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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0시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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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박10일의 유대광야중보기도성회(4)
1.    유대 광야 중보 기도성회 강의 재조정
여행을 하다 보면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난다. 그때 여행의 단위가 서너 명이면 해결이 순조로울 수 있지만 인원이 77명이 되면 좀더 복잡해진다. 해결하는 지역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고 먼 나라에 통화와 은행 거래가 전혀 다른 지역에 있으면 양상도 복잡해지고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 의외로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하나님의 은혜로 문제가 잘 해결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번 유대 광야 성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안 되는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이제 그러한 놀라운 일들을 서서히 나눌 때가 되었다. 원래의 계획은 성지 순례하는 도중 시간이 되면 틈틈이 글을 써서 소식을 전해 드리는 것이었으나 때론 이른 새벽까지 끝나는 집회, 그리고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해결하는 모임 등이 있어서 글을 쓸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그러기에 이 모든 일을 은혜 가운데 마치고 차분히 글을 쓰는 지금의 심정과 그때 당시에 위급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에서 쓰는 글은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의 입장은 차분하고 이미 승리를 만끽한 상태이기에 그때의 긴장감을 그대로 유지하고 쓰기는 쉽지 않다. 
 
이번 성회를 차분히 뒤돌아 볼 때 나는 이번 성지 순례를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의 회복,” “열방의 구원,” “이슬람 선교,” “중동 사태를 보는 성경 예언의 성취” 그리고 “성막 기도를 통한 중보 기도”등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제목 하나 하나가 신학교에서 한 학기를 다루어도 부족한 것을 이번 성회에서 다 다루려고 했으니 의욕이 앞선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장시간의 버스 여행에 온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 있는 분들에게 늦은 시간에 드리는 집회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최소한 서너 시간이 필요한 강의를 한꺼번에 진행하려고 하니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이번 주제만 가지고 모였다면, 그 외의 어떤 다른 것도 없었다면 가능하였으리라! 이런 연유로 전체 강의 일정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인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말씀을 증거하였기에, 두 번째로 시내산 자락에서 “성막 기도”에 대하여 강의하려고 했지만 이미 기진맥진한 많은 분들에게 “이스라엘의 회복”의 중요한 메시지를 삼간 채 “성막 기도”를 강의할 수는 없었다. 특히 은혜 한인교회 중보 기도학교에서 “성막 기도”를 15시간에 걸쳐 강의했어도 시간이 충분치 않았는데 그 내용을 그 짧은 한 시간에 강의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가 빠지면 그 다음 주제가 연결되지 않아 전체의 강의 일정을 재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 돌아 오면 크게 여러 주제로, “이스라엘의 회복,” “열방의 구원,” “이슬람 선교를 위한 영적 돌파구,” “중동 사태를 보는 성경 예언의 성취”라는 강좌로 세미나를 여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기도 가운데 이렇게 정리를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좀더 쉬운 주제로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2.    여리고로 들어 가면서
지난 이틀 동안의 여행 경로를 돌아 보니 아찔하다! 카이로에서 홍해를 건너 시내산까지, 그리고 시내 광야를 지나 네게브 사막을 관통하는 대장정이었다. 길고 긴 그곳을 단 이틀 만에 다녀 왔다고 생각하니 믿어지지 않는다. 지나 온 길과 지명과 장소를 하나 하나 음미하며 달려 온다면 여러 날을 보내어도 부족하지 않았을까? 자세히 조사하고 차근차근 정리해야 할 그 많은 길들을 정말 주마(Bus)간산 격으로 달려 온 것 같다.  이번 성지 순례의 특징 중 하나는 매일 저녁에 집회가 열렸다는 점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정 속에서, 제약점이 너무 많아, 찬양도 크게 부르지 못하게 하고, 때로는 악기조차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고 예배를 드릴 때에 더욱 큰 주의 은혜가 임함을 느꼈다. 



여리고는 “향기”라는 의미이며, 거리로는 예루살렘에서는 북동쪽으로 36km, 요르단 강과 사해가 합류하는 곳에서는 북서쪽으로 15km 지점에 위치한 곳이다. 지중해 해수면으로 보면 무려 260 m 나 낮은 지역이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그리 낮은 곳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리고 성에 들어 가는 순간 유달리 종려나무가 무성함을 본다. 과연 예로부터 종려나무 성이라 불릴(신34:3) 정도로 많은 유실수가 우거져 보기에도 시원 시원하였다, 이는 광야의 오아시스를 풍성케 하는 샘물이 풍성하게 흘러 나오기 때문이다. 이번 성지 순례에서 눈에 띄는 한가지는 가는 모든 장소가 역사적으로, 현재적으로 그리고 미래적으로 모두 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역시 역사상 일어난 여리고의 중요한 새삼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랍과 이스라엘의 중요한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는 이스라엘 지역에서 아랍 즉 좀더 정확히 말하면 요르단 지역으로 들어가는 West Bank 이기 때문이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통치하에 들어 왔다고 하지만 거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아랍인이다. 이 지역으로 들어 온 순간 영적 기상도가 완연히 다르다. 다시금 기도의 고삐를 곧추 세운다.



여리고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서 첫 번째로 점령한 도시이다. 우리의 출애굽과 광야의 행로는 요르단 강을 건너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애굽에서 광야로, 그리고 네게브 사막을 가로 질러 여리고로 입성하는 것은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여정과 흡사한 점이 많이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서 첫 번째로 정복한 도시인 여리고에 관한 기록은 여호수아 5:8-10에 나와 있다. 그리고 12 지파에게 분배한 이 땅은 후에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나뉠 때 유다 지파와 함께 남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다(수 18:21).  바로 이어진 사사 시대에는 모압왕 에글론이 이곳을 점령하기도 하였다(삿 3:13). 그리고 남 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이 히스기야는 느부갓네살에게 쫓겨 여리고 까지 도망 왔으나 그에게 잡혀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간 곳이기도 하다(왕하 25:5, 렘 39:5).
 
예수님 당시에 소경 바디메오를 고치신 곳이며(마 20:29-34, 막 10:46)이며 세리장 삭개오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난 곳이다(눅 19:1).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중 강도를 만난 사람이 내려 간 곳도 여리고(눅 10:30) 이다. 지중해보다 낮은 이곳이 누가복음 10장에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나매”는 표현이 훨씬 가깝게 다가온다. 실제 예루살렘은 해발 750m 에 위치해 있고, 여리고는 해수면 260 m 에 낮은 지점에 있기에 고도 차이는 1010m 된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32km 에 불과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오는 길은 계속 내리막길임을 생각할 때 “내려 온다”는 표현이 실감 있게 다가온다. 예루살렘에 이곳까지 오는 지형을 보니 숲도 없는 민둥산에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계곡과 바위 산이 계속되고 길은 꾸불꾸불하니 강도 만나기 안성맞춤이라고 생각된다. 버스 안에서 내려다 보니 정말 “Welcome to the Good Samaritan Inn” 이라는 여인숙이 눈에 들어오는데 실은 기념품을 파는 가게라고 한다. 
 
3. 엘리사의 샘물  
성경을 읽다 보면 때론 이해되지 않던 구절이 성지에 와서야 이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중 하나는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나선 선포한 여호수아서 6장 26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헤롯왕이 이 오래된 폐허 근처에 겨울 궁전을 세운 것으로 나와 있는데 정작 새로운 도시로 여리고는 발돋움하였으나 그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지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여리고 성은 모든 사람이 다시 도시를 세우고픈 매우 중요한 요소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깜짝 놀란 만한 수원이 쏟아져 나오는 샘물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일행이 여리고성을 들어 가는 곳에 바로 들른 곳이 “엘리사의 샘”인 것이다.

 





 
샘물 하면 한국에는 기껏해야 “깊은 산골 옹달샘” 정도로만 보아 왔던 차에 내 눈으로 꽐꽐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수량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거의 사막이나 진배없는 이 광야에 저런 수량이 나오다니! 이는 매 분당 4,000L 가 넘는 물이 밤이고 낮이고 흘러 나온다. 자세히 보니 그 쏟아져 나오는 물을 그대로 대형 수도관으로 연결하여 도시로 공급하고 있다. 성경에 보면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은 이 물을 엘리사가 소금을 넣어 결실하게 됨으로 “엘리사의 샘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왕하 2:19-22). 이 샘물 외에도 다른 세 개의 샘물도 있어 충분한 수원을 공급한다고 한다. 광야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4.    삭개오와 뽕나무


 
여호수아 시대의 여리고말고 신약시대의 여리고 하면 예수님께서 뽕나무 위에서 만난 삭개오의 이야기를 연상할 것이다. 한국의 뽕나무는 나지막한 키에 약간 포도 넝쿨과 같은 느낌의 작은 나무의 연상을 주지만 여리고 시내에 있는 뽕나무는 제법 규모가 있는 덩치 큰 활엽수를 연상케 한다. Sycamore Tree 로 나와 있는 이 나무는 정확한 번역으로는 돌 무화과나무이다. 상당히 오래된 나무임에는 틀림이 없음을 매우 큰 밑동과 잎이 무성하게 큰 가지를 보아 알 수 있다. 물론 이 나무는 예수님 당시의 나무는 아니지만 그때의 모습을 연상하도록 팻말도 있고, 관광객들을 위한 책자도 팔고 있다. 나무 옆에는 예수님을 만나 삭개오 이야기를 묘사한 모자이크가 있다. 이 뽕나무를 보니 삭개오가 어떻게 만났는지 순간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서 과거로 돌아 가본다.



 
성경에 보면 삭개오는 여리고 성에서 뽕나무 위에서 주님을 만나게 된다. 삭개오(Zacchaeus)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의 삶의 전력에 어울리지 않는 “순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세리장인 그가 로마제국에 빌붙어 동족의 피를 빨아 먹는 사악한 일을 했으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이름은 반대의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 개과천선하여 자신의 절반을 나누어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부정한 방법으로 탈취하거나 축재한 것이 있다면 4배나 갚겠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이번 중보 기도 성회에 만난 분들은 내게 있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만남의 축복을 주신 분들이다. 우리가 예수를 온전히 만나면 우리의 삶도 온전히 변하리!
 
5.    여리고 성곽 위에서
우리 일행은 호텔에서 나와 여리고 시내와 엘리사의 샘 그리고 뽕나무를 본 다음 곧장 여리고 성의 유적지가 있는 성곽으로 향하였다. 출애굽과 광야의 모든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입성의 첫 관문의 천혜의 요새 여리고 성이었다. 여리고 성은 옛 이름으로 “텔 아스 술탄(Tel As-Sultan)”이라고 불린 곳으로 가나안 정복 시 난공불락의 요새로 버티어 선 바로 그곳이다. 이때가 BC 13세기 즉 3300년 전의 일이다. 우리 일행이 여리고 성으로 들어 간 곳에는 청동기, 철기 시대와 가나안 시대 그리고 예수님 당시까지의 지구상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인 오래된 역사를 고고학적으로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BC 7000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성벽을 쌓아 방어진을 구축한 성곽 도시이다. 여호수아 당시에는 내벽과 외벽으로 방어벽을 구성했다고 하니 가히 놀라운 축조 기술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시의 발달된 문명과 기술을 짐작할 수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50년 영국에서 온 캐틀린 캐년(Kathleen Kenyon)이라는 여성 고고학자가 집중적으로 발굴하여 9000년에 이르는 성의 역사를 밝혀주었다 한다. 지금 같으며 붓과 호미로 조심스럽게 원형을 손상시키지 않고 발굴했겠지만 그러한 고고학적 기술이 발전되지 않던 시기에 마치 포크레인은 파헤친 것 같은 모습으로 성곽의 모습을 보여 준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만약 비라도 온 다면 저 인류의 문화 유산이 무너져 버리련만 다행히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지역이기에 쓸어 내리는 가슴을 안도시킨다.
 
지금의 여리고 시내에서 1.5 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성곽은 22m 의 높이에 위치해 있다. 이곳 성벽의 길이는 350m 에, 폭이 150 m에 달하는 규모가 있는 성곽이다. 토막 낸 단층처럼 보이는 성곽의 자리에는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매우 발달된 축조 기술의 모든 것을 보여 주려는 듯 그 모습이 그대로 들어나 있다. 우선 오래된 곳은 듬성 듬성 돌로, 그리고 그 이후에는 벽돌을 이용한 축조 기술이, 그리고 그 위에 토사가 쌓인 모습까지 다양한 축조 기술의 단면들이 오랜 세월의 흐름을 한눈에 보게 해 준다. 언덕에서부터 발굴된 곳까지 13m에 이르는 층층의 모습은 당시의 여리고가 얼마나 견고한 성이었나 하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눈을 들어 그때 당시에 이러한 규모로 거대한 성벽을 둘렀을 것을 생각해 보니 성 밖에서 강력한 성곽 요새를 바라 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전해 온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전쟁이었음을… 양만춘 장군이 견고한 안시성 하나로 당 태종 이세민의 30만 군대를 막아내었는데, 여호수아는 오직 기도의 힘으로 강력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다고 하니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이 난다.  마지막 시대는 중보 기도를 통해 마무리되고 또한 승리의 깃발을 들게 될 것이다! 옛 성터에 성벽 뿐을 자세히 보니 바로 옆에 둥근 모양의 망대 터가 보인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망대라고 하며 무려 높이가 8 m 나 된다고 하니 적의 침입을 한눈에 관찰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곽 주위를 돌며 Prayer Walk 하는 광경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성곽을 따라가면 주거지와 무덤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일부는 언덕 아래에 잘 볼 수는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성벽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고, 항아리, 도자기와 그릇들이 유물로 보존되어 있음을 안내 표지만을 말해 주고 있다. 좀더 먼 곳을 가장 높은 곳에서 보니 시험산이 보인다. 우리가 간 날은 황사가 몰아쳐 시계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멀리 내다 보이는 산이 바로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시험산”이라고 한다(마 4:8-9). 시험산 중턱에 보이는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성곽처럼 보인다.
 
6.    영적 승리를 선포한 역사적인 여리고 성 중보 기도 성회
 
성지 순례를 다 마쳐 가는 즈음 우리는 마지막 집회를 암만의 호텔 로비 옆에 있는 장소에서 갖게 되었다. 그때 나는 모든 분들에게 가장 은혜로웠던 것 하나만을 말해 보라고 하였다. 거의 대부분 여리고 중보 기도 성회를 꼽았다. 일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경험이자 역사이며 은혜임을 고백한다. 왜였을까? 그 이유는 지축을 흔드는 영적 체험과 큰 하나님의 임재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다른 수단이 아니라 온전히 기도로 무너 뜨린 곳에 우리도 그와 같은 영적 승리를 체험하리라! 예나 지금이나 여리고는 가장 치열한 영적 격전장이다! 지금 여리고 시내가 위치한 곳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West Bank 지역이며, 유대인과 아랍인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지역이며, 영적 전투가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마치 여호수아 당시처럼 이슬람의 세력이 견고한 진을 구축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시야를 가리는 황사는 온 천지를 삼킬 수 심하게 불어 온다. 카메라맨과 몇 마디 나누니 어느새 입안에는 모래가 들어 와 말하기가 불편하다. 저만치 보이는 언덕 위에서 중보 기도 성회를 하려고 하니 광야에 있는 모래 바람을 모아 꼭 모래 폭풍으로 불어 주는 듯하다. 영적 기상도도 이 지역이 얼마나 강한 사탄의 도성임을 직감할 수 있다. 우리 70명의 일행은 먼저 성곽 터로 올라가 그 성곽일대를 여호수아가 마지막 말 대오를 정비하고 7바퀴를 돈 것처럼 땅 밝기 기도 (Prayer walk) 을 시작하였다. 매 한 바퀴씩 돌 때마다 기도 제목을 하나씩 주며 기도하였다.


 
1.    먼저 우리의 죄, 깨끗지 못한 죄, 기도하지 못한 죄, 개인의 죄, 민족의 죄 그리고 우리 모두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하나님이 이 땅을 밟는 이 자리에 주의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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