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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0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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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목사, 이슬람 지상강의

 

김종필 목사, 이슬람 이슬람 성장과 서구 교회 몰락에 직면한 한국 교회


기독교와 이슬람은 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을 공통 종교적 기원으로 삼는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은 그 뿌리가 같은 것인가?

그 뿌리가 같다면 무엇이 같으며, 다른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다른가?

유대교의 하나님, 기독교의 하나님, 그리고 이슬람의 알라가 과연 같은 하나님일까?

창조, 홍수, 출애굽, 모세의 율법,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는 이슬람은 과연 우리가 믿는 성경의 진리를 함포하고 있는 것일까?

“세 종교가 창조와 아담, 노아, 모세 그리고 다윗을 인정하기에 결국은 같은 종교이며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있어 왔다.

언뜻 보면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근원적으로 다르기에 세 종교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고, 도리어 그 다름으로 인해 역사상 수없는 많은 반목과 다툼을 거듭해 왔다.

세 종교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종교적 기원을 동일하게 주장하면서도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 온 연유가 여기에 있다.

세 종교의 분쟁과 차이로 인해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는 순간부터 중동 지역에 전쟁의 암운이 드리우고, 예루살렘의 평화가 지연되었다.

일명 시간이 갈수록 폭탄 테러와 전쟁이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세 종교간 화해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런 세 종교의 건널수 없는 종교적 간극을 화해시키려는 시도가 20세기 중반에 있었다. 바로 바티칸 제2공의회(Second Vatican Council)이다!

기존의 복음 전파와 선교의 패러다임 전환 그리고 종교적 이견에 대한 조정 역할을 자처하고 종교적 분쟁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제시된 것이다. 이 공의회는 1963년부터 1964년에 개최되었다. 크게는 그 기간이 1962년부터 1965년 까지 이른다. 그들의 합의 도출의 결과로 1964년에  발표된 것이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Lumen Gentium이라는 조항이다. 그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 16 장, “구원의 계획은 창조주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포함되는데 그들 중에는 먼저 무슬림이 들어간다. 이들은 아브라함을 통한 믿음을 고백하며, 마지막 날에 인류의 심판자이신 한 분이신 자비의 하나님을 우리와 함께 공경하고 있다.”

“The plan of salvation also includes those who acknowledge the Creator, among whom are, in the first place, the Muslims.  These profess to hold the faith of Abraham, and together with us they adore the one, merciful God, judge of humankind on the Last Fay.” (para 16)
 
“아브라함을 통한 믿음을 공유하며,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이 선언 은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것으로 천주교회와 그를 따르는 타종교까지 포용하여 ‘신 중심’의 화합으로 가겠다는 의지로 비쳐졌다.
이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를 교리화하고 1438-1445년에 결의한 플로렌스 공의회에서 확립된 “교회(로마 천주교회를 의미함)밖에 구원이 없다”는 오랜 근간을 뿌리채 뽑는 선언이다.

제2 바티간 공의회의 선언을 계기로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교회 밖 형제”라고 불리우던 개신교회와 동서 교회로 천년 넘게 분열되어 살아 온 동방 정교회까지, 물론 이슬람까지 하나로 묶겠다는 시도가 구체적으로 선언된 것이다. 로마 교황청은 2천년을 유지해 온 배타주의의 원칙을 포기하고 포용주의 받아들인 것이다.

이 부분은 Karl Rahner 나 Panikkar 와 같은 천주교 포용주의적 종교 다원주의자들의 주장을 받아 들인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로마 천주교회는 다른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과 행동 양식뿐 아니라, 그들의 규율과 교리도 거짓없는 존경으로 살펴본다.”

이 선언은 궁국적으로 “아브라함의 신앙을 따르는 세 종교를 같은 종교로 가는 종교 일치 운동으로 엮겠다”는 역사적 새로운 시도이다. 그러나 내밀히 그동안의 역사적 연관성을 살펴보면 바티칸 제 2 공의회는 이전에 있어 왔던 일련의 선언들과 무관하지 않다.

1863년 교황 Pius 4세가 천주교회 밖에도 ‘신적 빛과 은혜 (Divine Light and Grace)’ 가 가능하다고 천명하였고, 1943년에 교황 Pius 7세를 통해 “천주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Mystici Corporis” 를 이미 선언하였기에 이 모든 일은 역사적 연장 선상에서 이루어진 선언이라고 보아야 한다.

상기 내용 하나만 보더라도 전 세계 종교 일치 운동이나, Ecumenism 의 큰 흐름을 정해주는 선언은 시카고 세계 종교대회를 통해 천명된 “세계의 모든 종교를 일치 내지 통합”으로 몰고 가는 로마 천주교회의 세계 종교 일치의 전략으로 보아야 한다.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기 이전에도 종교 통합논의는 있어 왔다. 장로교 목사인 존 헨리 배로우스는 1893년 시카고 세계 종교대회를 조직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주장했다.

“신의 섭리는 오직 하나만이 아닌 더 많은 길이 있다. 인도 옛 베다(Veda)의 지혜는 ‘진리는 한분이시다. 성인들이 다른 이름으로 그분을 불렀을 뿐’이라고 가르쳤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신교회는 제2 바티칸 공의회와 시카고 세계 종교 대회의 큰 흐름을 수용하면서 맞장구를 치기에 이른다. 이른바 1990년에 있었던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hurch Council) 종교대화국의 바아르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선언문에는 “하나님의 구원활동은 예수의 기독교 성립 이전부터 모든 민족과 역사와 전통 속에 현존해왔으며 모든 종교적 영성활동을 통해 임재해왔다.” 그럼으로 “세계 안에 존재하는 종교의 다원성은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신(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 그리고 타 종교의 신적 개념까지 포함함)과 인간을 더 깊이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라고 주장하기 이른다. WCC 와 로마 천주교회는 세계의 모든 종교를 일치시키는 일에 같은 노선을 가게 된다.

갈수록 그 위력을 더하고 있는 근자의 시카고 세계 종교대회는 한국 통일교의 문선명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개신교, 이슬람, 천주교회, 정교회, 그리고 동방 교회 전통들을 다 묶어서 하나의 Abrahamic Faith 로 만들어 가는 시도인 셈이다. 천주교회의 바티칸 제2공의회와 WCC 의 바아르 선언이 이런 흐름에 가속도를 붙인 것 만큼은 틀림이 없다.

바티칸 공의회는 이 뿐 아니라 천주교회 선교의 큰 줄기를 새롭게 바꾸어서 모든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허락하였다. 이것이 남미 부흥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남미의 모든 천주교인들을 잃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로마 천주교회가 세계의 3대 종교를 종교 일치 운동의 하나로 묶어 가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신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 즉 Christo-Centric 에서, 이제는 한 믿음의 조상이 되는 구약의 아브라함의 하나님, 즉 하나님 중심, Theo-Centric 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시대에 주는 몇가지 중요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과연 이스라엘의 하나님 또는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코란의 알라와 동일한 “신”인가 하는 점이다. 두번째는 그리스도 예수 없는 신 중심의 종교가 과연 구원의 길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텅텅 비고, 서구 기독교가 힘을 잃고 있을 때, 서구 교회는 비기독교화(De-Christianization), 반기독교화(Anti-Christianization), 반복음화(Anti-Evangelization) 와 비복음화(De-Evangelization)의 원인을 잘못된 곳에서 찾았다. 엉뚱하게도 저들은 신구교간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 종교적 견해의 차이로 벌어진 분쟁이 바로 종교적, 교리적 논쟁의 산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서구인들은 종교 전쟁과 교리적 논쟁에 신물이 난지 2천년 가까이 되었기에 전쟁과 분쟁의 원인을 제공하는 교리적 논쟁을 일으키는 정통 기독교에 깊은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다. 저들이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서구 기독교가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개척과 더불어 식민주의 선교를 한 것도 잘못된 것이라는 깊은 자성을 촉구한다.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맞는 애기는 아니다. 서구 신학계에서는 그 동안 행해왔던 근대 선교가 식민주의(Colonialism) 선교의 폐해를 불러 일으켰다는 자성(?, 제 개인의 생각으로는 부정적 자성이 반기독교화를 부추김)이 “예수 그리스도외에는구원이 없다(천주교회에서 로마 천주교회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는 “배타적 기독교”에서 이제는 모든 종교를 수용하는 “포용적 기독교” 또는 “포용적 종교”를 추구한 것이다.

그들은 주장한다. "오늘날 인류는 어느 특정 종교 하나가 제시하는 신념체제에 의하여 구원 받을 수 없도록 다원화된 세계에 살고 있으며,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의 기도만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다른 종교를 포용과 통합의 이론으로 이끌어 가려 한다. 이 부분이 종교 다원주의가 유럽에 큰 힘을 얻게 되고 그나마 약화된 기독교가 더 약화되는 계기가 된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진리를 과감히 포기하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Paul Knitter 와 John Hick 은 덩달아서 그리스도 예수를 배제한 신 중심으로 나가야 함을 천명한다. 이런 주장은 포용주의 노선인 이전의 Karl Rahner의 “하나님의 보편 의지” 와 Paul Tillich 의 “하나님의 초월성”에서 나온다. Karl Rahner 는 하나님의 구원적 보편의지는 “유대인이나 무슬림이나 모두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라는 것이다. John Hick 은 한 단계 급진적으로 나아가 프톨레미우스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의 산물인 “천동설적인 기독교가 “그리스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오산에서 벗어나 코페르니쿠스적 지동설인 “신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에 Hick 은 칸트적 논거위에 “신(하나님) 은 인간 경험에 의해 구조화된 선험적(a priori) 관념”이기에 “과감히 “그리스도 예수”를 버리고 확대된 신개념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신’이라는 용어를 불교도들이나 아드바이타 베단타(Advaita Vedanta: 불이일원론)를 믿는 힌두교들까지도 아브라함의 “신”인 그러한 신의 개념으로 해석하고, 이러한 신 즉 우주에 내재하는 초월적 타자인 절대자(The Absolute)를 믿는 신앙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인이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John Hick 의 강좌를 듣고, 특히 Hick 과 갖게 된 여러번의 만남과 대화에서받은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John Hick은 스코틀랜드 부흥사를 통해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하고, 장로교 목사가 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너무나도 확신있게 성경의 정경성을 부인하고, 이제는 “예수 없는기독교” “배타적 구원론 없는 종교”를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시도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와 미국 그리고 유럽에 이르기까지 기독론의 근간을 흔들어서 어찌하든지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하지 못하는 영적 현상임을 직시해야 한다

John Hick 과 더불어 Paul Knitter 는 “No Other Name?: A Critical Survey of Christian Attitudes toward the World Religions”  에서 이제 “기독교는 더 이상 배타적인 기독교의 예수만을 주장하지 말고 모든 인류에게 다양하게 주신 신, 모두다 수긍하는 새로운 “신 중심”의 신앙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Hick 과 Knitter 모두 “성경의 유일성과 정경성,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성, 개신교가 말하는 배타적 신의 이름까지도 다 바꾸고 모든 종교를 수용해야 한다”는 점에 그들의 관점은 비슷하다. 힌두교, 불교, 정령숭배와 모든 타종교 영역에 신적 영역이 있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에 이제는 기독교는 종교적 갈등을 일으키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배타적 신앙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로마 천주교 신학자인 파니카(R. Panikkar)는 “기독교와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까지 종교간의 다양성이 결국에는 “범세계적” 일치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파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서구 신학계의 제창에 특히 이슬람권은 고무되어 있다. 이는 이슬람의 탄생부터 모하메드가 주장했던 것이 확인되고 자신들의 진리가 인정받는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부패하였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은 없었으며, 모하메드가 알라의 마지막 선지자임을 이제야 서구 기독교가 인식하게 되었다”라고 반기며 코란의 가르침을 서구 기독교가 받아들이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 소식을 듣고 이슬람의 우월성에 쾌재를 부르며, 전 기독교 지역을 통채로 삼키려 한다.

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지 불과 20년이 채 안되는 1960년 초반에 모든 서유럽의 교회들과 미국 동부의 교회들은 극심한 기독교 쇠퇴의 길을 가게 된다. “기독교는 서구이며 서구는 기독교”라는 등식이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 버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 기독교 쇠퇴의 대안점으로 제시된 이런 종교 다원주의, 세계 종교 일치 운동, 이슬람 포용운동, 교회 일치 운동등은 본질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의 본질인 “복음”이 훼손되고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폐기하려는 데 그 공통점이 있다.
복음이 세속적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면 기독교는 세속화에 파 묻힐 것이며 타종교와의 연합을 통해 기독교의 존립마저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나 타 종교는 아직도 자신들의 교리적 원칙과 원리를 버리지 않고 있는데 서구 기독교는 스스로를 무장해제하고 있다. 통탄할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무슬림은 와해되어지는 기독교 진영을 보며 이렇게 외칠 것이다. 보라 알라의 마지막 선지자 모하메드가 이렇게 말하지 않더냐? 예수는 분명이 육신상으로 하나님이 아니라고 코란이 말하지 않더냐?

(코란 5:19 알라가 곧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 말하는 그들에게 저주가 있으리라
꾸란 5:75 알라가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고 말하니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다.)

코란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적그리스도적인 선언을 한다. 
(코란 19:88-92.”지극히 자비로우신 분(알라)이 아들을 낳았다! 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진실로 너희들은 이상한 말을 하는구나. 그 때문에 하늘이 찢어지고, 대지는 쪼개지고 산들이 무너지려고 한다. 지극히 자비로우신 분(알라)이 아들을 낳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자비로우신 분이 자식을 가질 수는 없다.)

이는 모하메드 당시의 에비오니안 종파의 유대주의적 교리가 그대로 코란에 반영된 것이다. 그들은 삼위일체 중 한분이신 성자 예수님의 신성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의 삼위일체의 한 분이신 하나님이 아니시며 우리처럼 특히 “아담처럼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코란 3:59 알라께서 아담에게 그랬듯이 이 예수에게도 다를 바가 없도다. 알라는 흙으로 그를 빚어 그에게 말씀하셨다 있으라 그리하여 그가 있었느니라.)

코란은 그들의 마각을 들어낸다. 예수님은 무슬림이며, 단순한 사람이며, 많은 선지자 중 하나이며 결코 구세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코란 5:78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로서 선지자일 뿐 이는 이전에 지나간 선지자들과 같음이니라 그의 어머니는 진실하였으며 그들은 매일 양식을 먹었도다.)

어떤 경우이든지 무슬림은 코란을 포기한적이 없다. 그러나 서구 기독교는 특히 자유주의 진영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훼손하고 무너뜨리려 수백년의 시간을 허비하였다. 아직도 이 공격은 멈출줄을 모른다. 무슬림은 “모하메드가 알라의 마지막 선지자”라는 것을 생명처럼 여기며 죽음까지 불사한다. 저들은 이를 ‘순교자의 길’이라고 말하며 심판날에 그 “순교로 인해 알라로부터 심판을 면제받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서구 기독교는 종교 다원주의, 세계 종교 일치 운동, 교회 일치 운동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의 유일성’을 포기하는 시도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서구 기독교계는 몰락의 길을 가면서 스스로 무장해제하여 그들의 안방을 타종교에게 내어 주는 사이 이슬람은 놀라운 속도로 그 빈자리를 헤집고 들어 오고 있다.
 
이슬람권에서 기독교와 이슬람 그리고 타종교의 차이를 분명이 인지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나아가는 선교사의 수가 매우 적다. 현재 세계 선교사 통계를 살펴 보면 1982년부터 2001년까지의 이슬람권 선교를 위해 파송된 선교사의 수가 15,000명에서 27,00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두 명 중 한명은 미국인이고 세 명 중 한명은 복음주의자들이다. 나머지 3분2가 자유주의 계통의 선교사들이다. 구제와 봉사를 주로는 NGO 계통의 서구 선교사가 주류를 이룬다. 한국에서 파송된 이슬람권 한국 선교사의 비율은 전체 선교사들의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이슬람권 선교사들보다 더 많은 무슬림 선교사가 한국 한 나라에만 무려 30,000명이나 활동하고 있다. 이슬람권 선교는 비자와 샤리아 법의 강력한 통제와 제약, 종교 경찰들의 감시, 전도와 선교의 원천적 봉쇄, 종교적 집회의 불허용, 무슬림의 타종교 개종의 원천적 금지로 3중, 4중, 5중고를 겪고 있다.

무슬림 지역은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데 기독교 진영은 대문도 열어주고, 안방도 열어주면서 가지고 있는 복음의 무기마저 내려 놓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만이 유일하신 메시야이며 유대인이든 무슬림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그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원천적 복음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한국 교회는 일어나야 한다.

복음의 원초적 능력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말씀의 권능에 사로잡힌 실력있고 영력 있는 새로운 이슬람권 선교사들을 일으킬 때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감당하라고 한국 교회를 부르신다! 깨어라! 경성하라!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키려 하는 이때에?

 

 

김종필@씨존넷 czone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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