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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1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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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데일(James B. Stockdale)이 말하는 희망

제임스 스톡데일(James B. Stockdale) 미 해군 장성은 월남전에 참가했다가 베트남의 포로가 되어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무려 8년 동안이나 하노이의 한 전쟁포로수용소에 감금되었다. 그는 20여 차례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아야했고 독방신세를 감수하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에 시달려야만했다. 그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해 자신뿐만 아니라 미군 포로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도록 도왔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나는 혼자다’라는 고독감인데 스톡데일은 동료들에게 이런 고립감을 덜어주고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독방에 앉아 말 대신 손가락으로 톡톡 쳐서 신호를 보내는 ‘톡톡 부호’를 고안해 냈다. 이 들릴 듯 말 듯 이어지는 신호음은 고독과 불안감에 싸여 있는 모든 포로들에게 희망의 신호가 되었다. 

그 무시무시한 수용소에서 한번은 포로들의 톡톡부호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긴장하는 가운데 그 부호의 신호음은 이렇게 들려왔다.

“스톡데일 장군님, 사랑해요.”

스톡데일은 처절하고도 암울한 상황 속에서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반드시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먼 훗날 지금의 힘든 시간을 회상할 때 후회하지 않을 자기생애의 큰 전환점으로 삼겠다는 다짐을 더욱 확고히 했다.

훗날 스톡데일이 미국으로 귀환했을 때 고문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온 그를 향해 기자들이 물었다.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도 없이 8년이라는 긴 세월을 어떻게 모진 고문과 여러 악조건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스톡데일은 대답했다.

“언젠가는 꼭 풀려날 거라는 희망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포로들 가운데 오랜 포로 생활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든 사람도 있었기에 기자들이 물었다.

“다른 포로들은 똑 같은 상황에서 왜 살아남지 못한 것입니까?”“그것 역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풀려 날수 있겠지, 다음 성탄절에는 풀려나겠지 등 바로 눈앞의 희망만 가지고 살았던 포로들은 제풀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지요.”

스톡데일은 결국 성공 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과 눈앞에 닥친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 이 두 가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두 가지 파라독스적(역설적)인 마인드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만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더 강해 질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아우비츄 수용소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아 <죽음의 포로수용소에서>라는 유명한 책을 남긴 빅터 프랭클이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얼굴에 피를 바르며 건강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자신의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스톡데일 파라독스(Stockdale Paradox)라고 이름붙인 이 현상은 ’곧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막연한 낙관주의자‘들보다 ’어렵지만 언젠가는 수용소를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 ’낙관적인 현실주의자‘들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는 것이다.

당시 수용소생활을 가장 고통스럽게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단순한 낙관주의자들이었다. 성탄절까지는 어떻게 석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그때가 지나면 다시 부활절 때 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막연한 낙관주의자들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절망감과 상실감으로 죽어나갔다. 그러나 낙관적 현실주의자들은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사람들로서 결국 이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더라는 것이다.

스톡데일의 역설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 믿음이야말로 어떤 역경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희망의 빛이다. 둘째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어렵고 냉혹한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야 말로 막연한 낙관주의에 기대어 신기루를 쫓아 헤매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요즘 어렵고 힘든 세월이 흐르고 있다. 어렵다고 좌절하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믿음이다. 이 때를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이라는 희망의 끈을 꽉 붙들고 성공의 시간이 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준비해야 한다. 빅터 플랭클이 독일군 앞에서 건강함을 보이기 위해 깨진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 피를 내어 얼굴에 바르는 단호함은 바로 우리 앞에 와 있는 현실이다.

감나무 밑에 누워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게으른 낙관주의자 입에는 절대로 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무에 앉아 감을 쪼아 먹는 새똥이나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성경은 말한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기뻐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다.”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환란이라면 차라리 이것을 즐기라. 그래야 환란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이 연단 받는 자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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