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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1시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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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돌이킬 수 없는
시골의 작은 마을에 7살짜리 여자아이와 아빠는 작은 꽃집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쁘고 귀여운 여자아이는 아빠가 손톱을 잘라주던 것을 뿌리치고 집을 나가 행방불명(行方不明)이 되었다.


아빠는 여아 실종신고(失踪申告)를 하게 되고 아이를 백방으로 찾아 나서게 된다. 사건을 맡게 된 형사는 단순한 실종사건(失踪事件)이 아니고 유괴사건(誘拐事件)일 것이라는 전제하에 수사를 진행하게 되고, 때마침 한 장의 공문을 접하게 된다.


과거에 여아 성추행 사건으로 복역하고 출소한 젊은 청년이 시골마을로 이사 왔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읽은 형사는 젊은 청년을 의심하게 되고 수사방향은 청년에게로 집중하게 된다. 아이의 아빠도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같은 마을로 이사 온 젊은 청년이 자신의 딸을 납치 했거나 실종에 관련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청년을 괴롭힌다.


젊은 청년의 여동생은 동네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지만 오빠와 관련된 소식이 온 마을에 퍼져 학부모들의 유치원 등교거부(登校 拒否)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되고 마침내 아무 잘못도 없이 마을사람들로 인해 이사 왔던 마을을 울며 떠나게 된다.


며칠 후 실종된 여자아이는 사체(死體)로 발견되었고 수사에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모든 정황이 젊은 청년에게로 향하게 되고 형사도, 아이의 아빠도 젊은이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인권을 무시한 채 근접확인에 들어간다.


급기야 멀리서 아이와 젊은 청년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본 목격자가 나타나게 되고 젊은 청년을 긴급체포(緊急逮捕)한다. 발견된 사체의 신발에서 발견된 낚시할 때 쓰는 도구를 들고 낚시터로 향한 형사는 물증(物證)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젊은 청년에게서 심증(心證)만 있고 물증확보에는 실패하고 만다.


증거불충분(證據不充分)으로 젊은 청년은 풀려나게 되고 아이의 아빠는 이 청년을 괴롭히다 못해 마을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힘들게 만든다. 동네 사람들도 청년을 바라보는 눈길이 성추행 범에 살인범으로 간주하고 바라보며 청년이 스스로 마을을 떠나기를 바란다.


함께 살던 어머니의 믿음만을 의지한 채 청년은 마을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동네를 떠나는 버스에 올라타게 된다. 이 때 동네의 어린 남자아이가 목격자(目擊者)로 나타나고 당일 그 지역을 지나갔던 노선버스의 녹화 테잎을 확보하여 분석해 보고 형사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허겁지겁 젊은 청년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마을을 떠나려고 버스에 올라탔던 젊은 청년은 실종된 7살짜리 여자아이의 아빠에 의해 살해되고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어 사건현장만이 형사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에 성폭행 범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젊은 청년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모든 초점을 한 곳에 맞추어 수사를 펴 왔던 형사는 그가 범인이 아니고 오히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주려 한 용감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부검의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우를 범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되지만, 자신의 편견(偏見)과 고정관념(固定觀念)에 의해 희생된 젊은이와 그의 가족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오점(汚點)을 남기게 된다.


우리는 늘 자신의 고정관념(Stereotype)을 깨려 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자신만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정죄하려 한다. 만약 형사만이라도 젊은 청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 말을 귀담아 듣고 다른 방향으로 수사를 전개 했다면, 자신에게도 통한에 사무치는 오점을 남기지 않고 젊은 청년의 가족들에게도 슬픔을 주지 않았을 것을……, 또한 실종된 아이의 아빠를 예쁘고 귀여운 딸을 잃은 것만도 큰 아픔인데 살인자까지 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을…….(이상 2010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을 보고나서)


뒤돌아서서 “돌이킬 수 없소?”라고 외쳐 봐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일로 때늦은 후회란 것을 알게 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려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지식과 내가 아는 정보가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면 사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내 마음에 고정된 생각만을 내세우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노력하자.


작은 관심이 살리기 위한 관심이라면 이해와 용서와 사랑이 되지만, 작은 관심이 죽이기 위한 관심이라면 의심과 정죄와 심판이 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이웃을 보고, 형제와 자매를 보아야 할 것이다.


요즈음 IHOP과 관련된 논쟁, 신사도 운동과 관련된 논쟁, 인터콥과 관련된 논쟁 등 많은 이슈들로 인해 교계가 갑론을박(甲論乙駁)으로 뜨겁다.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이단에 대한 논쟁은 계속해서 있어 왔고, 현재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때를 맞춰 사탄은 교계를 흔들고 무너트리려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이단논쟁(異端論爭)에 참여하여 시간을 허비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창조설(創造論)을 부인하고, 성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과 재림을 부인하고, 자신들만이 정통이라고 내세우는 진짜 이단을 분별하여 그들과 대적하기도 힘든데 우리들끼리 싸워야 되겠냐는 것이다.


필자는 단호하게 이단은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단을 이단이라 할 때에는 검증에 또 검증, 물증에 또 물증을 확보하여 판단해야 하고, 어설프게 풍문이나, 의혹이나, 고정관념의 생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정죄하고, 저주한다면 나 자신 또한 상대방에 의해 비판 받고, 정죄 받고, 저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오늘도 내가 처한 환경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자.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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