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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0시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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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박10일의 유대광야 중보기도성회(3)

 

 

김종필 목사는 9박10일의 유대광야 기도성회를 위해 이승종 목사와 70여명의 일행과 함께 이스라엘을 탐방했다. 다음은 여행의 일정등 기행문과 함께 성경의 내용을 적용해가며 여행 중의 단상을 기록한 내용이다.

1. 타바에서

우리는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아라바 계곡을 지나 이집트 쪽에서는 타바 즉 국경선에서 출국과 입국 심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에일랏(Eilat)이라는 이스라엘의 휴양 도시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이스라엘 지경인 에일랏(Eilat)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신광야" 그리고 "바란 광야"라고 하는 네게브 사막을 가로 지르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서 에시온게벨 곁에 있는 에일랏을 지나왔으며 (신명기 2:8)"라는 출애굽과 광야 경로를 그대로 가게 된 것이다.

시내산을 출발하여 하세롯을 거쳐 에시온 게벨을 거처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게 된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은 위험천만하며 고되기 그지없는 그런 행로였다. 특히 우리가 지나가게 된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낸 곳이기도 하다. 즉 우리가 지나간 그 길이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운명을 바꾼 그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지금의 네게브와 요르단 서안(West Bank)에 이르는 땅을 정탐한 그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고, 가나안 거민을 보고 지레 겁을 먹은 10명의 정탐꾼은 감히 그곳을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임을 본다. 10명의 정탐꾼들은 기골이 장대한 가나안 족속 뿐 아니라 견고한 여리고 성을 보고 무척 겁을 먹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여리고 성의 무너진 성벽에서 기도회를 하면서 그 지역을 볼 때 "과연 여리고 도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구나" 하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째튼 10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에 동조하여 낙담하고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유리방황하며 가나안 복지에 발도 들여놓지 못한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땅을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점 또한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정복되지 않을 산은 없는 것이다!

모세의 당시나 지금이나 에시온 게벨과 에일랏은 옛이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휴양지이자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한 이후 네게브 사막의 끝부분에 위치한 이곳을 더욱 더 휴양지로 개발하였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물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홍해바다를 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지난번 보내 드린 시 "광야의 끝 길에서"라는 시는 이집트 국경선에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해안가에 널려 있고 둥글둥글한 조약돌들이 너무나 맑고 청아한 물결에 투명하게 비추이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 즉시 쓴 시였다. 그곳 타바에서 조금만 가면 에일랏이 나오지만 세상의 많은 바닷물 가운데 그렇게 맑고 청명한 물은 보기도 힘들며, 작고 아담한 수많은 조약돌들이 물이랑에 흔들리는 아름다움은 가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2. 아내와 딸과의 조우

3. 이번 유대 광야 기도 성회에서 단연 떠오르는 화두는 헤어짐과 재회이다.
런던으로 간 분들은 비행기 티켓은 물론 명단조차 발견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마치 잃어버린 자가 된 마음을 느꼈으며, 그러한 일은 런던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보다 더한 상황이 암만에도 이어졌으나 그들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카이로에서 안착하여 우리 일행과의 감격적인 재회를 하였다.

헤어짐과 만남은 인간사에 있어서 영원한 주제임에는 두 번 말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특히 부모와 자식,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잠시 이번 여행에서 헤어졌다고 다시 만난 분들의 감회는 남다른 것이었다. 이는 우리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뉴욕 팀은 4월 29일 밤에 모여서 출발하였는데 아내와 딸은 5월 1일 딸의 대학 졸업식이 있어서 졸업식 이후 스스로 보스톤-뉴욕-암만-그리고 타바까지 와서 우리 일행을 만나야 하는 어렵고도 고된 과제를 풀어야만 했다. 이번 여정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전화도 인터넷도 제대로 되지 않아 아내와 딸의 행방을 잘 추적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믿을 수 있는 것 하나는 떠나기 전에 약속한 그대로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너무나 어려운 일을 겪는 것을 지켜 보신 이승종 목사님이 John Baek 간사님을 강권하여 암만에서 아내를 만나 우리 일행과 조우하도록 하셨다. 이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더욱 더 감사한 것은 David Choi 장로님이 아내와 함께 동행하게 된 사실이 못내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나를 안심시키는 통로가 되었다. 단 몇 분이라도 아내와 딸이 잘 도착했는지 알고 싶어하는 더 빨리 알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을 눈치 채셨는지 이승종 목사님이 나서신다.

지루하기만 한 이스라엘 측 이민국 심사를 마친 일부를 떠밀 듯 보내 1진으로 보내신 것이다. 2진 버스를 뒤로하고 떠난 1진 버스 속에서도 나의 마음은 버스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다. 버스는 어느새 황량한 사막을 가로 질러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며칠 밤을 지새웠을 아내와 딸 그리고 최 장로님이 기다리는 중간 지점으로 달려 간다. 약속 장소에 이르니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는 곳에 여러 시간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미안하고 아픈 마음으로 가슴이 쓸어내린다.

주여 감사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와 딸 그리고 장로님이 겪은 고생은 또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하지만 단 한 번의 만남은 그 모든 고생을 일거에 쓸어 내려 버리는 특효약이 됨을 본다. 우리를 태운 일행이 고맙게도 부지런히 쫓아 온 2진과 휴게소에서 해후하게 되었다. 아내와 딸이 있어서인지 그 유명한 사막의 명물(?)들이 야채들이 휴게소 진열대에 그윽하다.

아아! 진한 커피가 문득 그리워진다. 하지만 텁텁한 입맛에 푹푹 찌는 더위까지 겹치니 어렵사리 얻은 커피는 혀 끝에 느껴지는 입맛마저 가시게 한다.

4. 네게브 사막에서

예전에 BBC 인지 미국 TV 프로그램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한 서양인 부부가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 우물을 개발하고, 화초를 가꾸고 그곳에 채소를 심어 사는 다큐맨터리를 본 적이 있다. 작열하는 적도의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사막 한 가운데 온통 꽃 천지에 벽돌로 지은 집에 북아프리카의 주민들이 와서 보고 모습들도 보여서 마음이 참 흐믓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 닥친 모래 광풍이 그들이 일생에 단 한번의 각오로 가꾼 모든 것을 다 앗아가 버렸다. 집은 황폐되고, 꽃밭은 흔적도 없고, 우물은 다 메꾸어지고…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모습이었다. 그 다큐맨터리의 마지막 장면은 사막에는 그 어떤 것도 시도하지 말라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우리 일행이 시내 반도를 떠나 네게브로 들어 서는 순간 내게 떠오른 장면이 바로 그 장면이었다. 참으로 억세기 그지 없는 황사가 온 몸을 휘감듯 덮쳐온다. 오늘은 그리 심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정신을 주체할 수 없다.

아라비아에서 보는 그런 모래 바람은 아니겠거니(아직 그런 사막의 모래 바람을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아서) 하였지만 모래는 온 몸을 파고 드는 것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콧 구멍, 귓 구멍 그리고 입안에도 서걱서걱 걸린다. 휴지에 물을 적시어 닦아 보니 시커멓게 묻어 나온다. 황사에 의해 시계가 분명이 보이지 않는다. 황사가 심하게 불면 불수록 점점 더 보이는 놀라운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실은 버스는 달려가고 있었다.

기적의 현장, 사막을 실제 바꾼 현장 바로 그 역사의 무대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돌산과 푸섶거리는 들판, 그리고 들짐승도 거하기 어려운 광야로 이루어진 시내반도를 지나 이집트 국경선에서 이스라엘로 넘어오니 같은 사막이지만 분위기가 완연 다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네게브 사막은 이스라엘 전 면적의 절반(60%)을 넘게 차지할 만큼 큰 땅이다. 하지만 강우량은 20-40 mm에 불과하다.

필리핀 선교사로 사역할 때 한꺼번에 1,000mm의 물이 쏟아 부어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었는데 그 비를 이스라엘 땅에 부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대홍수가 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우리 일행이 마지막 여정으로 있던 요르단에 있는 와디 럼(Wadi Rum)도 사막 지역으로 그곳에 간간히 온 비가 형성되어 내려간 물을 버리지 않기 위해 지하에 그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막에서는 물 한방울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우리 일행의 버스가 달리는 사이 고맙게도 황사와 더불어 간간히 흩뿌리는 비가 차창을 때리는 장면이 연출되다가 반가운 비가 점점 희미하게 사라진다. 그 미미한 빗방울도 소중한 자원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드넓은 사막 가운데 와디가 군데군데 형성되어 있고, 낮은 구릉에는 자그마한 빗물이 지나간 자리에 예외 없이 풀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빗물이 시원시원 내리는 미 동부나 한국의 날씨는 얼마나 축복된 곳인가? 새삼 생각해 본다.

수천 년 동안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오직 버려진 땅을 말없이 지켜온 유목민 "베두인"만이 지나가는 이 땅에 기적을 창출하는 역사의 큰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다. 40억 평에 달하는 네게브 사막을 개발하는 엄청난 국가사업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일행이 달리는 버스는 그 역사의 현장을 거침없이 가로 지를 때 내 눈은 생생한그 모습을 보면서 눈은 점점 더 커지고 심장은 빠르게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바로 네게브 사막이다!

네게브 지역은 여전히 사막이지만 간간히 육림사업으로 종려나무 숲과 밭이 보이고, 키부츠도 시야에 들어 온다. 이곳이 그야말로 "사막이 낙원" 되는 역사의 현장이다!

단지 국경선 하나 넘는데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이스라엘에서 요르단으로 건너 갈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기후와 배경도 비슷하지만 황량한 사막을 푸른 초원으로 만들었던 배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워 즐거워 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곡 우리 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사35:1-2)"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사막이 낙원되리라(사 51:3, 35:4-7)"는 예언의 말씀은 실로 2800년 만에 성취된 것이다. 1964년 이스라엘의 첫 총리였던 벤 구리온(Ben Guiron) 에 의해서이다.

그는 이스라엘 독립 후 13년을 총리로 재임하면서 역사를 바꾼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이스라엘이 나아갈 길을 몸으로 보이고, 그리고 비전을 제시하면서 헌신과 희생 그리고 모든 사람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지도력을 보임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그 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사막을 옥토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그는 네게브 사막 개발을 몸소 실천했을 뿐 아니라 앞장서서 개발을 독려하였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희망은 네게브 사막이다." "우리가 네게브 사막을 정복하지 못하면, 네게브 사막이 우리를 정복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면서 "네게브 사막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물과 우리의 땀이다'라고 하였다. 77세 고령의 노총리가 은퇴하자마자 부인 파울라 여사와 함께 달려간 곳이 바로 네게브 사막이다. 나도 황량한 이 네게브 사막을 보고 달리고 있지만 노령의 수상의 눈에는 지금처럼 옥토로 바뀌는 환상을 보고 사막으로 달려 나갔음이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총리 관저를 뒤로하고 네게브에 있는 "스테보켈" 키부츠의 일원이 되어 보통 사람으로 물을 주고 흙을 가꾸는 일에 헌신한다.

꼭 10년 동안 그가 87세가 되어 이 땅의 생명을 다하기까지 그에게는 단 한 평의 땅도, 남아 있는 통장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황폐한 네게브를 옥토로 만들어 이스라엘 국민에게 유산으로 남겨 준 것이다.

아 얼마나 위대한 유산인가? 그가 키부츠에 살면서 기거했던 집은 "벤 구리온" 기념관으로 많은 이방인들을 반겨 주고 있다. 우리는 일정상 그곳까지 다녀 올 시간이 없어서 못내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하지만 초라하기 그지 없었던 그가 살았던 집의 모습을 글로 찾아 보면서 몸으로 말해 주는 그의 절약과 근면 정신으로 영원히 살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 같다.

이제 네게브는 더 이상 버려진 땅이 아니다. 사막이 바뀌는 현장은 이스라엘의 역동성을 말해 주는 삶의 현장이다. 벤 구리온은 앞장서서 요단강 물을 끌어 들이는 송수관이 먼저 우리 일행을 반기는 듯하다. 그가 설치한 송수관의 행렬은 끝이 없다. 벤 구리온은 이곳에 끌어 들인 물을 단 한 방울이라도 절약하고자 그 유명한 "세류관개(細流灌漑, drip irrigation)"에 관한 새 방법을 고안하였다.

이는 직경 1 cm 정도 되는 아주 가느다란 호스에 매우 작은 구멍을 촘촘히 뚫어 그것을 땅에 잘 깔아 놓은 다음 물을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농작물 위에서 물을 뿌리는 방법보다 물을 2배 이상 절약할 수 있다. 특히 포도나 일반 과일에도 당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그는 송수관을 이용하여 버려진 사막의 땅을 채소밭과 과수원을 만들도록 키부츠를 유도하고 육림사업을 주도하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그 물을 이용하여 양어장도 만들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 없다.

일년 내내 섭씨 40도를 오르는 곳, 푹푹 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그곳으로 요단 강에서 끌어드린 물로 담수호도 만들고, 꽃과 과일을 재배하며, 1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요단 강의 물이 충분하다 해도 사막을 다 커버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최저 1,000미터 아래의 지하 대수층(帶水層)을 찾아내 끌어 올린 지하수였다. 이 지하수에는 농업용수로는 부적합하리만치 염분의 농도가 많았다고 한다. 아마 다른 민족이었으면 쉽게 포기하였으리라! 하지만 네게브 사막의 개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염분이 포함된 물로도 재배가 가능한 농작물을 개발하고 또 품종을 개량하기에 이른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염분이 높은 지하수로 키운 과일이 더 당도가 높고 맛도 좋다는 사실이다. 위기를 호기로 만든 지혜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염분이 많아서 잘 자란다는 종려나무 다른 지역보다 유달리 더 많이 보인다.

우리가 지나가는 네게브 사막 곳곳에는 송수관 뿐 아니라 지하수를 개발한 건물과 지하수를 보내는 파이프 라인을 종종 볼 수 있으면 이러한 물들을 이용해 재배하고 있는 농업단지, 임업단지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물과 지하수 개발에만 멈추었다 해도 세계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감동을 주는 부분은 다른 지역에서 쓰는 생활 폐수까지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정수하여 네게브 사막의 농업용수로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게브 사막에서 쓰이는 용수 가운데 50%가 생활폐수를 정수한 물이다.

이곳저곳에 물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수자원을 백분 활용하는 그 노력과 헌신에 그 땅이 화답한 것이 식물이요, 작물이면, 임업이었음을 본다. 왜냐하면 일명 버려진 땅 같은 네게브 사막의 토양은 비료나 화학용품에 퇴색하지 않은 사실은 비옥한 토양이었던 것이다. 현재 네게브에서 재배되는 이스라엘산 꽃들이 유럽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사막이 낙원이 된 것이다.

마침 그날 저녁 예배 가운데 Gordon Conwell 김성주 전도사님이 "사막이 낙원되리라"는 찬양을 부르니 더욱 은혜가 되었다.

5. 키부츠

우리는 여기에서 사막을 옥토로 만든 원동력 중 하나인 키부츠(Kibbutz) 를 한번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일정 가운데 키부츠 방문은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네게브 사막을 지나가며 종종 보이는 키부츠는 다음 기회에는 며칠밤 묶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히브리어로 "집단(group)"이라는 뜻을 지닌 "키부츠"는 말 그대로 공동 생활을 하는 생활 공동체를 뜻한다. 1909년 시오니즘(Zionism)은 키부츠를 세우는 토대가 되었다. 1910년 먼저 갈릴리 호수 남쪽에 "드가니야" 키부츠가 바로 역사적으로 최초의 키부츠라고 한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약 250-270개의 키부츠가 있으며, 회원만도 1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 농업인구의 17%나 점유한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보통 키부츠의 구성원은 60명에서 많게는 2000명까지 있다. 키부츠는 사유재산을 갖지 않으며, 토지는 국유이거나 또는 공동소유를 전재로 한다. 그러기에 그들이 거두어 들이는 수입도 당연히 공동소유가 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개인 소유도 인정하는 다양한 형태의 키부츠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키부츠의 수입에 의해 부부단위의 주거가 공여되고, 식사는 공동 식당에서, 의류도 공동 구입하며 분배고 균등하게 이루어진다. 18세까지 아이들도 부모와 별개로 집단 생활을 하며 또한 집단 교육을 받는다. 이제 키부츠는 농업 분야뿐 아니라 공업에도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꾸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6. 6일 전쟁

그러면 어떻게 아무 쓸모없는 사막이 푸른 초원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에는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요르단 강의 이용권을 놓고 이스라엘과 접경한 요르단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와의 크고 작은 분쟁이 잦았던 때이다. 이때 시리아는 요르단 강 상류를 막아 버릴 수 있는 댐을 건설하게 된다. 이에 이스라엘은 그 댐을 파괴해버리고 주변 국가와의 전쟁에 들어 간다.

때는 1967년 6월 5일 오전 7시 45분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이집트를 기습적으로 공격함으로 이른바 6일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우회하여 리비아 사막을 통해 들어 왔기 때문에 레이더 망에도 걸리지 않았다.

참으로 허를 찌른 공습이 아닐 수 없다! 이른 아침 공격이었기에 이집트의 지휘관들이 출근도 되지 않은 시간에 제대로 대처했을 리 만무하다. 이 기습 작전으로 이집트 공군은 궤멸되다시피 되었다. 제공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은 지상군을 진격시켜 시내 반도와 수에즈 운하를 장악했고, 시리아와 요르단과의 전투에서도 대승을 거두었다.

그들은 막강한 공군기를 이용하여 시리아가 골란 고원(Golan Heights)에 건설한 댐을 파괴해 버리고 기선을 제압하고 만다. 참으로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이다. 작은 다윗인 이스라엘이 골리앗인 아랍을 이긴 셈이다. 이를 두고 6일 동안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하여 6일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는 시내반도를 점령해 버리고,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서안지구(West bank) 와 가자 지구(Gaza Strip)를 차지하고 심지어는 아랍 지역인 동 예루살렘까지 점령해 버린다. 시리아로부터 골란 고원(Golan Heights)를 빼앗아 버린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일정에는 시내 반도는 물론, 서안지구(여리고)와 골란 고원 그리고 동 예루살렘까지 모든 다 방문하는 일정으로 되어 있음을 생각할 때, 고대로부터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모습을 다 볼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놀랍고 또한 감격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지나 왔던 시내 반도의 잘 닦여진 도로들도 마치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사 35:8)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처럼 보여진다.

이는 이스라엘이 시내 반도를 점령하던 기간에 닦아 놓은 대로라는 사실과 이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은 성지 순례 즉 거룩한 땅을 지나가는 성경 구절 그 말씀을 의미하는 것 같아 새롭고 또한 경이롭기만 한다.

우리는 시내산 우회 도로부터 시내산 기슭 그리고 에일랏에 이르기까지 잘 정비된 그 역사적 도로를 힘차게 달리며 기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또한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대로가 이스라엘 예루살렘과 갈릴리까지 곧장 연결되어 우리를 인도해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격스럽게.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 시내 반도 모든 지역을 영구적으로 지배한 것은 아니다. 6일 전쟁이 끝난 10년 뒤에 이집트의 사다트(Sadat)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에 하나인 예루살렘 방문을 시도한다. 사다트와 이스라엘 수상인 베긴(Begin)은 1977년 서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스라엘은 그 협정의 내용대로 시내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해 주었다. 이 일로 중동의 평화의 서운이 드리워졌다고 세계는 환호하였다.

그러나 평화 협정의 주창자인 사다트는 이집트 군에 의해 암살당하고 중동의 평화는 암운이 드리워진다.

자 여기에서 우리는 왜 6일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를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전쟁은 물의 사용권을 놓고 벌인 물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집트, 시내 반도, 요르단, 시리아, 이스라엘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임을 알 수 있다. 전기한 바와 같이 사막이지만 나일강이 흐르는 이집트는 나일강 삼각지(델타지역)를 중심으로 문명을 꽃피웠다.

요르단, 시리아, 그리고 이스라엘은 헐몬산의 눈이 녹아 내리는 수원이 갈릴리를 거쳐 사해로 흐르는 이 물의 원천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이번 성지 순례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연유로 우선 시리아는 요르단 강으로 들어 가는 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자원으로 사용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요르단 국경선을 흐르는 요르단 강물을 이용해 이스라엘이 농업지대를 조성하려 한 계획과 상충되는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시리아 요르단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이 댐이 건설된다면 요르단 강에는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폭격기를 보내 댐을 파괴하면서 발발한 것이 6일 전쟁인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시내 반도는 물론 West Bank 와 Golan Heights 를 점령해 버렸다. 지금 우리가 가기로 되어 있는 여리고가 바로 요르단 서안 (West Bank) 에 위치해 있고, 갈릴리에서 우리는 골란 고원(Golan Heights)을 가리고 예정돼있다.

앞으로 에스겔 선지자가 말한바 성전에서 흐르는 생수가 온 중동 지역을 적시어 새로운 부흥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말한다. 아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말씀인가?

7. 사해에 이르는 아라바 계곡을 지나가며

우리가 지나 온 에일랏에서 사해바다 남단까지 이르는 170km 거리를 아라바 계곡이라고 한다. 한국이나 미국처럼 한눈에 보이는 계곡이 아니라 여러 시간을 지나가며 나중에야 지도를 보고 알게 되는 그런 계곡이다.

아라바는 원래 "거친 들"이라는 뜻이다. 성경에 보면 아라바는 갈릴리 호수 남쪽에서부터 홍해의 아아카바만 깊숙이 자리잡은 지역까지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일행이 지나온 타바, 에일랏, 에시온 게벨의 홍해 지역으로부터 사해 바다를 지나 갈릴리 남단에 이르는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 지역도 사해를 경계로 하면 동편의 에돔 산지와 남편의 네게브 사막으로 나누어 볼 있다. 아카바에서 북쪽으로 70km 정도 가는 길은 아주 약하게 200m 지점으로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안내해 주시는 박 목사님은 지질학적으로 아주 잘 설명해 주신다. 즉 요르단 지역과 이스라엘 지역의 두 개의 plate (지층)이 헐몬산 쪽으로 융기하면서 왼쪽의 이스라엘 지역은 아래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의 요르단 지역은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생긴 산악 지역과 낮은 지역을 설명해 주신다.

하여튼 200m 지점까지 올라가던 땅은 갑자기 푹 꺼지는 느낌을 받는데 그 지역이 바로 지구상 가장 낮은 지역인 사해인데 해수면 600m 아래도 하강해 있는 것이다. 완만히 올라가는 것 같더니 어느새 오랫동안 달리기에 느낄 수는 없었지만 이미 해수면 아래로 내려온 지역에서 먼발치에 보이는 사해가 나지막한 모습으로 우리를 마중해 주는 듯하다.

바로 이 지역이 성경에 나오는 사해이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가 위치한 곳이며,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그 지역이다. 성서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소돔과 고모라로 추정되는 지역은 모두 여러 곳에 이른다.

사해바다 북쪽 해변 즉 지금의 요르단 투레일랏 가술(Tuleilat Ghassul)과 사해 바다 남쪽, 데이르 엔 아바타(Deir Ain Abata) 가 위치한 사해의 남동쪽 도시 즉 소알과 사해 남서쪽 3km 선상에 길게 늘어선 암염으로 이루어진 산, 즉 제벨 우스돔(Jebel Usdom) 이라고 불리우는 소돔산 지역으로 의견으로 분분하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가며 보았던 소금 산에는 롯의 아내로 추정되는 소금기둥이 덩그러니 서 있음을 보았다. 내려서 사진을 찍을 순간도 없었음이 약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안내해 주시는 목사님이 "저곳이 바로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으로 추정된 곳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이 그 물체는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시내산 등정을 마치신 분들이나 오랜 여행에 피곤한 분들의 눈에도 그 귀한 모습(?)이 주마등산처럼 지나가 버렸으리라!

특히 사해(Dead Sea)는 아랍인들에게는 소금바다(Salt Sea) 로 불리우며, 이 바다와 주변지역은 더 이상 죽은 바다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해의 광물질과 주변의 광산이 수많은 자원을 주 산업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해 남쪽 36km 선상에 있는 키르벳 나하스라는 곳은 여전히 구리 광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잇다. 이 광산은 솔로몬 시대 개발되어 사용된 이후 지금까지 그 흔적을 남기도 있다. 그 근처에는 키르벳 네낍 아세이메르 등도 다 구리광산이 있었던 지역이다. 사해의 물을 이용해 수많은 광물질을 추출해 내는 공장들이 시야에 매우 가깝게 들어온다. 마치 거대한 소금가루를 품어내듯 하얀 광물질 언덕이 수북이 쌓여 있다.

8. 여리고로 입성하면서

말로만 들었던 서안지구(West bank), 6일 전쟁 이후 확실한 이스라엘의 통치 안에 들어 와 있지만 지금 자치지구로 어느 정도의 자유를 느끼는 격동하는 역사의 현장에 들어 서니, 이스라엘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그리고 여리고로 들어 가는 지역에서는 아랍인이 check point 에서 우리를 조사하는 모습이 이 지역의 긴장(tension)을 대변해 주는 듯 하다.

40년 동안 유리방황하던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탁월한 영도력 하에 제일 먼저 입성한 성이 여리고 성이 아닌가? 출애굽의 경로에서 가나안 입성까지 모든 행로가 너무나 성경의 여정을 닮았다고 주장하면 억지일까?

적어도 내 눈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걸음이 과거의 성경 시대와 역사의 격변기와 미래의 예측까지 다 보여주는 그러한 여행이라고 믿어진다. 이제 우리는 여리고 입성을 계기로 놀랍고도 감격스러운 새로운 중보 기도의 현장을 체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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