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빛 색깔이 가장 선명한 계절입니다.
봄에 옷을 입히는 파스텔의 연함보다, 여름을 뒤덮는 진초록의 향연보다, 겨울의 어두컴컴함을 덮어 쒸우는 흰색 일색보다도 모든 칼라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빨간 색으로 무르익는 사과의 상큼함이 푸른 잎과의 조화는 가을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는 가을의 맛이고요, 가을걷이에 분주한 농부의 목마름을 적셔주는 빨간 사과는 누가 뭐래도 가을의 과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주황으로 북에서 남으로, 산등성이에서 계곡으로 스물 스물 내려오는 울긋불긋 단풍이 없었다면 가을은 무슨 멋이 있을까요?
높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까치밥 홍시는 시골에 계신 너그러우신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떠 올리게 합니다.
어느 여학생 책갈피에 고이 접어둔 노오란 은행잎은 아스라한 추억을 만들고, 덕수궁 돌담길 옆 수복이 쌓인 노란 은행잎은 누렇게 머리 숙인 들녘으로 발길을 인도하는데요, 논두렁 사이로 조그만 연못에는 아직도 초록을 잃기 싫은 어리연 푸른 잎은 뿌리가 진흙을 웅켜 잡은 듯 여름 끝자락을 붙잡고 애처롭게 애원하며 물위에 떠 안달을 하고 있습니다.
인적이 뜸한 어느 산골짜기에선가는 남색으로 촘촘히 맺힌 머루가 잎새 뒤에 숨어 숨어 보일락 발락 새악시의 볼처럼 수줍어하고 있을 텐데대장장이의 딸로 태어나 쑥을 캐어 허기진 동생들의 배를 채워주던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의 딸”의 전설처럼 보라색 꽃잎과 노란 꽃술의 쑥부쟁이 꽃은 속절없이 기다리는 임을 향한 마음으로 새파란 가을 하늘만 쳐다보며 임이 떠나듯 가을이 익어 감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들려오는 세상의 소리는 점점 암울한 소식뿐인데, 그래도 가을은 우리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세상이 아무리 거센 파도처럼 흉흉해져도 일곱 색깔 무지개는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가을의 울긋불긋 색의 향연을 보세요. 가기엔 인자하신 하나님의 미소가 있습니다.
노아와 맺으신 하나님의 무지개 약속은 아직까지 유효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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