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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0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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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목사의 유대광야 대하드라마(7)

 
5. 므깃도

므깃도 하면 아마겟돈이 떠오르고 병거성과 마병의 성이 생각날 것이다. 므깃도에서 아마겟돈이 연상되는 것은 요한계시록 16:16에 나오는 인류 최후의 전쟁이 이곳에 일어날 것으로 요한은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므깃도 산을 히브리어로 ‘Har megiddo’라고 하는데 이것을 헬라어로 옮기면 Har Mageddo 즉 지금의 Amageddon 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므깃도 성은 1925-39년에 시카고 대학의 동양 연구소(Oriental Institute)에 의해 발굴됨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 이후에 더 많은 유적이 발굴된 것은 마사다를 발굴한 니가엘 야딘(Yigael Yadin)으로 한참 뒤인 1960년에 이르러서이다.

멀리 이즈르엘 평야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푸른 하늘 빛에 평야가 풍요로운 들녘처럼 편편히 펼쳐져 있다. 이스라엘도 네게브와 같은 사막, 사해 주변의 모래 구릉과 바위 산이 많은 관계로 이렇게 비옥하고 기름진 평야를 찾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규모 면에서는 (이스라엘 전체 면적이 강원도 정도 크기이니) 그리 평야가 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가 딛고 올라간 언덕 위에는 그래도 잘 갖추어진 고고학적 유산과 성터가 보존되어 있었다. BC 6000년에는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고, BC 4000년에는 정치적으로 연합이 가능한 주민들이 살았다. BC 3300년부터 큰 도시가 형성되어 지금까지 이르는 모습이 성터에서 그대로 남아 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이곳에 산당 (High Place)식 신전을 만들었다. 이는 돌로 만든 높이 1.5 m 의 원형 돌 제단으로 희생 제사에 사용한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므깃도가 크게 발달한 것은 솔로몬 때이다. 그곳에는 당시에 정교하게 건설한 성벽, 성문, 관저들도 볼 수 있다. 그 규모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듯 450마리에 달하는 말들과 150대의 병거를 일시에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인데 말에게 물을 먹이는 큰 물통들이 있었다. 그러기에 이곳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사람과 말에게 다 중요한 물을 공급하는 수로를 내려가 보았는데 지하 10층(지하로 35 m) 정도를 파 내렸을 정도로 깊은 곳이었다. 이곳은 전쟁에 대비할 충분한 물과 곡식을 저장하는 곳이 있었다. 수로 장치는 잠시 후에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솔로몬은 이곳을 행정적 중심지로 조성하였다.


솔로몬 이후 BC 923 년에는 애굽의 시삭(Sisak)을 이곳을 침략하여 므깃도에서 파괴하였다. 솔로몬으로부터 100년 뒤에 아합 왕은 폐허가 된 이곳에 마병장을 다시 재건하기에 이른다. 아합 왕(BC 869-850)은 솔로몬 당시에 없었던 주거층까지도 건립한다. 아합 왕 이후 BC 609년에 요시아왕은 북진하는 애굽의 느고왕과 그의 군대를 이곳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 이후 알려진 국제 전쟁만해도 무려 24번에 걸쳐 이곳에서 일어났다. 그러기에 이곳을 이야기 할 때 전쟁 장소로 언급한다. 므깃도에 빈번한 전쟁이 있는 이유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이즈르엘 평야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그곳을 통해 사통팔달로 동서남북을 다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이집트로부터 북쪽으로는 다메섹으로 그리고 메소포타미아까지 이르는 '해변의 길' (Via Maris)이 므깃도를 지나간다.

그러니 당연히 국제 전쟁이 많이 일어날수밖에 없다. 이는 므깃도는 이스르엘 평야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하이파(Haifa) 남동쪽으로 약 32km 지점에, 예닌(Jenin) 북서쪽 약 17.6km 지점, 애굽에서 다메섹으로 통하는 통로로서 나사렛으로부터 18km 지점에 위치해 있어서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므깃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건축물은 바로 수로 장치이다. 설사 적군에 성이 포위되어도 성밖에 있는 물이 이곳까지 끌어 오기 위한 일종의 긴 굴이다. 그곳에는 지하 벙커처럼 길게 내려 갈 수 있는 길고 커다란 통로를 내어 바닥까지 내려 갈 수 있게 하였다.

당시의 노동과 기술을 생각하니 고대인이 지금보다 더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땅을 파내려 간 뿐 아니라 우리가 내려가는 통로의 끝에서 암반 층이 두텁게 있었는데 그들은 그 바위에 구멍을 뚫어 수로를 내어 샘물과 연결한 것이다.
물을 가져 오기 위해 바위 수로를 통해 도시 밖의 샘의 물을 므깃도 도시 내부까지 끌어와서 저장해야만 했다. 이 수로의 규모도 대단하다. 터널의 길이만 파들어 간 것이 지하 35m 깊이에 해당하고 그리고 지하 수로의 길이는 200m에 달한다.
 
더 나아가서 밖에 있는 샘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샘의 입구는 흙으로 덮여 버렸다고 한다. 3000년이 된 이 수로가 지금 사용해도 조금도 문제가 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수로 장치는 하솔에서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의 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6. 갈멜산상 엘리야 기도회

우리 일행은 가는 곳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기도하였다. 대부분의 기념 교회는 방문객이 붐비고 있어서 기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므깃도 평야를 지나니 어느새 산간 지대가 나온다. 상수리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금까지 다녀 온 일정 중 예상 시간을 정확히 지키며 다니는 날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곳에서 우리는 부페로 점심을 잘 마쳤다. 이제 우리 일행 모두 Kosher 식단에 적응되셨는지 유대식 식사를 곧잘 하신다. 아무도 아프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달려 온 것이 감사하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갈멜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갈멜산은 그 정상이 해발 552m가 되는 산으로 우리가 갔던 여리고 보다 그리고 므깃도 보다 높다. 북서 방향으로 23Km쯤 되는 산 줄기에 위치해 있다.
 
갈멜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뜻이다. 구약시대부터 수풀이 울창한 산으로 알려진 갈멜산을 두고 아가서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의 머리로 비유하고 있다. 남북 왕국으로 분열되었을 때 북왕국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된 것은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한 아합왕 때문이다.
 
아합 왕의 애기를 잠시 나누기 전에 이스라엘 다니면서 성경 이야기를 나누는 묘미이다. 갈릴리를 보며, 이즈르엘 평야를 눈으로 보며, 예루살렘 산지를 보며 말씀을 나누니 꼭 성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진부한 성경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대항 물리친 이야기는(왕상 18)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자 그러면 이세벨의 타락과 아합의 멸망을 부르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므깃도에서 훤히 보이고 이곳에서도 잘 보이는 저 이즈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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