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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2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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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어주고 지켜 주어야 할 사람들
 

애곡, 애통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 뜻은 어떤 되어진 일에 대하여 몹시 후회하고 뉘우치면서 소리 내어 슬피 울 때를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회개하고 애통하며 오열한다. 이번 한국에서 오월의 마지막 주는 눈물과 회한, 오열의 한 주간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물이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하다, (외로웠을 때)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하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라는 죄책감과 안타까움, 그로인한 마음의 고통을 가지고 울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한 두 사람이 그렇게 외치고 후회하며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고 신문과 텔레비전, 인터넷의 동영상은 온통 회한에 찬 눈물과 미안하다는 사람들의 얼굴과 말로 채워졌었다. 지역과 남녀노소를 망라한 수많은 조문객들의 눈물을...

사람들은 후회스러운 일을 하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한다. 그 안에 서린 한 때문에 사람들은 눈믈을 흘린다.
어느 미국신문은 이번 그들의 눈물과 행동을 “한(恨)”이라고 표현하였다. 서럽게 울며 회개하는 교인들의 눈물에 대하여 본인이 다녔던 신학교 교수님의 말이다. “그런 회개의 눈물로 기도하는 민족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유대민족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민족이라고 말했다“ 한다.

이번에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울었을까? 사람들은 상대의 어떤 점이나 문제가 자신이 경험한 것,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분노한다. 아무런 힘도 없는 약자로서 강한 상대에게서 억울한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恨)은 인간이 겪는 고통으로 좌절된 희망이며 마치 불랙홀black-hole과 같이 인간의 고통이나 분노가 인간의 이성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때 나타나는 증상들을 말한다. 인간은 모욕을 받으면 분노와 괴로움, 분노의 쓴 맛과 고통을 경험한다. 한은 상처받은 마음을 말한다.

오래된 분노는 내면에서 농축되어 한으로 나타난다. 우리들 한인들은 한의 의미나 한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안다. 우리 선대의 어머니들이 겪은 시집살이에서 한을 경험했고, 가난하고 약하고 눌렸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겪은 고통에서 한을 경험한다.
 
TV의 드라마는 온통 고전물이나 현대물을 막론하고 있는 자와 없는 자,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차별에 대한 것이다. 가난하고 못배웠다는(?) 이유로 부잣집 자식과 결혼하여 그 가족들의 차별을 받는 등 서러운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빼어내는가?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열심히 그 드라마를 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단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무기력은 오래된 억눌림과 고통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분노하게 만든다. 분노는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의 감정을 부추긴 이유가 어디서 왔는지 찾고, 그들의 찢겨진 마음과 상처를 봉합해줄 수 있는 마음이다.

이번 오월 한국에서 보여준 그 많은 사람들의 눈물은 동기가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번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이곳 뉴욕, 미국에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했다“라는 죄책감과 회개, 회한으로 가득 찬 단어를 읽으며 대한민국에만 같이 있어 주고 지켜줘야 할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곳 미국, 뉴욕에도 있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 어느 구석에서 혼자 슬퍼 우는 사람, 좌절과 모욕감으로 인하여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 좌절감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무력감과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을 찾아보자. 아마 엄청 많은 사람들이 발견될 것이다.

나의 예수님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며 우셨고, 약한 자에게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는 것 같이 품어주셨다. 동생이 죽어 슬픈 자매들의 동생을 살려내므로 위로하셨고, 배고픈 자들에게는 음식을 주어 먹게 했으며, 병든 자들은 고쳐주었다.

주님은 없고 약한 자들의 편에서 이모저모로 슬픈 마음을 위로해주신 분이 주님이시다. 약자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를 내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함께 함으로, 지켜줌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원하는 그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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