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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7일 21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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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경 전도사와의 만남
전남 신안군은 전국 시 군 가운데 복음화율 35%로 단연 최고입니다. 거기다 증도면은 95% 복음화 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120년 전 증도란 척박한 섬마을에 문준경이란 아이가 태어났고 결혼했다가 남편에게 소박맞아 쫓겨났습니다. 

죽을 곳을  찾다가   어떤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부흥집회에서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곧바로 신학교에 뛰어 들어가서 여전도사가  됩니다.  그리고  첫 번째 교회를 세우는데 결혼했다 쫓겨난 임자도란 섬에다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문준경 전도사 때문에  예수 믿고  신학을 하고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수많은  그분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C. C. C.를  창립한  김준곤 목사를  비롯하여  한신대 전 총장 고재식박사  치유상담의 권위자 정태기교수 기성 회장을 역임한 이만신목사  같은 교단 총회장을  한 이만선목사, 이봉성목사 등입니다  문전도사는 6.25 3개월 만에 주변의 만류도 뿌리치고 목포에서 증도로 돌아갑니다.    

이유는 내 양들이 다 거기 있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목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증도에 들어간 날 붙잡혀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사형장에 3명이 끌려 나왔는데 문전도사의 그때 나이가 60세 이었습니다. 

세 마디를 하는데 여기 두 사람은 살려주시오.  죄가 있으면 내가 있지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두 번째 내가 대표로 죽을 터이니 우리 교인들은 손대지 말아 주시오.  그리고 세번째 나를 죽이려고 하는 당신들도 예수 믿으시오 세 마디를 남기고 마을 앞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했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습니다. 

60년 전 문준경 전도사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부활 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목회뱅크에서의 문준경 전도사의 발자취를 따라 보기도 하고 증도를 찾았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었더니 열매가 맺혔는데 증도 사람이 거의 다 예수 믿고 문전도사의 발자취를 그려보기 위해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증도를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출신 교단인 성결 교단에서는 문전도사 신앙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증도에 36억 원을 들여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관을 건축하려고 부지를 마련하고 설계를 시작했으며 내년 초에 건축을 시작 한다고 가이드는 설명 했습니다.

한사람이 일생을 불같이 예수를 위해 살았더니 신안 일대에 수많은 복음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는 60년 전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 부활하여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있음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살다가 무엇을 남기고 갈 것입니까?  
 
증도를 방문한 날 문준경 전도사님이 저에게 질문한 말씀입니다.
이동춘 목사(익산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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