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의식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5월 22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샘물칼럼
2011년12월28일 01시46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엽전의식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서로 상대방을 비하하고 경멸하는 말을 할 때 “엽전”이라고 한다. 왜 같은 민족끼리 서로 우애하며 살아도 모자란데 “엽전”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걸까? 사뭇 그 유래가 궁금하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기에 편리한 지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에 쓰던 엽전을 그냥 사용하는 고집으로부터 아직 봉건적인 인습에서 탈피하지 못했음을 빗대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말을 일제시대에 일본인과친일파 자식들이 우리민족이 열등하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일제의 지배가 정당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악의적으로 퍼뜨린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로 우리민족은 엽전으로 불릴 만큼 열등한 민족이 아니다. 우리의 5000년 유구한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요즘 금융대란 이후 중국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오히려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대한 민족인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중국의 중화사상의 피해자로  중국에 합병되어 얼마나 많은 소수민족이 나라는커녕 민족의 생존마저 위협을 받고 있는지 티벳과 위그르 저항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비록 36년간 일제의 강점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 온 우리 민족이야 말로 이 시대에 당당히 그 끈기와 저력을 인정받아야 하고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자격이 있는 민족이다.         


 1945년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많은 신생독립국가가 탄생했지만 5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더군다나 3년간의 동족상잔의 6.25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이룬 성과이기에 더 소중하고 값진 결과가 아니겠는가? 경제력으로 세계15위, 무역량으로 세계 11위, 올림픽에서 10위권을 유지하고 세계 모든 나라로부터 녹색산업의 선두역할을 담당 받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는데 정작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인정하는데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오죽하면 대만의 한 교수가 이렇게 지적한 적이 있다. 한국인들을 보면 두 번 놀라는데 하나는 세상 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을 무서워하는데 한국인들은 일본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세상 모든 나라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놀라와하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일들에 대하여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것이 아직 우리에게 일본인들이 쇠뇌시켜 놓은 마취가 풀리지 않아 우리 자신을 몰라보는 엽전의식이 남아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일구어 온 일들이 한 차원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엽전의식을 버리고 우리자신에 대해 자부심 내지는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입만 열면 한국의 경제발전과 교육을 본받자고 하지 않는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에굽에서 탈출시킨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시키셨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이집트에 살면서 자산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몸에 밴 노예근성(엽전의식)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같은 민족끼리 반목하고 싸우는 것을 말리는 모세에게 오히려 대들고 자신을 보호해 주기 위하여 이집트 병사를 죽였다고 고자질이나 하는 노예근성이 광야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종살이에서 자유를 찾아준 지도자에게 불평불만으로 일관하는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노예근성으로는 새롭게 창조할 하나님의 신성국가 가나안에 들어 갈 자격이 되지 않았기에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고(모세를 포함하여)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1.5세와 2세들만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한 충성스런 종이 있었다. 주인이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그런 중이었다. 하루는 주인이 종에게 오늘은 감자밭에 가서 감자를 캐어 구덩이를 두 개를 파 한 구덩이에는 큰 감자를 한 구덩이에는 작은 감자를 묻으라고 했다. 저녁이 되어 종이 돌아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종아 돌아오지 않자 주인은 걱정이 되어 감자밭으로 나갔다. 그런데 감자를 캐서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종이 구덩이 사이에서 울고 있었다.

주인이 왜 우느냐고 묻자 종이 하는 말이 감자를 다 캐서 큰 감자와 작은 감자를 나누어 묻어야 하는데 어느 것이 큰 감자이고 작은 감자인지 구별할 줄을 몰라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종의 근성을 적나라하게 대변해주는 예화이다. 시키는 것만 할 줄 알지 창의성이 없는 사람은 산의 8부 능선까지는 잘 올라가지만 정상에까지 서기는 어렵다.


  이제 세상이 대한민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또 우리 대한민국은 그럴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나라이다. 다만 가진 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고 없는 자들에게 교만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한국인은 분명히 세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일등 선진국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샘물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80533786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샘물칼럼
다음기사 : 옹달샘 (2011-12-28 01:46:30)
이전기사 : 우산 (2011-12-28 01:45:50)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