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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1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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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bris(오만함)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hubris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로도 사용되는 이 말은 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의 연합군 장군인 아킬레스가 트로이 왕자인 핵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발가벗긴 후 말에 메달아 끌고 다니면서 트로이 왕을 능멸하는 오만한 행위를 보고 영국의 역사학자인자 문명비평가인 아놀드 J. 토인비가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오만의 극치를 해석학적 용어로 사용하면서 유명해졌다.


토인비는 역사가 창조적 소수에 의해 바뀌어가지만 일단 역사를 바꾸는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는 과거에 일을 성사시킨 자신의 능력이나 방법을 지나치게 믿어 스스로 우상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보았다. 곧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을 과신해 자신의 능력 또는 자신이 했던 방법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해 실패를 자초하는 경우를 hubris(오만)로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역사 해석학적인 용어로만 사용되지 않고 사회적 현상에도 적용되어 쓰이기도 한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집착하여 자신의 능력만을 절대적 진리로 믿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상관없이 또 세상이야 어떻게 바뀌든 자신의 방식대로만 생각하고 일을 밀어붙이다 실패하는 부류를 일컫게 되었다.


2008년 불어 닥친 미국 발 금융대란 역시 오만이나 거만함의 극치의 결과이다.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한 금융계의 불법과 비윤리적 관행은 극에 달했다. 이를 견제해야할 세력 역시 도덕적 헤저드에 빠져 금융계가 비윤리적인 파생상품을 만들어도 피자의 파이를 더 크게 만들었다고 오히려 부추기는 hubris에 빠졌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어느 한 부류에서만 나타났던 것일까? 개인과 집단, 국가적인 hubris는 곳곳에 일어났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부시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세계의 경찰국임을 자처하며 악의 세력을 몰아낸답시고 전쟁을 일삼았다.

국민 개개인은 자신의 소득 능력 이상의 집을 사고 큰 자동차를 굴리면서 호화생활을 만끽하고 있었으며 당시 30대의 MBA학생들에게 앞으로의 진로를 물으면 그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앞으로 Wall Street에서 10년간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번 후 바하마로 이주하겠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아무리 Wall Street이지만 10년 동안 떼돈을 번다는 착상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희망이었지만 실제로 이들은 그 꿈을 이루어 마이아미 휴양지로 가지 않고 돈을 가지고 바하마라는 다른 나라로 도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hubris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미국의 금융대란은 어느 한 사람만의 hubris가 아니라 개인, 집단, 국가가 삼위일체가 되어 일으킨 오만의 결과이다.


진정한 군인이라면 미워하는 적국의 장수가 죽더라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수로서의 예를 다 갖춰주는 것이 진정한 군인 정신이다. 아무리 전쟁에 이겼어도 포로가 된 적군의 장군에게는 장군으로서의 예를 갖추어 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소련 공산세력이 무너지고 초일류국가가 된 미국이 아킬레스처럼 오만하다 결국 세계인의 존경이 아니라 오히려 Anti-U.S.A를 양산하는 오만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고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다치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가 걸러온 길이 Hubris적 요소는 없었는지 우리 스스로를 점검해 봐야한다. 중세시대의 기독교적 hubris가 십자군전쟁을 일으켰고 선교라는 이름으로 제국주의 앞에 서서 식민지의 길을 열지는 않았는지도 우리 자신을 짚어봐야 한다.


기득권을 가지고 오히려 낮아지고 힘을 가졌을 때 오히려 부드러워지는 온유와 겸손을 배우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오만의 극치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그래서 역사를 History(예수님의 이야기)라고 부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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