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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0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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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⑤


멕시코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⑤
<나는 모르겠습니다>  
  무릎이 얼마나 아팠는지 쓰레기를 담는
검은 봉투를 칭칭 동여맨 여인이 다가왔다.

걸어오지도 못하고 벽을 집고 기어오다시피 나에게 다가왔다.

오늘 친구가 기도를 받고 무릎이 아팠었는데 깨끗이 나았다는 것이다.

조금 전의 여인이 틀림이 없었다. 시큰둥하며 잘 모르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간 여인이 친구인 지금 찾아온 여인에게
자신이 낫고 기쁜 나머지 간증을 한 것이다.

 

무릎을 살펴보니 쓰레기봉투를 동여매고 살아서인지,
아니면 씻지 않아서 인지

지저분 한 것은 물론 악취까지 풍겨나고있었다.

이 여인이 과연 고침을 받고 돌아갈 수 있을까?
잠시 의심의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이곳에서는 부족 간의 엄격한 규율로 인해 이성간에 텃치(Touch)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환부인 여인의 무릎에 손을 대고 안수기도를 할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함께 간 켈리자매의 손을 여인의 무릎에 얹게 했다.

켈리 자매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는 "하나님! 이곳에서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일로 인하여 크게 번지게 하옵소서."

기도하며 "나는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알아서 하시옵소서."라는

의지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병마는 물러갈지어다. 무릎의 통증은 사라질 지어다."기도하니

방언이 절로 나온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한 것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뜨겁게 기도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고 눈을 떴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저 그 여인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의 무릎에 손을 엊고 함께 기도한 켈리는 어깨가 뜨거워졌고,

여인의 무릎에 얹은 손이 뜨거워짐을 체험했다고 신기한 듯 말을 한다.

 

"그래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거야. 분명 병 고침이 일어난 거야"

속으로 되뇌며, 입으로는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이 비닐봉투를 떼어 버리라고…….

 

여인은 한사코 손사래를 젓는다.
비닐을 벗겨내면 시리고 아파서 통증을 못 견딘다며

절대로 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수 없이 여인의 결과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돌아서려는데

 

여인이 일어섰다. 조금 전의 모습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자신의 발을 번쩍 들어 보인다. 아프지 않은가 보다.

한 걸음을 내 디딘다. 다시 한 걸음을 내 디딘다.

그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고쳐주셨습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여인이 병 고침 받은 것을…….

 

이윽고 그 여인이 말을 한다. 괜찮다는 것이다.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그대로 그렇게 쓰레기봉투를 칭칭 동여맨 무릎을
지니고 올 때의 모습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고침을 받은 활기찬 모습으로……. 


 <변기뚜껑이 없는 화장실>

 


    "주님! 감사합니다. 저 여인이 병 고침을 받았으니
마을로 돌아가 간증하게 하옵소서."
부지런히 마을로 향하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간구의 기도를 드렸다.

 

이곳은 물 사정이 좋지 않다.
시청에 있는 화장실은 볼일을 보면 바가지로 물을 퍼서 부어야 되고

먹는 물에는 석회석 성분이 많아 위장장애는 물론 장 기능을 마비시키기 까지 하기에

이곳에 적응하지 못한 우리일행은 현지의 물을 먹지 못하고 꼭 사먹야만 했다.

 

수십일 째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은 이루 말 할 수 없고,
비포장 길에는 자동차가 한 대만 지나가도

먼지가 사방을 뒤덮고, 산은 모두 민둥산에다 푸르름이란 찾아 볼 수없는 광경이었다.

우리가 있는 이 마을은 대한민국의 60년대의 모습일까?
아니면 70년대 정도의 모습일까?

 

변기 뚜껑도 없어서 엉덩이를 들고 볼일을 봐야하는 실정,

양치를 해도 수고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입에 넣고 헹구지 못할 만큼 석회질이 많고,

어디를 돌아보아도 어느 것 하나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이렇게 낙후된 마을에서 사람이 살아가려니 얼마나 병균은 많을 것이며

사람들의 수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잘라먹고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은 이곳에 비하면 천국이 아닌가?

그런데 그 곳에서 살아가면서 불평을 하지 않았던가?

저절로 하나님께 용서의 기도를 하게 되며,
아울러 감사의 기도를 하게 되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의 문제를 의식주라 하는데 이러한 기초단계인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나라의 모습이라곤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곳에 몇 년씩 의료 봉사하겠다고 찾아온 우리 선교단 일행 중의 몇 명은

그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들의 이러한 사랑이 이곳에 전해지지 않는다면

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은 첨단화된 의료혜택을 받아보지 못하고

고통과 아픔으로 나날을 보내며 살아갈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복음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있어서는

의식주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갈 즈음

육체의 고통을 겪고 있는 다음 사람이 찾아왔다. 

 

<계속해서 6편으로 이어집니다.>

" 주님! 우리는 행복합니다."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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