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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1시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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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의 효과(Werther Effect)

1995년 개봉한 시고니 웨버(범죄심리학 박사로 분)가 주연한 영화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연쇄살인범이 모방범죄의 희생양으로 범죄 심리학자를 택하여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범죄를 따라하는 모방범죄를 copycat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자살을 따라하는 심리적인 용어를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유명인사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동조자살(copycat suicide) 또는 ’모방자살‘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독일의 문호 괴테가 1774년 출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gen Werther>에서 유래되었다.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베르테르는 여자 주인공 로테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의와 고독감에 빠져 끝내 권총으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당시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전 유럽 지역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베르테르의 모습에 공감한 젊은 세대의 자살이 급증하는 사태가 벌어져 급기야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발간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베르테르 효과는 이처럼 자신이 존경하던 사람이나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David Phillips가 이름을 붙였다.

그는 20여 년 동안 자살을 연구하면서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자살률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이 연구결과를 얻었다.

1933년 레조 세레스가 가사 없는 피아노곡으로 작곡한 'gloomy sunday'는 1935년 헝가리에서 레코드로 발매된 지 8주 만에 187명이 자살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뉴욕 타임지는 ‘수백 명을 자살하게 한 노래‘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프랑스에 있는 세계적인 레이 벤츄라 오케스트라 콘서트 홀에서 ‘우울한 일요일(gloomy Sunday)'를 연주하던 단원들은 드럼 연주자의 권총자살을 시작으로 거의 모든 단원들이 자살을 했으며 작곡자인 Riezo Seress는 연인을 잃은 슬픔으로 이 곡을 작곡했는데 그 역시 1968년 겨울, 이곡을 들은 후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하였다.

그 후 마약처럼, 사랑처럼, 사람을 중독시키는 ‘죽음의 송가’라는 별명이 붙은 이 곡은 원본은 폐기 되었는데 실제로 이 음악의 음조에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무거운 리듬이 깔려 있다고 한다.

이것을 마음속으로 동조하다보면 우울한 기분에 취하게 되고 사람을 괜히 감상적으로 만들어 군중심리를 따라 모방자살에 이르게 된다고 심리학자들은 경고한다.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가 된다며 희망을 던져주던 희망전도사가 자살로 그의 생을 마감했다. 그의 희망의 메시지는 2007년 2월 7일 창원지법 315호 법정에서 카드빚 때문에 여관에서 자살을 기도하다 불이나 여관주인에 의해 고발당한 한 젊은이에게 희망의 화두를 던져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법정의 재판관인 문 형배 부장판사는 법정에 나온 이 젊은이에게 ‘자살’이란 말을 끊지 말고 10번을 반복하라고 명령했다. 당사자인 청년과 방청객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자 재판관은 망설이지 말고 큰 소리로 외치라고 명령했다. 청년이 ‘자살’을 반복해 외치자 법정 안에는 점점 ‘살자’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살은 절대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자살은 자기에게 맡겨 준 생의 포기일 뿐이다. 생명을 있게 해 준 부모님께 대한 배반이요 자신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비겁한 인사법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언어로도 자살을 미화시키거나 합리화시키지 못한다. 또한 그 어떤 자살도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그가 행복을 전하는 행복전도사이었거나 일국의 대통령이었을 지라도 자살은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와 후유증의 아픔만 남겨 줄 뿐이다.

행복의 영어 Happiness(행복)은 Happen(일어나다, 발생하다)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행복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요 자신의 삶을 통하여 발생시키는 것이다. 누구도 내게 행복이란 답을 주지 못한다. 행복은 단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인해 내게 발생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문제를 안고 우리 모두는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인생이란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하여 험난한 삶의 과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온 과정을 걷고 나서 인생의 종착역에 이르렀을 때 각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인생의 소중한 해답을 안고 또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자살은 인생의 정답이 아니다. 명백한 오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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