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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1시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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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 앞에 더 겸손해져야 한다.
 인간은 지구상의 생물 중 가장 타 생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먹이사슬(Food Chain)의  최상위 포식자이자 소비자이다. 1차 생산자인 식물과 그 식물을 먹고 자라는 2차 생산자인 초식동물이 없이는 사람은 살 수 없다. 곧 이들이 인간의 먹을거리이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1차 생산자인 식물은 물과 햇빛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산다. 조건만 맞으면 다른 생물에 의존하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
 
  1945년 히로시마에 Little boy라는 핵폭탄이 떨어졌다. 핵폭탄의 뜨거운 열이 시속 320km의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8만 명이라는 숫자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러나 핵폭탄을 맞은 은행나무는 천년을 넘어 지금도 매년 잎을 내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밋에 발견된 3000년 전의 씨앗이 조건만 맞춰주면 싹이 트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인 미국의 삼나무는 키가 84m 둘레가 31m이다. 그리고 지구 생명체 중 가장 오래된 나무는 브리스톨콘 소나무로 그 나이가 5천살쯤으로 추정한다.
 
  다른 생물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고 섭취하는 나무는 다른 장소로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한자리에서 사는 지구상의 생물 중 가장 독립된 생명체다. 온 지구가 망해 사람이 멸종된다 해도 식물들은 그 자리에서 살아 갈 것이다. 그러나 지구가 망해 식물이 사라지고 사람이 살아남는다면 사람도 곧 죽고 말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내는 치타는 최고 시속 100km를 달릴 수 있다. 사람이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시속 36km를 넘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 속도를 극복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백수의 왕으로 알려진 호랑이의 앞발의 힘은 보통 800-900kg의 힘을 낸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 정확한 목표를 보고 휘두르는 힘이 300kg 정도이니 무기 없이 호랑이와 싸워 이긴다는 말은 호걸이 지어낸 허풍임에 틀림없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몸무게가 무려 6톤에 달리기 속도가 시속 35km로 달린다. 얼룩말의 경우 300kg에 시속 64km로 달리니 사람이 이들과 경쟁하기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걷는 것과 뛰는 것의 차이는 두 발이 모두 공중에 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인데 두발로 걷거나 뛰는 사람이 네 발로 달리는 동물들과의 경쟁에서 지는 것은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네발로 달리는 동물은 세 발은 공중에 떠있고 한 발만 땅을 짚고 달린다. 원숭이들이 평소에는 두 발로 다니다가도 급해지면 네 발로 달아나는 것을 보면 사람이 달리기에서 질수밖에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경쟁자들 속에서 사람이 최상위 소비자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도구를 사용하여 경쟁자들의 속도와 무게, 거기에서 나오는 힘을 누를 수 있었고 오히려 저들을 훈련시켜 가축으로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이 지혜는 교만으로 변해 마치 인간이 자연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듯이 살아왔다. 자연을 오염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환경을 파괴하여 공존의 관계를 깨트려버리고 말았다.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사람이 가장 자연 의존성이 높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지난 9월 16일은 불청객으로 찾아온 토네이도성 폭풍 앞에 인간의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된 하루였다. 단 10분 만에 모든 것이 초토화 된 자연의 보복 앞에 과연 인간의 우월함을 의시 댈 수 있을까? 인간이 저질러 논 지구의 온나화로 인해 토네이도는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뉴욕커들에게, 이제 복잡한 뉴욕생활에 또 하나의 짐을 더하게 되었다.  
 
  이제 공존의 관계를 넘어 공생의 관계로 가야 한다. 공존이 함께 도우며 살아간다는 의미라면 공생은 공동의 운명아래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의미한다. 같은 종류의 동물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동물들이 함께 도우며 의지하며 살아가는 공생의 관계가 진정한 자연을 만들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자연을 다 만드신 후에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드시고 자연을 다스리게 하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맨 마지막에 만드셨기에 인간은 자연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귀 기울여 더 더욱 겸손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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