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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0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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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책

필리핀 선교지에서 간증을 곁든 설교를 마치고 나면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어린 딸이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아빠. 이담에 내가 크면 책을 쓸거다!”

“무슨 책을 쓸건데…?”

딸이 보부도 당당하게 말합니다.

“아빠의 전기(일대기)!”

코흘리개, 신문배달 소년, 술주정뱅이 아버지, 기적적인 회심, 책 벌레, 방황하던 청년이 신데렐라 같은 부인을 만난 이야기는 분명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는데 그 모든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빠의 이야기가 딸에게는 경이(?)로운 이야기였나 봅니다. 그렇게 깜찍하고 당차게 아빠의 삶을 책으로 그려 내겠다던 딸이 쑤욱 자라더니 어느새 대학에 들어 갈 나이가  될 때였습니다.

대학 전공을 정할 때 성악과 피아노와 생물학 사이에 고민하던 딸은 결국에는 Biology 을 전공과목으로 결정하고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딸이 주중에는 기숙사에 들어 가고 주말에는 집에 오곤 했습니다. 딸이 집에 오는 날이면 웃음꽃이 활짝 피고 못다한 부녀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딸의 입에서 나온 애기는 roommate 의 이야기도 아니고, 사소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철학, 문학, 수필, 연극, 희곡, 역사, 흑인 노예의 잔혹상, 언어학… 등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딸이 풀어 내는 대화의 주제는 학문의 많은 분야를 망라하였습니다. 키보다 더 커버린 성인이 되어버린 딸을 보며 놀란 사람은 바로 아빠인 저 자신이었습니다.

역사 애기만 하면 엄마 치맛자락 뒤로 숨어 버리던 딸…

 사회과학과 철학 그리고 인문과학의 첫글자만 나와도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던 딸…

학문 전반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어릴적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하기만 해도 듣기 싫어 했던 딸이었습니다. 그런 딸이 영국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하고 미국으로 오던 날 심각한 표정으로 저에게 선포하듯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빠! 지금까지 아빠의 강요에 의해 일주일에 4권 이상이 써 오던 독서 감상문 이제는 강요하지 마세요!  난 책읽는 일에 관심도 없고 이젠 읽을 시간도 없어요”

딸이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책을 읽도록 도서 목록을 정해놓고 전 강제로 책을 읽게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딸이 좋아할 만한 책방이란 책방은 다 찾아서 그런 책 한 보따리(?)를 머리맡에 놓아 두곤 했습니다. 딸의 눈에는 아빠는 분명 “책 중독증 환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 딸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빠! 나 이제 어린아이 아니예요. 책을 읽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할께요!”

대학 입시 준비하랴 레스토랑에 일하랴 온갖 고생을 다 하던 딸은 책을 읽을 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 딸이 집에 돌아와 식사 도중 대화를 하면, 세익스피어 이야기, 루브르 박물과의 그림 이야기, 심지어 철학자 Whitehead 의 관한 애기를 술술 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부녀의 대화는 철학에서 희곡으로, 유럽사에서 미국사를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때 딸이 저에게 말합니다.

“아빠 난 철학도 재미있고, 문학은 더 재미있고, 역사도 관심이 많고 이제는 언어학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과목을 더 신청했어요.”

딸의 삶의 심각한 변화를 보며 즐거워하던 저에게 딸이 말합니다.

“아빠 나 전공을 바꿀래요.”

“어떤 전공으로?”

“English Literature (영문학)!”

난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하기 싫어 하는 Literature 를?”

대학에 들어 간 딸이 쓴 Essay 을 가끔씩 읽어 보면서 전 내심 놀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럽에 있을 때 아빠 손에 억지로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여러 나라 많은 문화 유적지들을 끌려(?) 다니던 딸입니다. 그때마다 딸은 이렇게 제게 말했습니다.

“아빠! 박물관, 도서관, 궁전 그리고 답답한 교회 건물 보는 것 나 관심없어요. 차라리 액서서리 shop 들 다니는 것이 더 낳아요!”

유럽의 여러 나라, 영국의 유서깊은 Yorkshire, Wales 의 고서점,  그 많은 박물관, 그리고 문화 유적지를 데리고 다닐 때마다 뾰루퉁한 표정으로 떠밀려 다니던 딸이었습니다. 그런 딸이 본인인 다녀 왔던 기억들을 유감이없이 발휘한 것은 바로 보스톤에 와서입니다.

세계 3대 미술 박물관의 하나가 보스톤에 있습니다. 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린 모습의 그림 중 보스톤 미술 박물관의 그림과 루브르 박물관 그림을 비교 분석하면서  회상하는 형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 안에는 철학과 문학과 예술과 미술이 고스란히 스미어 있었습니다. 딸의 에세이를 읽던 저는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딸이 이렇게 컸구나!”

딸이 한국말도 어눌할 때 저는 딸에게 늘 영어로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딸은 이내 이렇게 말합니다.

“Daddy, I don’t like to speak in English!”

옆에서 보다 못한 아내가 핀잔을 주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여보 내 버려 둬요. 딸이 크면 당신보다 영어도 더 잘하고 도리어 당신이 딸에게 영어를 배우게 될 거예요”

입버릇처럼 하던 아내의 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보스톤에서 미국 사역이 진행되면서 저는 크고 작은 문건을 작성해서 늘 보내야 했습니다. 시급을 다투는 가운데 문장의 유려함과 더불어 간결하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담아 내려는 작업은 저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미국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영문서를 작성하다가 누가 옆에서 읽어 주고 조금만 고쳐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았습니다. 저 혼자 감당하지 못해 딸에게 영어 문장을 맡기면 그 자리에서 딸은 몇자를 고쳐 주곤했습니다. 그 몇자 고친 글이 얼마나 정갈하고 영어의 깊은 의미가 담겨 나오는지 놀랍기만 했습니다. 아내가 늘 하던 말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딸이 Journalism 에 관심을 많이 갖고 북한의 핵문제, 인권 문제에 대한 글을 쓰면서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난 이제야 아빠를 이해하게 됐어요!”

“뭘?”

“아빠가 왜 그렇게 철학과 역사와 인문학을 좋아했는지를…”

“아빠는 딸이 이렇게 커 준 것이 고맙고, 아빠와 같이 이런 대화를 할 수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단다.”

정말이지 딸은 이미 어른이 되어, 대학도 졸업하고 그가 한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필리핀의 선교사 자녀 학교인 한국 아카데미 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의 10년 만에 제가 교목으로 있던 필리핀 한국 아카데미를 방문해서 그곳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딸은 그곳에서 English Literature 와 Biology 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면 인문학과 과학은 전혀 별개의 영역 같지만 딸은 두 영역을 가르치며 더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빠의 삶을 책으로 내고 싶다던 딸의 소원은 어느새 출판되었습니다.

 “하라면 하겠습니다 주님”이란 책입니다.

저의 어릴적 아침에는 신문배달, 오후에는 수금하러 그리고 밤에는 교회에서 철야 기도 하느라 책을 읽을 기회가 없어서 안타까워 할 때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책 읽고 싶어요!
초등학교 때에 이미 2,000권의 책을 읽었던 저는 더 책 읽고 싶은 마음에 수학여행도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주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들아! 책을 무조건 읽지만 말고 이제는 생각좀 해 보렴?”

“주님 그게 뭔데요?”

“지금까지 네가 읽은 책들을 소가 마치 되새김질 하듯 그 책의 내용을 기억하고, 분석해 보고, 비교하고 그리고 너에게 주는 지혜와 메세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으렴!”

전 그때부터 신문 돌리면서 읽었던 책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수금할 때 또 읽었던 책들을 상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많이 읽었던 책들이 창고에 잘 정돈된 물건을 꺼내 오듯 그렇게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생긴 습관은 책을 읽고(정독), 분석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도 없으리만치 꼼꼼히 따져 보고 그리고 제 것으로 소화할 때까지 읽었던 책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사색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중학교 때 3,000권, 고등학교 때 3,000 권, 대학 4년 동안 영어책만 5,000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책을 읽기 위해 늘 청계천 헌 책방을 다니기 일쑤였고,  서점에 들어가면 그자리에서 보통 4-5 권의 책을 읽어 치우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거의 책 중독에 빠진 사람 같은 저를 보고 갓 결혼한 제 아내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제 남편이 책보다도 성경을 읽게 해 주세요!”

아내의 기도 덕분에(?) 전 정말 말씀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비행기로 여행할 때에는 책 가방을 따로 싸서 수십권씩을 들고 다닙니다. 그런 제가 이번에 모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밴쿠버 캐나다에서 열리는 North America Prayer Summit 대회에 가는 데 처음으로 작은 가방 하나만 꾸린 것입니다.  가방 꾸리고 자정이 넘어간 이 시 간에 두세시간 자고 나면 공항으로 떠나야 합니다.

가방에 챙긴 것은 성경책과 책 다섯권 만 달랑 들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전쟁터에 가는 용사가 중무장할 장비를 최소화해서 떠나는 그런 기분입니다. 비행기 위에서 보통 적으면 10권 많으면 40권씩 읽어 치우는 “책 폭식가”가 이제는 슬림화 작업에 들어 가는 것인가 봅니다.  저도 이제는 다시 책 되새김질 할 기간에 들어 온 것일까요?

이스라엘에 다녀 와서 반나절 동안 필리핀으로 돌아 갈 딸을 만나고 전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텅빈 집에 하루에도 여러권의 책이 배달되곤 하는데 그 중에 딸이 구입한 책들도 당도하곤 합니다. 놀랍게도 딸이 구입한 책들을 보니 제가 청년 때 좋아하던 책들도 들어 있습니다. 부전여전일까요?

딸이 다니던 학교의 대학 교수가 늘 딸의 글솜씨에 탄복하곤 했는데, 그 딸이 저의 삶을 영문으로 그려낼 날이 올까요?

밴쿠버로 떠나기 전 자정을 넘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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