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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0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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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목사의 대하드라마 유대광야중보기도회(6)

1. 귀하고도 귀한 중보 기도자들의 발걸음을 보며

영국 버밍엄 살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이곳에 관광으로 많이 오셨다. 오신 분들과 우연히 말씀을 나누다 보면 거의 내가 가보지 않은 곳들이다. 세익스피어의 고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조그마한 마을에 그의 기념관도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이 상당수 되었다.

유적지가 있고 역사적 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저 역사를 하나의 흔적으로 볼 뿐 무덤덤한 눈으로 왔다가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저마다 관심 있는 곳을 가려만 소중한 곳엔 소중한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다녀 보았다. 때론 박물관으로,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는 유물과 사건을 말해주는 장소들이다.

역사 과목을 가르치는 나는 아무래도 역사에 관심이 많다. 지금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내 지식이 이것밖에 되지 못하나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일생을 다해 공부해도 모르는 것 투성인 채 그저 먼지만한 지식의 일부를 알다가 가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든 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을 알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파리의 루부르 박물과이나 대영 박물관을 갈 때도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느꼈다. 미이라나 전시물은 대영 박물관이 훨씬 많았고, 전시한 모양이나 설명이 훨씬 세련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너무나 전시할 미이라가 차고 넘쳐서 수해를 바꾸어도 남을 만큼 지하에 보관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실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유럽 전역에 박물관을 참 많이 다녔다. 내가 살던 버밍엄 시 박물관과 대한민국의 박물관 비교할 때 정말 수준차이가 이런 것이구나 할 정도로 일개 시 박물은 대단하였다. 이집트의 신성 문자(神聖文字, Hieroglyph)는 고대 이집트의 돌이나 나무에 새긴 (상형) 문자를 지칭하는 낱말로서, 고대 그리스어 "히에로글리피카 그람마타라고 한다. "(Hieroglyphica grammata: "신성하게 새긴 말") 그런 상형 문자가 생긴 돌판에서부터, 수많은 미이라와 유럽의 쟁쟁한 화가들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진귀한 것을 유럽에서 보았다.

이 일은 영국 어디를 가든 똑같이 일어났다. 요크셔의 박물과, 캠브리지에 있는 수많은 박물관, 옥스포드 등등… 너무나 박물관들이 잘 되어 있었고 볼 것이 참 많아서 며칠 동안 자세히 공부해야지 했지만 그렇게 많이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많이 보고서도 수많은 유물들이 내게 직접으로 무슨 관계가 있는지 큰 감흥으로 오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유럽에 비해 초라하고 별로 볼거리도 없는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에서 난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초라하기 그지 없는 전시물들이 마치 내게 살아 돌아 온 느낌이었다.

내 두뇌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알지 못하는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특히 수메르의 설형문자과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Cuneiformscript)를 ...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 수메르의 설형문자 함께 해독되는 느낌이었다(물론 그자리에는 설형문자는 없었지만). 함족의 땅에 셈족인 요셉이 만나 양 문명을 고리를 풀어 내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했다. 나의 도서관에는 아직도 읽히지 않은 얼마나 많은 책들이 있는가? 그런 내가 주체를 하지 못하고 책을 사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땅을 밟으며 정말 볼품없기 그지 없는 카이로의 교회들, 주로 기념 교회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며 그곳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정신이 없는 그 자리에 죽었던 역사가 새롭게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적어도 내 전 생애를 비추어 보아도 매우 드문 경험이었다. 보잘 것 없는 전시물 몇 개를 보고도 이집트의 람세스 왕들이 묻혀 있는"아부 심벨" (Abu Simbel) 신전과 투탕카맨(Tutankhamen)의 무덤의 의미들이 내게 살아 돌아 온 느낌이었다.

박물관을 떠나서 지나가는 빈민가의 수로와 피라미드 보러 가는 길에 보게 된 쓰레기 더미가 널려 있는 카이로 시내의 수로를 보면서 이전의 나일강의 물들을 끌어 올렸던 고고학적 발견들이 살아 있는 현실로 overlapping 되면서 나에게 다가 오기 시작했다. 이 일은 적어도 나에게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가 내게 살아 움직였다.


그런 나에게 카이로에서 시내산으로, 시내산에서 네게브로, 네게브에서 서안 지구로 그리고 갈릴리로 줄기차게 달려 오는 사이에 난 살아 있는 역사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버렸다. 옛날의 그 놀라운 일들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현실 인식과 너무나 엄청난 구조물들을 보면서 수천년 견디도록 세운 인간의 위대함 사이에 난 오히려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살라미스 해전이든, 워털루 전쟁이든, 지금의 영적 전쟁을 주님이 사랑하시는 중보 기도자들의 어깨에 주셨다는 사실이었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한번 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 기도했다고 큰 역사가 일어납니까? 진정한 기도의 의미를 모르고 하는 질문이다. 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지 않던가? 수많은 바위들이 온 땅에 널려 있지만 숨겨진 수많은 중보자들이 이땅을 밟으며 계속해서 마지막 시대의 구원을 완성하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열방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 그 단단한 바위가 뚫리듯 우리 시대에 유대인이 돌아오며, 강력한 사단의 진 아랍 세계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바다를 덮음 같이 올 것을 나는 믿는다.


우리 일행이 함께 하면 기도하고 부르짖었던 그 자리를 또 다른 사람들이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기도의 행렬이 이어지도록 이제 우리는 시작하는 자리에 선구자처럼 그 길을 달려갈 것이다.


2. 또 다시 여는 새날을 보며

지난 이틀 밤과 하루의 역사는 극적 반전이 거듭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내를 통해 낭보를 들은 나는 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물론 그 시간에 비상 대책 위원들은 아침 6시반까지 대책을 마련하느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창문 사이로 가느다란 빛줄기 방안을 비추었다. 세상에!


지난 이틀을 이곳 갈릴리 해변 아름다운 도시 티베리아스에 왔건만 난 호텔 방마다 이렇게 갈릴리 호수를 바라보도록 각자의 창문이 만들어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 당시를 기억하다 보니 즉각 시 한수 쓰고 싶어진다.


갈릴리 아침에


초록 빛 어두움 기다릴 수 없어

푸른 초원 별빛 아래 살지 않네

뻣뻣한 청보리도 여명 좇아 옴은

푸어런 바다 비출 아침 해살 기다림이지


어두움 몰아낸 빛의 능력

샘물 같은 말씀으로 축이는 목

한번 만나면 헤어질 수 없어

영원한 징검다리 놓아주시는 그분


빛 바랜 하늘 치고 오듯

솜이불 같은 흰 구름 들 추이면

푸른 물결 요동치는 보석의 잔치

새록 새록 그분의 말씀 살아 난다네


기 빠진 물고기도 기억되고

잊혀진 산허리 축복의 땅 되어

내친 바 된 병자들이 소망되고

영원토록 흥겨운 노래 천국까지


넘실대듯 관조하듯

깊음의 침묵 속에

큰 비밀을 간직한 듯한

바다 같은 호수

마치 오랜 비밀을 하나씩 풀어 내려는 듯

죽은 호수 같지 않아

살아서 속삭이는 생물체 같아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말씀하시면

호반 기울여 귀기울였으리

구름도 나즈막 몸 낮추었으리

병자들 고침 받아 지르는 환호성

손뼉 치듯 출렁였으리

따사로운 햇살 받아 반짝이는

유리 구슬로 화답했으리

다섯 개의 떡 뗄 때 정숙한 고요함으로

두마리의 물고기를 나눌 때

펄쩍 이며 솟구치며

그 물고기 우리 형제에요

외치며 기뻐했으리

은총의 수면 같은 네 얼굴


창문 묶어 둔 커튼 펼치며

심호흡으로 받는 그윽한 아침기운

몸 안에 파고듦에 영혼까지 채우네

영혼 깊숙이 스며 드는

그 사랑 한없는 은혜

자유의 함성되어

떠나는 날 갖고 가는 기쁨

오직 남는 네 심장 같은

영원한 아침의 미소 품는

아 찬란한 갈릴리의 아침이여!


이대로 글을 쓰다가는 시 같지도 않은 나의 푸념이 계속될 것 같아 중단해야겠다. 글은 안 쓰고 아름다운 갈릴리 호수에 대한 찬가를 늘어 놀 판이다. 글을 쓰다 보면 무엇이 시이고, 시가 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 아침의 빛살아래 취할 것 같다. 하필이면 이렇게 아름다운 갈릴리 바다가 눈에 들어 오다니. 내 아버님은 이모부와 늘 漢詩를 주고 받으셨다. 난 아직도 한시나 시조를 동경한다. 언제가 꼭 공부하고 싶다. 간결한 문체에 함축된 의미, 거기에 멋들어진 예술, 이것이 옛 선비의 풍류였으리

 

 


우리 일행은 이틀 동안 머물던 갈릴리 해변의 도시 티베리우스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떠나야 했다. 이승종 목사님은 곧장 요르단의 암만으로 가신다. 평양에서 집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 버려두고 오신 너무나 소중하신 목사님… 곁에 지켜 보면서 조선 시대의 선비를 많이 닮았다. 하지만 무관의 기개도 가지고 계셨다. 문무 겸비한 양수겸장이라고 할까? 조국과 세계 그리고 2세를 생각하는 폭이나 아량이 남다르시다.

소망 교회 담임으로 가도 박차고 나올 정도로 판단력이 올곧다. 5.16 시 서울대에서 운동권이 되어 장군이던 선친께서 무척 어려우셨다고 들었다. 대한민국도 감당 못해 미국으로 귀향(?) 보냈는데 미국에서 와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셨다. 사람도 제대로 사람을 낚는 분이시다. 우리 일행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우리의 길로, 이 목사님은 또 미국으로 가신다. 언제나 헤어짐에는 아쉬움이 깊게 자리 잡는다.

 

3. 가나

우리가 가는 가나는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베푸신 곳이며, 또한 나다나엘이 나온 곳이고(요 21:2) 나사렛에서 불과 남동쪽으로 8km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가는 가나(Qana, Cana, Kana))는 여러 곳에 있다.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에도 있고 같은 이름을 가진 도시가 레바논 남부에도 있다 (보통 Qana가 정식명칭)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리나 위치 그리고 당시 배경을 상고해 본다면 우리가 밟고 있는 갈릴리의 가나는 성경 속에 나오는 가나임을 말해 준다.

가나의 이름은 히브리어의 갈대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요 2:1, 21:2). 우리가 가는 곳이 카프르 카나(Kafr Kana)인데 거리는 나사렛에서 북동쪽으로 약 6.4km지점에 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에브라임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경계이름으로 나오는 시내 이름이다(수 16:8, 17:9). 여호수아 19:28에는 가나가 아셀지파의 성읍으로 나와 있다. (수 19: 28)


예수님의 첫 기적을 행안 곳이 바로 가나이지만 오랜 궁금증 가운데 하나가 있었다. ‘나사렛에 사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왜 가나에 가 계시냐?’는 것이다. 나처럼 이런 궁금증이 없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다. 내가 가진 궁금증을 다시 말하면 뉴욕의 맨허튼에 있는 분이 왜 플러싱에 있으며, LA 시내에 사시는 분이 왜 Hollywood 에 가셨느냐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경의 인물이나 지명 그리고 건물에 대해 오직 문자를 통해 듣고 배운 나는 가나와 나사렛에 대한 거리 감각이 있었으면 에지온게벨과 단의 지역의 거리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번 순례에서 이런 궁금증이 싹 가신 것이 나에게 준 또 하나의 축복이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라신(Chorazin) 과 가버나움(Capernaum) 이 지척에 있고, 가이사랴 빌릴보와 텔단이 마주보고 있음도 이제야 알았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나사렛과 가나가 6.4km(어느 지점이냐에 따라 8km도 됨) 밖에 안 되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벳세다에서 예루살렘을 간다면 힘든 길이지만 가나에서 조금 남쪽 길로 내려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가까운 거리인 가나에 나사렛에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와 계셨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의 간청을 들어 주시며 첫 기적을 행하시는데 요한복음 2:1-11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흘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 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언급한 바와 같이 가나의 혼인 잔치가 있었던 교회에는 나다니엘 기념 교회가 있다. 나다나엘이 이곳 출신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5-51에 보면 나다나엘은 빌립에게 전도를 받는다. 요한복음 21:1-2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에도 나다나엘은 베드로와 도마와 세베데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과 함께 있었다. 그런 나다나엘을 전도한 빌립의 놀라운 증언을 들어 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5)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7)


난 개인적으로 나다나엘을 만난 적은 없지만(물론 내 경우만 아니겠지만) 이 구절을 무척 좋아한다. 신약 성경에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영광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종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하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크게 기뻐하신 주님이 나다나엘을 보고도 “참 이스라엘 사람이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주님 오실 때 나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실로 두려운 마음이 든다. 너무나 편안하게 대접만 받고 살아가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일생을 깨끗하게 주님 한 분만으로 그 분이 오시는 날에 모든 사람 앞에 인정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정반대로 기적을 행하고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라고 하신다면… 실로 두려움과 떨림이 엄습하는 순간이다. 그러기에 난 사도 바울의 권면, “너희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라”는 말씀을 좋아한다.


기념 교회에 있는 것들을 설명하고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책자를 보면 설명이 잘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자에 나오지 않는 감동과 영감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 일행이 티베리아스를 출발해 첫 걸음 내린 곳은 가나에 있는 프란시스코 수도회에서 세운 가나 기념 교회였다. 가나는 우리가 가게 될 나사렛처럼 상당히 많은 아랍계 기독교인이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온 회교도들도 살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교회는 AD 3세기에 세워진 교회로 예수님 당시의 포도주 항아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항아리가 매우 크다. 그 크고 많은 항아리를 다 물로 채우려고 하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국에 수돗물이 다 들어오지 않을 때 물긷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보리 고개를 경험하시는 분들은 아시리라. 아주 어린 나는 양동이 물길어 갈 때마다 물을 다 채우면 엿을 사주시던 일 생각난다. 물 항아리를 잘 전시한 예배당에는 포도주도 전시되고 판매도 하였다. 우리는 암만에서 감격적인 성찬식을 거행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가나에서 사는 건데… 우리(양집사님)가 산 포도주는 요르단 국경 건너기전 이스라엘 경내에서 산 포도주였다. (난 이름도 brand 도 모른다. 터키 갑바도기아의 포도주와는 맛이 전혀 달랐다.)

 

 

 

4. 나사렛

가나에서 남쪽으로 시원시원하게 달리니 얼마 되지 않아 언덕이 보이는 도시에 다다른다. 언뜻 보기에도 언덕 위에 좀 규모가 없어 보이는 곳이다. 우리가 묶고 있는 티베리아스 에서 나사렛 까지는 31k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내 느낌은 버스가 달리자마자 금새 다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사렛은 예루살렘에서 북으로 올라올 때에는 약 134Km 지점이나 되고, 텔아비브에서 동북쪽으로 약 105Km 정도 된다. 비교적 티베리아스처럼 가까운 곳이 하이파이며 그곳에서 동남쪽으로 약 39Km 되는 지점에 있다. 나사렛은 에스드라엘론 평원에서 볼때에는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갈리리 언덕의 마을 정도 되는 셈이다. 높이가 해발 375m나 되는 컵을 뒤 엎어 놓은 것 같은 언덕이며 때론 산간 지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여기에 내려 보이는 곳이 바로 근동 지방의 중요한 전쟁터였던 므깃도 평야이다.


우리 일행이 나사렛을 들어 갈 때는 비교적 높은 언덕을 타고 오를 때 가끔씩 도시 전체가 보이기도 하고 때론 드넓은 평야가 보이기 했다. 시야도 좋아야 하고 관심도 더하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난 버스 여행을 좋아한다. 낮은 승용차로 다니면 밖을 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높다란 버스에서 바라보면 마치 전망대에서 보듯 볼거리가 눈에 꽉 차오르듯 다가온다.

이번 기도 성회 가운데 두 대의 버스로 나누어 탄 우리 일행은 좌석이 가득 차서 맨 뒷 좌석에 이르기까지 앉아야 했다. 뒤에 앉으면 스피커 소리도 잘 들리고 지나가는 광경을 잘 볼 수 없는 불편함이 많았다. 궁여지책으로 앞뒤를 번갈아 앉자고 했서 어쩔 수 없이 몸이 불편하신 분, 연로 하시는 어르신들이 뒷좌석에 앉은 불편을 다 감수해야 했다. 그런 모든 분들께 불편을 드린 것 같아 매우 죄송하고 송구스럽기만 한다. 어떤 목사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맨 뒷좌석에 앉으셔서 다른 분들을 배려해 주시는 모습보고 저 모습이 바로 ‘섬김의 모습,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이구나’라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우선 나사렛이라는 도시에 들어 서는 순간 매우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안내해 주시는 이 목사님은 아랍인과 유대인 그리고 기독교인 지역이 따로 구별되어 있지만 비교적 평화롭게 잘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아랍인 40,000명 정도 살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기독교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 전체를 보면 기독교인이 매우 적은 3% 내외 정도밖에 안 되는 곳에서 이렇게 기독교적인 모습으로 다가온 도시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도 예수님의 고향에 아랍인들이 이토록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놀랍기만 하다. 내가 보기에도 사람들의 얼굴이 따뜻하고 적대적이지 않다. 유대인 비교적 잘 살아 보이는 산등성이에 살고 있고, 아랍인은 도심을 중심으로 낮은 지역에 살고 있음이 보인다.


우리가 다녀 왔던 갈릴리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주무대라면 그 신호탄을 끊은 것이 가나이고, 그 사역을 준비하신 곳이 나사렛이다. 그가 30년을 사신 고향(마 2:13-23)인 셈이다. 그가 태어난 베들레헴, 그리고 잠시 애굽으로 피해 가시고(우리 일행은 카이로에 있는 예수 피난 교회를 다녀 왔다.) 일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셨다. 그 이유는 그의 부모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39절에 요셉의 본래 고향이 나사렛임을 말해주고 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이름 앞에는 항상, 붙는 말이 있다. “나사렛”… 그래서 우리는 그를 “나사렛 예수”라고 부른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이 기독교인(Christian)을 부를 때도 히브리어로는 '노쯔리(Notzri)', 아랍어로는 '나스라니(Nasrani)'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나사렛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코란에는 기독교를 나사라(Nasara) 또는 나자라(Nazara) 라고 부른다. 이는 히브리어 어원의 나즈리 하-브릿(Nazrie ha-Brit) 의 복수형 노즈림(Nozrim)에 근거를 둔다. 그래서 ‘노쯔리’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다. 그 뜻은 ‘나사렛 사람(예수)의 언약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이름인가? 초라한 땅 나사렛, 그곳의 나사렛 예수를 따름으로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자들….


또 다른 비슷한 어원으로 나사롯(Nazaroth) 의 나사르(nazar) 라는 말이 있다. 그 어휘의 어원은 점성술(astrology)에서 다루는 히브리어로 열 두 띠, 즉 열 두 별자리를 ‘나사롯(Nazaroth)’ 이라고 불렀다. 이의 어근(語根) 나사르(Nazar) 에서 온 것으로 마치 매일 밤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는 열 두 별자리를 둘러싸듯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를 둘러싼다”는 말이다. 욥기 38장 32절에 보면 “네가 열 두 궁성(constellations/Nazaroth)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라는 말씀이 나온다. ‘열 두 궁성’은 ‘열 두 개의 별자리’를 의미한다. 성경에 나오는 영어로는 constellation , star 또는 zodiac 이라고 쓰여저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마사롯(Mazzaroth) 또는 나사롯(Nazaroth) 으로 나와 있다.

히브리어는 종종 M과 N을 바꾸어서 사용한다. 이 단어는 지금의 나사렛을 말한다. 민수기 6장 2-21 절에 나오는 ‘나사렌”이 바로 나사렛을 의미한다는 것도 큰 힘을 얻고 있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이사야 11:1-2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여기에 나오는 ‘이새의 줄기’에서 줄기의 발음이 Nazir 이다. 여기에서 나사렛이 나왔다는 것이다. 참조로 영문 글을 올려 놓았다.


The etymology of Nazareth from as early as the apocryphal 2nd century Gospel of Phillip has been said to derive from the Hebrew word Nazara meaning truth[3], but the 4th century writer Eusebius, followed until the 20th century, instead derived it from the word נצר netser, meaning a shoot/sprout. There is speculation and biblical indication that Nazarene meaning "of the village of Nazareth", was confused with "Nazir," meaning a "separated" Jew who had taken an ascetic vow of holiness.


구약 시대의 나사렛은 비극의 장소였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므깃도 평야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전쟁이 그치지 않았던 곳이다. 사사기에 나오는 여선지자 드보라가 바락과 함께 다볼산에 나와 가나안 군대의 병겨를 섬멸한 곳이다. 기드온 용사 300명이 미디안을 격파한 곳이며, 사울 왕이 엔들의 무당의 동굴에서 블레셋에게 패배한 소식을 듣고 자신의 칼에 스스로 엎드려 자살한 비참한 소식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꼭 패배의 소식만 있었던 곳은 아니다. 아합왕이 다메석 오는 아람 군대를 무찔러 승리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시야 왕은 앗수르 군대와 싸우다 화살에 맞아 전사한 곳이다. 언덕 위에서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을 영화를 보시듯 다 아셨을 예수님을 생각해 본다. 그런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무시를 받는 역사적이 배경이 또 있는 곳이다.


실제적은 나사렛이라는 지명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예수님 당시에는 여러 의미에서 비하하는 의미로 쓰여졌다. 풍속이 좋지 않고 소문이 나쁘다고 할 때 나사렛 사람(마 2:23, 막 1:24) 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나사렛에 왔다고 하니까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 1:46) 가버나움처럼 풍요롭지도 않고 회당도 잘 꾸며진 곳이 아니라, 언덕 위의 동굴 속에 또는 바위를 파서 움막처럼 사는 매우 초라하고 자그마한 가난한 마을이었기에 가버나움처럼 교육기관도, 시장도, 로마군의 야영지도, 화려한 건축물도 볼 수 없는 곳이었다.
 
만약 내가 나사렛에서 왔다고 한다면 예루살렘이나 그래도 잘 나가는 가버나움 사람이라면 ‘그 사람 제대로 배웠겠나?’라는 반응을 얻을 것이다. 잠시이지만 예수님이 사시던 동굴의 초라한 모습, 그리고 불과 몇 가구 되지 않았던(150명 정도) 매우 작은 규모의 마을은 그가 나사렛 사람이라는 칭호 만으로 그의 모습을 평가절하했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 받음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마가복음 6장 1-4절을 보면,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예수를 배척한지라 ….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이런 연유로 예수님은 그의 고향에서는 환영 받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사렛은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고 배척한 곳이 된다. (마 13:57, 눅 4:29) 그런 예수님이 자기 고향 나사렛에 45척 낭떠러지 앞까지 떠밀리셨으니… 이유는 그가 전한 복음 때문에.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많은 기록을 갖고 있지 못하다. 유적과 당시의 상황을 보고 추정해 볼 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율법과 계명에 정통 하셨음은 이의가 없다. 그가 구약의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기에 그가 성년이 되셨을 때는 신적 지식과 지혜가 충만하셨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유대는 여러 개의 언어, 즉 헬라어, 히브리어, 아람어를 자유롭게 사용했는데 예수님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람어가 유대인들의 일상용어였고 헬라어와 히브리어가 또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예수님이 헬라어를 하였다는 추정은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빌립에게 청하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라고 요한12:20-21 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것을 말씀하신다. 헬라인과 의사 소통을 했다는 말씀은 없지만 의사소통을 충분히 하셨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하는 구절이다. 추정컨대 라틴어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로마의 군대와 관리들이 있는 곳마다 사용한 공용어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는 4개 국어로 패가 쓰여졌는데 먼저 라틴어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써 붙이고 나머지 언어로도 쓰게 된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나사렛은 청동기 시대의 해골과 매장터가 도시 상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이사랴에서 발견된 한 파편에는 히브리어로 똑똑히 ‘나사렛’이라는 글씨가 있는 기록물이 나왔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의 다른 발굴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많은 문서 가운데 4개국어로 쓰여진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나사렛에 교회가 들어서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나사렛은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해 준 곳이다. (눅1:26-38) 그래서 천주교회에서 세운 예수 수태고지 교회인 성 요셉 교회가 있다. 놀랍게도 수태 고지 교회의 같은 boundary 안에는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그리스 정교회에서 세운 가브리엘 교회가 있다. 가브리엘 교회 바로 옆에는 마리아가 수태를 고지 받을 때 있다는 우물이 있는데 일명 ‘마리아의 우물’이라고 한다.

수태고지 교회는 기독교를 공인했던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나사렛에 326년에 마리아의 집터라고 알려진 곳에 세운 교회이다. 이 교회는 모슬렘 치하에서, 십자군 전쟁에서 모진 핍박을 받다가 1630년에 프라시스코 수도회 관활아래 있다가 1918년 영국에게 넘어 갔고, 1966에 중동에서는 가장 큰 교회 건물로 세워지게 된다. 이탈리아의 빼어난 건축가 무지오가 설계하였고, 돔은 로지아에 의해 보강되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바니에 의해 1969년 완성되었다. 지금은 각 나라의 모습을 한 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의 성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 눈에 들어 온 것 중 몇 개는 한복을 입은 한국 그림과 필리피노 그리고 기모노를 입은 일본 그림들이었다. (아래 두번째 사진 뒤에 한복입은 마리아가 보인다.) *사진 생략

(5. 무깃도와 6. 갈멜산상 엘리야 기도회는 다음회와 연결해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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