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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0시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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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의 주일 아침 단상

 
새벽 공기를 가르는 차가운 바람 발끝에 걸리는 순간 코 끝에 맴도는 가을 기운 새삼스레 계절의 변화를 일깨우노라면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 여러 해가 순식간에 지나갔음을 상기시킨다.

초가을 아침 햇살은 어둠 밀어내지만 추운 공기까지 밀어내기는 역부족이다.

여름 아침 햇살처럼 단번에 더운 공기 실어 오는 역동력은 애당초 없었나 보다.

아직 시리기만 한 아침 바람이 잔 나무 가지 흔들어 몸 풀기 해 주기를 기다려보지만, 가을 초입에 들어 왔음인지 미풍도 옴짝달싹 않는다.

이런 고요함을 맛본 지 얼마 만인가?

바쁘다는 핑계로 아침 산책 한번 제대로 못 하고 몇 해를 보내었던가?

차곡차곡 쌓인 숲길에 지난 세월의 흔적 담은 낙엽 이파리 고개를 쳐들지만 세월을 지각 못한 눈동자 허공에 머무는 사이 거울을 비집고 보여 주는 무성한 흰머리 뒤로 하고 무심한 발걸음이 무감각한 인식의 둔감함을 일깨운다.

시각을 잃으면 청각이 살아나려나!

자동차 경적 소리 사라진 주일 아침 고요함이 부르는 초청에 생각의 바다가 작동한다.

소음과 부산함과 황급함의 발길 소리 멈춘 적요함 보며 먼 옛날의 적막함으로 이끄는 침묵의 시간 여행 정처없는 사색의 유영을 떠난다.

시간의 흔적을 지켜본 장승은 몸으로 지난 풍상을 말해 주고 마을 지키는 큰 나무들 서 있는 것 하나만으로 우주의 변화, 세월의 변화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풀어헤친다.


염소 섞인 수돗물에, 얄팍한 입맛 자극하는 화학 첨가물에 손상된 우리의 미각…

플라즈마 브라운관에, 휘황찬란 조명기구에, 망막 손상하는 전조등에 무디어진 우리의 시각…

나부끼는 바람 소리, 출렁이는 파도 소리, 들려 주어도 듣지 못하는 풀벌레 소리, 언제 들어도 새로운 새들의 노래 사라지고 도심의 일그러진 음향기기 소음에 손상된 우리의 청각…

퀴퀴한 매연에, 마이크로 웨이브의 전자파에, 인조 꽃병에, 페인트 냄새 범벅된 방안에 갇혀 사노라니 흙냄새, 풀냄새, 꽃향기나 구분했을까?

다람쥐 재롱도, 뒷마당 휘젓는 산토끼도 몰라보고 무심한 발걸음에 시멘트 범벅된 베란다 위에 시도 때도 없이 화초에 물을 주며 웃음 짓는 도시민의 모습 보며 하늘이 주신 오감을 잃어버린 씁쓸함에 감각마저 텁텁해진다.

철철 흘러 넘치는 수도관 꼭지 물맛에 생기 잃은 혀끝이 새벽녘 길어 온 담백한 샘물 맛을 구분할까?

밤새 내린 안갯 속에 고이 다려 낸 이슬방울 송송 나뭇잎에 작은 연못 되어 혀끝 축여 줄 때 살아 있음 느끼며 자연과 교감하는 호흡 내쉬노라면 살아난 생명의 기운도 덩달아 춤을 춘다.

콘덴서 돌려 화학적 찬 공기 품어 대는 에어컨에 무딘 피부 귓망울 붙들어 매는 새콤한 아침 공기 구분할까?

기계적 조작에 의해 순응적인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린 너무 많은 자연의 감각을 잃어 버렸다.

나부끼지 않는 나뭇잎 덕분에 햇살을 기웃거릴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여름내 저장한 당분 아낌없이 가동시켜 마지막 남은 분신인 나뭇잎 떠나가는 발걸음 알록달록 단풍 빛 새겨 보내려고 안토시아닌 색소 맞바꾸며 배웅하는 자기 내어줌 보며 ‘자기를 버린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단단한 피부 껍질’ 선사 받는 자연의 섭리가 나의 무릎을 꿇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이치, “자기를 내어줌이 없이 얻을 수 있는 희생의 대가란 없다.”는 진리가 내 앞에 의젓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의 존재로 말해준다.

털갈이한 산토끼, 먼 길 떠날 채비하는 철새들, 두툼한 껍질 치장하는 나무들의 부지런함이 서 있기만 해도 초가을이 문턱에 서성거림도 모르고 아침 햇살에 못 이겨 눈 비비는 게으름을 나무란다.

심장의 고동을 잠재우는 침묵의 바다가 오기 전에, 겉은 고요하며 힘차게 뛰는 가슴에 손을 대고 더불어 땅의 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전도서의 속내가 내 영혼의 노래가 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11)

시편 기자의 기도가 노래되어 하늘에 울려 퍼진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편 119:18)

만물을 영글어 내는 태양빛의 나지막한 조망 보며 내 영혼은 어디까지 숙성된 것일까?

뿌릴 줄 알고, 일할 줄 알고, 거둘 줄 알고, 버릴 줄 아는 지혜(전도서 3:1-9) 있어 그분의 부르심 목적대로 살아야 하지 않나?


아아! 사랑하는 아내 손잡고 마냥 숲을 걷고 싶은 아침이다!

 


<동녘 트기까지>


이보게

뭉게구름 하늘턱 허둥지둥 버걱이면

얄따란 일일랑 접어두고

감빛노을 넘기까지 쉬엄쉬엄 건너감세


재재바른 발걸음 진둥한둥 걸리거든

꽃망울 눈짓에 멈추도록

쟁끼웃음 화답하며 들녘 한번 들썩함세


진솔바람 새느낌 애타하는 눈망울엔

고통진 영혼들 생각하며

흐느끼는 울음으로 하늘 보좌 움직입세


참빛떨기 구릉턱 외로워서 서성이면

서글픈 유랑길 다잊도록

밤여울진 미자르별 가기까지 기도함세


작고 작은 자 김 종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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