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천선의 국어적 의미는 ‘과거의 허물을 씻고 착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국의 진나라 혜제 때 주처(周處)라는 사람의 행실로부터 유래되었다. 주처는 일찍 부모를 여읜 후 온갖 못된 짓을 일삼는 망나니로 살았다. 오죽하면 동네 사람들은 주처가 나타나면 아예 피해버리거나 그가 있으면 오던 길도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처는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인근 산속의 호랑이와 저수지의 용, 그리고 마을의 주처가 없어져야 할 세 가지 해악”이라는 것이었다.
주처는 이 말을 듣고 잘못을 깊이 뉘우쳐 자신이 달라졌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두 가지 해악을 없애기로 결심한다. 목숨을 건 혈투 끝에 호랑이와 용을 죽인 주처는 의기양양하게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주처를 피하며 “두 가지 해악은 사라졌지만 그 중 제일 못된 주처는 아직 살아있다.”는 싸늘한 반응만을 듣게 된다.
낙담은 되었지만 어차피 새 사람이 되기로 작정한 주처는 마음을 추스르곤 집에 틀어 박혀 학문에 정진하며 이웃의 대소사 어려운 일은 자기 일처럼 도맡아 해결한다.
그러자 서서히 사람들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며 주처가 옛 허물을 고치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칭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개과천선이란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물이 쉽게 그 성질을 바꾸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H20)은 수소(H) 두 분자와 산소(O)한 분자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수소와 산소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 두 분자가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섭씨 4.000도 이상의 온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수소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를 쉽게 만들 수 없는 이유이다.
만약 물이 온도에 따라 쉽게 그 성질이 변한다면 75%의 물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은 온도의 변화에 따라 쉽게 변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의 성질이 쉽게 변하지 않듯이 인성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하여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사람이 거듭나려면 어머니의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성령을 바람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나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곳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 영이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성령으로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다. 다시 말해 믿는 사람들은 개과천선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주처가 마음을 다잡아 두 가지 해악을 제거 했다고 동네 사람들이 그를 용납한 것이 아니라 비로소 그가 동네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개과천선을 받아들인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다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살 때 비로소 참 성도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교인들 중에 성령을 통해 개과천선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이웃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하고 옆집이 벤츠를 사면 부부싸움을 하는 교인이 많으니 문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