안에도 그의 옷자락이라도 스쳐가는 눈에 띄지않는 사람이라도 간과하지 않으셨던 분이시다사천명,오천명에게 복음을 전하시면서도 모인 군중들의 개별적인 생리적 욕구에도 세세히 마음을 쓰시고 베푸셨던 분이시다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엘리티즘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진정 하늘의 천재이셨기에 세상의 엘리티즘과는 공통된분모가 있을 수 없었고 융화될 수 조차 없으셨다그래서 분이 부르신 제자들은 하나같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많이 뒤떨어지는 자들이었다그들 중에는 의심많은 도마도 있었고 계산적인 빌립도 있었고 정열적인 베드로도 있었고 간사가 없이 순수한 나다니엘도 있었다
예수님은 천국의 농부였고 씨를 뿌리는 이셨다하나하나 몸소 땀 흘리시며 뿌리시며 자라나게 하시는 자의 모습을 지니셨다오늘날에도 많은 영혼구원의 사역은 실제 이렇게 시작되고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요즘 한인 교계에는 학벌이나 관계 등으로 세상에 어필하려는 엘리티즘이 무성하다.  심지어는 신앙을 표방한 엘리티즘으로 무장하여 명실상부한 단체를 조성하고 단체의 이름을 걸고 이른바 신앙운동을 대거 일으키는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우리는 이에 대해 심사숙고 해 보아야 한다왜냐하면 비 일반화된 고유한 이름을 가진 신앙 운동에는 인본주의적 요소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특정 브랜드 네임을 가지고 운동화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집회나 수련회가 아닌 개별적 조직과 프로그램과 배너와 구호를 가지고 어떤 개별적 조직의 이념과 이름을 형성하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세기동안 신앙고백이나 각성 운동, 순수복음 전도운동과  선교운동 등이 일어났지만 이런 운동의 이름이 특정 브랜드화 적은 없었다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본질은 항상 성경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앙의 핵심을 모토로 삼았다 하더라도 운동화 되는 과정에서 세상의 비지니스 마인드가 침투하여 모든 방법과형식에서 예수그리스도 보다는 세상의 것으로 입는다면 자연  '본질의 정의' 마저도 흐려지거나 왜곡되기 쉬울 것이다본질을 모르고 본질을 회복하자는 외침은 슬프고도 어설픈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처음부터 세상에서 인정받는 조직을 세우기 위하여 이들 운동단체는 오합지졸의 신학체계를 끌어들이고 이들 신학위원회 형성을 위하여 자칭 보스톤 유학파라며 실제 영성의 깊이 등 신앙인으로서의 됨됨이에 관계없이 세상적 간판 스타들을 영입하여 미국과 세계각국을 유람시키며 우대해온 한편 순진하거나 세상의 명성에 굶주린 연약한 많은 목회자들을 섭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들은 특별히 선택된 자들만이 자기들 신앙 운동권 안에 들어올있는 것 처럼 임의로 자격을 규정하여 위화감을 조성하고 무엇이 조심스러운지 내부 안보를 철저히 하면서 이들의 철학에 맞게 "그리스도"이라 불리우기 보다는 자랑스러운 자기 단체의 이름으로 불리도록 정책을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보자신발은건강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건강을 위한 캠페인으로 "발을 씻자"거나 "바로 걷자"거나 "신발을 골라신자"라고하면 누구에게나 유익한 메시지로 전달된다그러나 건강을 위해 "나이키 신발을 신자"라고하면 "나이키"라는 브랜드의 상업용 선전이 되고 나이키족을 만들어 내는등 소위 명품족 유행을 만들어 사회에 부작용을 초래한다.   
신앙 사회도 마찬가지다.  영적 각성운동이라면 건강 홍보처럼 누구나가 알아들을 수 있는 메시지며 안에 예배정신이며 예배행위의 일체가 내포되어 있다생각해 보자. 예배에 특별한 노 하우가 어디 있겠는가성경말고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요란한 포장일수록 속은 비어있기 마련이다.  식품도 자연 그대로가 건강에 이로운 것처럼 신앙도 조촐하고소박하게 순수한 그대로가 영적성장에 이롭지 않겠는가
자기 정체성에 혼란과 허약함을 느끼는 많은 이민자 가정의 순수한 한인 청소년들의 영성에 운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들도 보스톤파등 주최자들의 구습을 암암리에 이어받아 단체 이름의 파를 조직하여 안에서만 특혜를 누리고 교통하는 폐습을 이어받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천국 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특권이 어디서나 예수안에서만 자유롭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어떤 특정단체의 이름 안에서만 주어지는등 신앙의 명품족을 만들어 낼까 심히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교회사회에 명품 신앙족 폐단을 방지하려면 이들 단체는 자기들의 자료를 세상에 공개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그리고 어떤 이견이나 질문에도 성심껏 답변해야 할 것이다정말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에 자신들의 사역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교회사회에 자기들의 사역을 알리고 겸허하고도 적극적으로  참여를호소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많은 선한 열매를 거둔다 하여도 신앙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중요시하고 경계하는 것이기에 운동의 주최자들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하노라고 했던  바울의 겸비하고 양심적인 신앙선언이 심령에 진지하게 부딪혀야만  할것이다
어떤 크리스챤 조직이고 순수한 성경의 가르침 보다는 민족이나 국가, 특정 정치나 사회적 이념 또는 특정 부류등의 색깔들을 앞세우면 본질이 변형 내지 변질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그것도 가장 핵심이 되는  "예배'같은 신앙의 진수를  구호로 삼는다면 그리고 구호가 운동으로 되는것도 아니요조직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세대에 부는 돌풍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다만 끝날까지 견디는 개개인의 꿇는무릎과 흐르는 눈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말이다
한인 기독교 사회에 참으로 기본에 충실하고 양심적인 종교 철학이 어느정도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순수하고 조화된 사고력을 바탕으로통찰력과 최소한 상아탑적인 양식마저 없이 엘리트 간판만을 달고 자기 욕심에 따라 정치인들처럼 바람을 일으키며 동분서주하고 있는 위험한 신앙리더들이 존재해 있는 현실 때문인 것이다.
 (justice)와 (mercy)(faithfulness)버린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선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23:28)"책망하셨던 사실을 우리 모두 가슴에 새기고 조용히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사순절 주간을 보내길 기도해 본다.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참빛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14284858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참빛칼럼
다음기사 : 고난 묵상 (2011-12-28 02:44:51)
이전기사 : 너의 밤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 (2011-12-28 02:44:09)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