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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1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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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경제( Vampire Economy)


 
  박쥐라는 동물은 주로 밤에 먹이 활동을 하는 야행성으로 햇빛을 싫어하는 습관 때문에 낮에는 어두운 동굴에서 지내는 생긴 것조차 혐오스럽게 생긴 날아다니는 포유류이다. 그의 생김새로 인해 사람에게는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박쥐를 무서운 흡혈귀로 상징화해 버렸다. 그런 박쥐의 이미지를 가지고 동서고금을 통해서 뱀파이어에 대한 전설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뱀파이어에게 한번 물리면 피를 빨린 자도 뱀파이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뱀파이어를 소재로 다룬 영화를 보면서 과연 세상에 뱀파이어들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센츄럴 플로리다 대학의 코스타 에프티뮤 교수는 2006년 논문에서 몇 가지 계산만으로 뱀파이어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세계인구가 5억 명 정도이던 서기 1600년 1월, 지구상에 단 한명의 뱀파이어가 존재하고 그가 생존하기 위해 매월 1명씩의 피를 빨게 되면 그 희생자도 역시 뱀파이어가 되기 때문에 1600년 2월에는 뱀파이어가 2명으로 늘어나고 다음 달에는 4명 4월 달에는 8명이 되어 기하급수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나게 된다.

 


  이 경우 출산율을 감안한다 해도 1603년이 오기 전에 지구상에는 뱀파이어의 먹이가 될 인간이 더 이상 남게 되지 않게 됨으로 뱀파이어가 안 먹고 살기 전에는 스스로 전멸하게 된다. 결국 뱀파이어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억제하지 못하면 그들의 먹이인 인류는 말살되고 스스로의 운명도 종지부를 찍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뱀파이어 경제란 이렇게 남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만의 이익만을 위해 탐욕을 부리는 기업 활동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정상적인 기업행위나 노동을 하지 않고 쉽게 부를 축척하려는 행위, 혹은 정상적인 기업에 기생하여 살아가려는 기업 등을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업 활동이라는 명목 하에 땅을 사재기하여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버는 행위, 기업의 주식을 상장시켜놓고 주가를 조작하여 개미들의 코 묻은 푼돈을 싹쓸이 하는 행위, 아니면 정권에 빌붙어 불노소득을 노리는 행위들을 말할 수 있다.

 


 요즘 한창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전직 대통령과 T기업의 회장이란 사람의 행태를 보면 뱀파이어 경제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쓰름하다. 세계적인 신발 브랜드 업체인 NIKE사에 OEM방식으로 신발을 납품하던 기업이 권력에 기대어 베트남이 발주한 핵발전소 사업을 수주하고 농협의 자회사를 인수하고 환차액을 이용하여 막대한 불노소득을 얻고 권력은 그렇게 해준 대가로 자기 주머니의 돈을 쓰듯 필요한 대로 손을 내미는 서로의 은밀한 묵계가 야음을 틈타 곤히 잠자고 있는 다른 동물의 피를 빠는 뱀파이어를 보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정치와 경제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자기 욕구 채우기에 급급했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역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탐욕에 빠져있던 사람들이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영혼구원에 정진하기보다 교회건축이란 명목으로 땅투기에 발을 들여 놓고 목회자는 교인들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배만 부르면 그만이고 교회의 당회장실은 마치 재벌회사의 회장실보다도 더 화려하게 꾸며놓고 교회를 마치 기업경영 하듯 부교역자들을 회사원 정도로 취급하고 그것도 모자라 교회세습을 일삼는 한국의 대형교회들 역시 뱀파이어 경제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음은 본인만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결국 뱀파이어 경제는 본질에서 벗어나 비 본질에 목숨을 거는 모든 행위라고 일컬을 수 있다. 기업이면 기업답게 노동의 정당한 대가로 승부하고 교회는 그 본질을 잃지 않고 어두운 세상의 영혼구원을 위해 등대 역할에 충실할 때 그리고 개인들 또한 한탕주의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자기 일에 충실하다보면 우리의 모두의 모습 속에서  워낭소리 딸랑이는 아름다운 소의 이미지를 갖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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