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4월 29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김종필칼럼
2011년12월28일 00시45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어떤 사람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사시니 어떤 사역을 하든 어려움이 전혀 없겠네요.”

“언제나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늘 공급해 주시니 저처럼 먹고 사는 일에 늘 쪼들리는 삶은 없겠어요. 참 부러워요.”


제가 필리핀과 보스톤 사역에 겪고 있는 약간의 어려움을 아시게 된 분들은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는데 왜 그런 고난이 있는거죠?”

“난 목사님 같은 삶을 살지 않게 된 것이 참 다행이에요. 난 그렇게 힘들게는 못살아요. 당장 도망갔을 예요.”


어떤 분은 항의성 질문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는데 왜 응답은 그리 더디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바로바로 주시지 않고 그렇게 고난만 주시는 거죠?”


저를 전혀 모르는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은 참 좋겠어요. 많은 분이 주위에서 그렇게 많이 도와주시니… 부럽습니다.”


필리핀에서 한 알의 밀알 교회 성전을 지으라고 주님께서 명령을 주실 때 “너의 성전을 짓기 위한 모든 것은 다 예비되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짓기까지, 성전 건물에서 떨어져 생명의 위험을 겪었고, 꼭 죽음의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파란만장한 역경 속에 헌당하기까지 6년 반이 걸렸습니다. “성전을 위한 모든 것이 예비되었다”는 주님 말씀을 믿고 시작했을 때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하나도 어려움 없이 성전이 지어질 줄 알았습니다. 최대교회 중 하나인 한국의 한 교회가 필리핀 한 의 밀알 교회 성전을 전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친필 편지가 왔을 때 정말 건축이 순조롭게 지어질 줄 알았습니다. 설계도 제작부터 부지구입까지 술술 풀리는 것을 보고 약간의 어려움은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순조로움은 시작을 위한 도입일 뿐 나머지 모든 과정에서는 고난, 눈물, 배고픔, 절규, 항변, 금식, 죽음과 같은 고통 등이 수반되었습니다. 기쁨은 있으나 고통은 없는 건축을 원했고, 아름다운 건물을 보는 즐거움은 원했으나 그 안에 심기어질 눈물과 고통이 그토록 필요한 것인 줄은 건축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나이까?


18개월 동안 우기를 두 번 겪으며 철근이 갈라지며 녹슨 붉은 물이 줄줄 흘러 Foundation을 판 자리와 대지에 흘러 넘칠 때 심장에 솟구치는 저의 피가 흘러 넘치는 듯 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분명히 이 일을 하라고 하신 주님! 모든 것을 예비해 주셨다고 하신 주님께서 그 예비되었다고 한 것이 물질이 아니라 나의 고난, 슬픔, 자기 절규, 배고픔과 깨어짐이란 말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가운데 하늘 바라보고 눈물 흘린 지 수년 동안, 미처 성전도 다 완성하지 못하고 간 영국으로 가야 했습니다. 당시 2층 바닥도 못 마치고 가게 되었는데, 2년 반이라는 세월동안 제 아내는 그 성전을 아름다운 모습을 완공하였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모습으로 완성된 성전을 헌당하면서 감격도 밀려왔지만 그 바닥과 성전 구석구석에 깔린 아내의 헌신과 눈물, 성도들의 기도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서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성전에서 떨어진 나를 다시 살리신 주님께서 그 후유증으로 고생할 때였습니다. 피부 세포를 하나씩 떠어내듯 고통 가운데 울부짖을 때, 주님께서 주신 말씀,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의 성전은 물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피로 짓는 것이니라!”


이런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 같은 고난 속에 지어진 성전을 보며, 전 속으로 “내 일생에 다시는 이런 건물은 다시는 짓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습니다. 건물 짓는 사역이 주어진다면 무조건 도망가고픈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앞으로 이슬람권 선교와 힌두권 그리고 공산권과 불교권 사역을 위한 체육관을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두고 갈등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순종을 생명처럼 여기는 제 아내를 통해 체육관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때 아내가 받은 환란과 시련은 6년 동안 성전을 지으며 겪은 그런 고난과 시련이었습니다. 금식과 절대 순종으로 아내의 몸은 상할 데로 상하였습니다. 급기야는 쓰러져 들것에 실리기도 여러 번, 그 상한 몸이 수술대 위에 올라가야 할 만큼 순종의 대가인 고난을 달게 받았습니다.


저는 사람을 키우고, 세미나를 인도하고, 집회를 인도하고, 사람을 가르치는 사역에는 정말 기운이 납니다. 그러나 건물을 지으라고 하면 온몸의 살아났던 기운이 다 꺼져 내려가는 느낌입니다. 특히 보스톤의 오래된 회중교회와 건물들이 매매물로 나와 흉물스런 몰골을 드러내고 구매자들을 기다리며 초라한 인원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 건물을 짓고 싶은 갈망은 마른 사막에 살짝 스치는 수분마저 증발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아내와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선교사 훈련 대학원(Missionary Training Institute)을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전 요나의 심정이었습니다. 가장 싫어하는 것을 아신 주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라는 말씀과도 같았습니다. 전 이번 과정을 통해 제 아내의 절대적 순종을 여실히 보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선교사 훈련원을 지었습니다. 그 과정의 고난은 성전 짓는 데 6년 그리고 체육관 건립에 지은 기간을 더한 것보다 심한 혹독한 시련과 고난이 지불되었습니다. 건축 과정에서 온몸이 상한 아내는 여러 번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대에 오른 아내를 전 한 번도 직접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우기를 두 번을 만났는데 공교롭게도 유리가 되지 않아 빗물이 줄줄줄 들어오는 안타까운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폭우가 넘처 흐르는 건축의 현장에서 결려온 다급한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누가 이 고통을 알까요?

꼭 이렇게 힘들게 지어야만 할까요?


저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timing이었습니다. 어떤 분이 작든 크든 헌금을 보내 주시면, 숨이 까닥까닥 넘어갈 듯한 모든 다급한 상황을 다 겪고 그제야 헌금이 전달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저는 손에 땀을 쥐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유지됐던 심장이 멈추어버리는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아내하고 오붓한 시간 보내고 싶어서 한국에서 아내와 아들이 만나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자고 없는 시간을 만들어 잠시 방문했습니다. 아내하고 낮에 한 두 시간도 얼굴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만남이 연이었습니다. 아들의 얼굴은 보는 것은 거의 잠든 모습이었습니다. 집회나 모임 마치고 들어 온 시간은 늦은 밤 아니면 새벽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을 떠나기 전 어떤 분이 제 주머니에 꼭 가족하고 식사 한끼하시라고 헌금을 주셨습니다. 아내를 만나 주머니에 있던 모든 돈을 꺼내며 낭만적이 식사 한 끼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하는 소리, “여보 단 1달러도 아껴서 필리핀에 가지고 가야 해요. 지금 교회에 있는 아이들에게 빵도 못사주고 왔어요.”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 영문을 모르는 분들은 저와 아내가 행복한 시간을 가졌을 것이라고 부러워하셨습니다. 이곳 보스톤 사역을 마치고 필리핀 창립 기념 예배와 헌당식을 가는데 날아온 수많은 청구서를 지불할 돈이 없었습니다. 구좌는 이미 위험 순위였습니다. 부부 구좌를 갖고 있었는데 제 아내에 준 카드가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빈 통장인데 지불될 일 만무하지요. 아이들 빵과 먹을거리 사 들고 수퍼마켓에 지불대에서 걸려온 아내는 그 물품을 돌려주면서 창피란 창피는 다 당하면서 안타까워 했습니다. 보스톤 경유해서 필리핀에 가는 저의 마음은 사실은 잔칫집에 가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필리핀 도착하고 함께 오신 분들 호텔에 모셔 드리고, 교회 숙소에 돌아온 시간은 방에 들어오니 새벽 3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30분 정도 눈 부치면 곧장 새벽예배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전 잠 좀 자고 싶었습니다. (제가 너무 게으른 것일까요?) 하지만 피곤에 찌든 제 아내는 여전히 다음날 사역을 준비해야 한다면 그대로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을 부치는 둥 마는 둥 곧장 이어진 새벽 기도에 나가니, 당시 이십 며칠째(23일?) 아침 금식에 여리고 대행진을 하는 성도들이 한 오십 명 모여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가슴에 곤히 잠든 사무엘을 안고 걸으며 기도하는데 다리가 무거워 잘 움직여지질 않았습니다. 새벽 기도 마치고 눈을 부치려 하니 아내는 여전히 사역 준비하는 옷 입은 그대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깨를 만져보니 석고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단하면… 순간 가슴이 철렁 가라앉으며… 얼마나 미안하고 미안하던지…


제가 필리핀에 머무는 동안 아내는 어떤 날은 50분, 어떤 날은 두 시간도 안돼는 시간을 눈을 붙이는 정도로 잠을 잤습니다. 자나깨나 울리는 전화벨은 모두 다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런 요청과 주문이었습니다.


편안하기만 한 미국 생활에 비교하면 필리핀은 밀고 밀리는 압록강 전투 최전선 같았습니다. 저도 잠도 못 자고 오자마자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몸은 무겁고, 다리는 통통 부어 오르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속옷은 젖은 땀에 찌들어 힘들기 그지없지만 몇 배나 힘든 아내를 보고 입이 쏘옥 들어가 버렸습니다. 세미나와 헌당식 마치고 모든 손님 가시면 그나마 남은 반나절이라도 아내와 딸과 아들과 함께 보낼 시간을 기다리며 위로를 삼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짐 날라 주는 일 돕겠다고 약속까지 덜렁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팀 보내고, 돌아와 보니 그날 저녁에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전 그걸 모르고 다음날 아침에 떠나는 줄 알고 그리 좋아했던 것이지요.


아내가 이번만큼은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사진 한장 찍은 것이 없으니 꼭 가족사진 한장 찍자고 했는데 그나마 그것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밀린 사역하고 이틀 동안 긴급한 일로 어느 곳을 다녀왔습니다. 어제 토요일 오후에야 보스톤에 도착하였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길에 궂은 비가 내리치며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아는지 얄궂기만 한 날씨는 온갖 변덕을 다 부립니다. 세찬 바람 치다가, 갑자기 쏟아 내리는 폭우를 동반하다가, 갑자기 먹구름으로 오후도 밤도 아닌 날씨를 연출합니다. 달리는 내내 다시금 질문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 것은 달게 받겠는데, 왜 몸도 성치 못한 내 아내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제가 좋아하는 말, “고난, 자기 부인, 자기 비움, 깨어짐, 낮아짐, 순종, 십자가”라는 말에 따라다니는 것 하나 그것은 언제나 “눈물”이었습니다. 홀로 있는 저에게 “외로움”은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먹는 것은 초월했고, 잘 살고 편안한 것은 저하고 거리가 먼 것이나, 사랑하는 이가 당하는 고난을 보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식을 보면 눈이 멀게 되나 봅니다. 양자로 입적한 사무엘, 아주 예쁩니다. 전 사무엘 보면 매우 예뻐서 제 스스로 절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무엘도 열병으로 아프고, 딸도 필리핀 신고식 하느라 아프고, 거기에 아내는 너무 큰 고통 중에 있음을 보며, 다시금 주시는 “고난”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부여 안고 울며 다짐했던 사도행전 20장 말씀이 생각납니다.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다시금 가슴에 새길 말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을 기억하며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바치기를 원합니다.


이 밤에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평강이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고난의 끝


회환과 그리움은 주걱거리고

슬픔과 외로움은 겹겹쌓이며

자아와 깨어짐은 사슬잠재워

갈망과 바라봄은 한끝내기에


발끝에 치인 잡초 부럽고

무한정 나는 새들 정답고

한밤을 새는 벌레 가까워

서글픈 눈물 마름 끝없네


아아! 모지라진 고난의 끝이여!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김종필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78303511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김종필칼럼
다음기사 : 초가을의 주일 아침 단상 (2011-12-28 00:46:12)
이전기사 : 김종필 목사의 대하드라마 유대광야 중보기도회(8) (2011-12-28 00:45:27)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