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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2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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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 포인트

터닝 포인트


어느 덧 세모가 되어 새해를 맞이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올 한해는 마디마디 현재 진행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점철된 것 처럼 세월의 간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들 마음에 찍힌 동시대인들이 떠난 빈 자리들과 함께 새로이 개막된 희망의 시그날들이 유난히도 컸던 한 해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교적 적시에 내려준 서설(瑞雪)로 이 한해의 마지막 달은 경이로움을 더해가고 성장(盛裝)한 여인처럼 우아한 자태의 고즈녁한 기품마저 느껴진다.
 
작년 겨울은 몹시도 힘들었었다.  어깨와 팔의 지속적인 통증으로 온종일 겨울내내 누워 있다시피 했다.  통증의 성격이 이상해서 불구자처럼 혼자서 마음대로 옷을 입고 벗을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워낙 가늘고 약한 팔이 뻣뻣이 굳고 마르는 증세와 함께 신음소리가 쉴새없이 새어나왔다. 

통증이 십이월부터 시작해서 삼월까지 지속되었으니 작년 겨울엔 바깥 세상에 눈이 왔나 안왔나 내다볼 겨를도 없었다.  유난히 통증에 예민한 나는 정신도 쇠약해져 기도도 제대로 못하고 병원문만 몇번 두드렸는데 원인 규명이 안된다는 진단이었다. 봄은 기약없이 아주 멀리 있는 것만 같았다.

삼월이 되어 봄이 되니 통증도 서서이 줄어들고 교회 문제가 타결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왔다. 삼월 팔일, 첫 개척 예배를 드리는 감격을 맞게 되었다. 안수 이년만에 하나님과 세상에 비로서 떳떳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반주자 구하기가 그렇게도 어렵다는데 이웃 교단 목사님께서 반주자와 찬양 인도자로 봉사하실 내외분도 보내주시고 많이 모이면 열두명 정도 되었다.  어떤 목사님께선 "스타트가 아주 좋은데...난 처음 여덟명으로 시작했다고..."하면서 박수까지 쳐주시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교인 수에 대해선 개의치 않았다.  늘 홈레스 선교가 마음속에 떠나질 않아 허름한 창고를 얻으려고 사방 알아보고 다녔었다.  그런데 의외로 대궐 같은 교회가 예배 처소로 허락된 것이었다. 그래서 첫번째 드는 걱정이 홈레스처럼 허름한 이들이 오면 미국 교회가 좋아할까라는 우려였다.  그동안 다른 교회에서 얼마나 눈치를 보며 지냈던가?  이제는 단 한명의 교인 앞에서라도 말씀을 자유롭게 선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자유함이 충만해왔다. 

그런데 몇달 지나고 보니 주일 예배 인원수에 따라 설교하는 나의 마음 자세에 변화가 오는 것이 감지되었다.  나도 모르게 처음의 관용과는 달리 원칙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었다. 

주일 예배를 거르지 말 것, 축도 전에 나가지 말것, 예배 참석하지 않으면 헌금도 내지 말 것등을 요구하게 되자 반발이 왔다. 그나마 있던 수도 줄어들었다.  봉사하러 오신 반주자 내외분께도 미안한 마음이 앞서 교인들이 많아질 때까지 쉬시라고 부탁드렸다.  그러고나니 나의 일 처리에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이 앞선것을 느끼며 부끄러움이 속속 느껴지는 것이었다. 시행 착오라는 것이 이런 건가 보다 생각되었다.

그간은 하이츠타운 교회 주변 상가를 돌며 전도지를 뿌리고 다녔다.  다 미국인이나 스페니쉬, 인디안들이다.  이들이 꼭 우리 교회를 안와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전도를 받으신다는 마음 자세였다.

어느 날은 대낮에 사람이 가장 많이 있는 한 레스토랑이 있어 들어가보니 중간에 큰 바가 있는 주위로 많은 이들이 비어를 마시고 있는것 같았다.  순간 당황했지만 요한 웨슬레를 떠올리니 제법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들어가자마자 "지져스 이즈 세이비어"를 외치며 팜플렛을 보여주자 바텐더인지 주인인지가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환영을 해주었다.  호탕하게 사람좋은 인상으로 꼭 네 교회를 갈거라고 화답해 주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 후에는 모 권사님과 타임 스퀘어에가서 승하객들에게 외치며 전도지를 뿌리기도 했다.  다 교인 수 불리기와는 관계없는 일들이었다.  이 일 후에 빌리고 있는 미국 교회에 가서 거리 전도를 함께 나가자고 제의했다. 좋은 반응이 나타났다. 

이들도 인근 교회 주변을 조직적으로 전도하기 시작했다. 다원주의에 물든 미 장로교회가 많은데 미혼의 젊은 브라이언 목사는 네덜란드계의 조부 목사님 밑에서 성장하여 보석처럼 순수한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골동품같은 청년 목사님이다.  자기의 멘토가 한국인 목사님이었다며 제일 좋아하는 성구로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를 꼽는 인정 많은 분이다. 

여름에는 이웃의 열린(?) 통일교 자매를 미국 교회 여름 성경학교에 동참시켰다. 이들은 교리상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예수님이 결혼을 못하고 돌아간것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는데 이들이 사는 주거지의 스트릿 이름이 하필이면 '트리니티 에비뉴'이다. 

그러니 나는 지나는 길에 이 스트릿 싸인을 볼 때마다 마음에 통증과 사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이들에 대한 사랑과 나와 만나게 하신 필연적 섭리를 느끼며 뿌리칠 수 없는 책임 의식이 솟아나는 것이다. 

식사에 초대 받을 때마다 간절히 식사 기도를 해주며 대화를 해보니 통일교 신학교를 나온 전도사인 그녀는 매우 현실적이고 모던하며 풍부한 건강 지식과 함께 리더 십 교육을 철저히 받은 듯 했다. 눈망울이 무척 착해보이는 그녀는 세련된 대화술로 내게 빈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요리저리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 스케이트장에서 담소중 내앞에 서서 살금살금 웃는 그녀에게 급기야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강렬하게 대쉬하며 십자가와 예수의 신성을 웅변하며 문 교주가 구세주라니 그가 영원히 사는 걸로 정말 믿느냐고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러냐고 안타깝다고 토로하자 그녀는 안색이 사색이 되더니 실망스런듯 고개를 떨구는 것이었다. 순수히 친구로만 지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 후 거리가 다소 소원해졌다.

그러니 지금도 난 '그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크리스챤이란 무엇인가를 사색하지 않을수 없다.  크리스챤이란 남들이 모르는 기쁨과 동시에 슬픔을 가진 자라 말하고 싶다.  사명 받은 우리들은 주님이 주신 기쁨속에서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슬픔, 이해하지 못하는 고뇌가 늘 따라다닌다. 지상에서 사역 하시는 동안의 우리 주님의 마음도 이와 같으셨을까? 

이번 겨울은 다행히 팔의 통증이 재발하지 않는 것 같다.  그대신 최근에 왼쪽 눈을 수술 받게 되었다. 이제는 작년 겨울처럼 어리석게 허송세월로 보내지 않으리라 각오하게 된다.  이 겨울에도 또 다시 나를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느껴진다. 

진찰실에 앉아서 단 몇분만에 받은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한시간 후 눈이 따갑고 아리기 시작하더니 집으로 돌아오는 트레인 안에서는 정도가 심해져 장님이 된 형국이었다.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곧 증세가 사라질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더듬거리고 간신히 트레인에 내려 대합실에서 두 눈을 감고 세시간 동안 픽업을 기다리는 동안 육신의 고통과 불편함 속에서 나는 맹인들의 처지를 온전히 실감하였다. 

많은 이들이 나를 보고 있었겠지만 난 어느 누구도 볼 수 없었다.  전철이 오고 갈때마다 들고 나는 사람들의 물결들, 따스한 체온들과 소곤거리는 대화들, 대합실 안으로 이따금 할퀴듯 지나가는 겨울의 찬 바람결, 그 어두운 시야 속에서 맹인 형제들과 동병상련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친밀하고도 그토록 환한 특별한 빛을 찾아 나만의 영혼의 여행을 시작했다.  어두움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나에겐 친구처럼 찾아와 주시는 든든한 빛이 늘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에...이 날의 경험은 내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특별하고 갚진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억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딸이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길 원하심을 느낄수 있었다.  십육년 전 한쪽 눈 때문에 밤중에 홀로 뉴욕의 어느 교회당 문을 노크하였을때의 그 간절한 믿음으로 다시 돌아와 다시 시작해 보라고 이르신다.  이 겨울을 새롭게 성숙하는 터닝 포인트로 삼으라 하신다.

"보라 새 일을 행하리라(사43:19)"고 말씀을 주신 올해 한 해를 돌아보니 스스로 후회되고 실망스런 점도 많았지만 정말 많은 새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교회를 세워주시고, 미디어를 통해 새롭게 미지의 세상과 소통하게 하시고, 많은 훌륭하신 주의 종들과 교제하게 하시고 무엇보다 특별하고 구체적인 사역의 비젼을 온 가족들에게 보여 주셨다.  오랜 숙원이었던 전문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된 남편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을 빈다.

또 이 겨울에 다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 닥터 리치, 십 육년 전 가난한 유학생의 처였 던 나의 한쪽 눈을 무료로 수술해 주신 세계적인 권위자인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백발의 노인이 되었지만, 갈때마다 나의 예외적인 무료 진찰을 못마땅해 하는 회계 담당자를 따돌리며 진찰실에서 다정히 내게 "돈 걱정은 하지 말아요. 누구든 이 병원에 한번 들어온 사람은 끝까지 책임을 집니다"하시며 아버지의 사랑으로 과일을 슬며시 내 손에 쥐어 주시는 분... 이런 아름다운 분들을 하나님께서 허물 많은 내게 허락하심은 "너도 거저 받았으니 가서 거저 주어라"는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처음으로 올해 닥터 리치에게 크리스마스 전신 카드를 보내었다: "십육년 전, 제 눈의 문제는 저를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읍니다.  당신이 예나 지금이나 제게 베풀어 주신 사랑에 저는 조금이라도 보답할 길이 없군요...바라옵건데 저 보다 부디 오래 사셔서 당신을 통해 제게 일어난 일같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 시키시는 귀한 일을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는 소수일지라도 상하고 아픈 오고 갈데 없는 심령들만을 주님께서 참빛 교회에 보내 주셔서 세리와 같이 가슴을 치며 기도하는 주님의 전으로 거듭 나기를 간절히 두 손모아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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