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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따온글: 루시퍼와 갈보리 2013-09-17 10:11:04
작성인
정 요셉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조회:1266     추천:100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9 >
 
 
 글쓴이 : 관리자
 

 

 

 

 

 

 

0040. 『루시퍼』와 갈보리   

전 성경을 통하여 단 한번 언급된 루시퍼 (사14:12)와 갈보리 (눅23.33, Calvaria-Lat.)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타이틀인 ‘계명성’과 천주교와 프리메이슨들의 성골숭배(聖骨崇拜) 사상의 대상인 ‘해골’로 대체 시켜놓은 현대판 성경들. 흠정역성경(AV/KJV)-컴퓨터 학자들에 의해『프레쉬-킨케이드』영어등급시급표(Flesch-Kincaid Grade Level Indicators)를 사용한 연구결과, 흠정역성경(AV/KJV)이 다른 모든 현대역본성경들보다 훨씬 읽기가 쉬운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아이들이 힘든 성경을 들고 쉽다고 속고 있는 것이다. 흠정역성경에는 고어(古語, archaic words)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판 성경들은 흠정역 성경보다 더 어려운 고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밴스(L.M. Vance)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NIV가 사용하고 있는 고어는 모두 281개이며 그 중 61개는 흠정역의 고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흠정역에도 없는 어려운 새로운 고어를 220개나 사용하고 있다.
 
현대에 부합하는 ‘신(New-)기독교’를 주장한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영향하에 20세기에는 온갖 종류의 신(New-)성경들이 쏟아져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해온 자들의 악한 열매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혼란 중에 있다. 평생을 피땀으로 일으켜온 농장, 생명처럼 아까운 가축들을 불태우고 허탈감에 빠진 상심한 농민들, 작년에만도 50명이 넘는 영국 농민들이 자살을 하였다. 나라에 광우병을 몰고 온 주범들이 성경번역자들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영국의 1904, 1995년의 재앙은 정확하게 ‘새로운’(New), 그러나 조잡한 성경의 출간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성서공회나 신학교에서 가르친다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하고 생각하실 것이다.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성서신학(신구약, 본문비평), 역사신학, 조직신학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어 있는가하는 문제는 ‘천주교회’가 성경에 무엇으로 언급되어 있는 가를 바로 알기 전에는 그 해답을 얻기가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천주교의 교리, 천주교회법, 제2바티칸 공회의 목적 등을 알기 전에는 성경의 어디가 변개되어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게 되어있다. 조직신학을 철저하게 했다는 교계지도자들이 미국/캐나다성서공회가 발간하고 있는 현대판 성서(CEV)에 ‘은혜’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를 않는데도 놀라지도 않을뿐더러 이에 대해 유구무언이다.

NIV 성경 가지고도 구원받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악을 쓰는 사람도 있다. 성경은 구원만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아니며(딤후3.16,17), ‘배도자들이 만든 성경’을 쥐고 구원은 커녕, 어떻게 배도자가 안된다고 장담할 수가 있는지? 더군다나 7만개가 넘는 중요단어를 삭제하고, 360 여군데가 넘는 곳에서 교리변경을 해놓은 성경을 쥐고서 어떻게 바른 신앙을 기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NIV성경의 판권자인 호주인 머독은 천주교인이요, 130여개의 신문과 20세기 폭스사, 음란한 TV쇼를 만드는 Fox 방송의 경영주이다. 이 거짓된 NIV성경을 구입할 때마다 동성연애 지지서적과 음란 비디오를 만드는 자의 기업에 돈을 보태주고 있는 것과 같다. ‘학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라’는 예수회의 구호에 매수당하여 고의로 성경을 변개, 악을 조장하는 불신학자들도 있다. 신학교가 Bible Teachers가 아닌 Bible Critics들로 차 있으며, 가공할 파괴자들은 실제로 경건을 가장하고 우리네 성서공회, 신학교에 비밀리에 잠입, ‘성서비평/본문비평’이란 미명하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있는 ‘본문비평 테러분자들’(textual terrorists)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변개가 나라의 재앙과 직결되어있는가를 보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진저”(마13:43). - (* 흠정역 성경에는 두 종류가 있으며 Oxford 계열이 아닌 ‘Cambridge 1769 Text’가 더 정확함.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으나 웹사이트 www.BibleForToday.org (BFT@BibleForToday.org)에 들어가시면 『The Defined King James Bible』 10여 종류를 구입할 수 있음.)

0041.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다서 3)

유럽 도시들의 그랑 쁠라스 (Grand Place, 시청광장)로 불리는 지역은 주위의 건물들과 광장의 하나하나씩 박아 심은 돌(cobblestone)들로 아름답다. 광장에 설 때 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500여년 전에 또는 오랜 기간을 두고 수많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천주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선고받고 화형당한 곳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 많은 좋은 책들도 불태움을 당했으며 그 연기가 1년 내내 하늘을 흐리게 만들었던 지역이다. 신앙으로 인하여 화형당하는 성도들을 어린시절부터 직접 보고 자란 세대가 커서 번역한 성경이나 주석들은 오늘 날 헤리 포터 류의 조잡한 책들을 보고 자란 세대가 만든 성경이나 주석과 비교한다면 바로 생명과 사망의 차이이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유다서 3)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다. 믿음의 도는 성도들(saints)에게 주어졌지 학자들(scholars)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사단은 복음의 본질을 파괴, 복음의 종교화 작업을 위해 늘 학자들을 동원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즉 악의 병기로 쓰임받는 학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청교도들이나 종교 개혁자들의 책이나 주석들을 많이 접하기를 권하는 이유는 현대인들의 책은 본문설정부터가 잘못 되어있고, 핵심이 될만한 것들을 일부러 애써 피해가면서 애매모호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요한계시록 17-18장에 와서는 그 비겁함이 절정에 달한다. 

0042. 『존 낙스』『오스월드 챔버스』『아담 스미스』

영국 웨일즈를 떠나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Edinburgh)모임도 마치고 존 낙스 생가와 오스월드 챔버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무명의 신학교로 옮겨가기 전에 다녔던 에딘버러 대학도 구경했다. 구도(Old town)중심가로 들어가니 아담 스미스(Adam Smith)동상이 서 있다. 로마교황청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하였던 그는 필자를 내려다 보면서 ‘이렇게 급하고 어지러운 세상인데 지금 무얼하고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 같아 속으로 ‘알겠습니다’하고 동상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0043. 1948년에 일어난 6대 사건

성경의 3대 예언 - ①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②이스라엘의 건국 ③그리스도의 재림 - 중 두 번째 예언은 2000여년 동안 나라없이 유리하던 유대인들이 옛땅 고토에 돌아와 나라를 세움으로써 성취되었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동시에 세상은 ‘더’ 어지러운 세상이 되었다. 문명의 토대가 흔들리는 대사건들, 쓰나미 등등의 천재지변들, 난리와 난리의 소문 등등... 하나님께서 직접 종말론 강의를 하고 계신 시대가 되었다. 울면서 태어나고 평생을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다가 죽을 때는 실망하면서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tax)’뿐이라는 말도 있다. 죽음으로 인해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게 된 인생이나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확실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변하는 세상에서도 변치 않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16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신학자였던 빠스깔(Blaise Pascal, 1623~62)이 ‘우주의 중심은 태양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고 언급한 진리를 우리는 힘을 기울여 들어야 한다.

1948년에 일어난 6대 사건은 -
1) 이스라엘의 건국
2) 컴퓨터 시대(Computer Era)의 시작
3) WCC(New Age Movement) 출범
4) 국제연합(UN / New World Order) 결성
5) 구주공동체 (EC-European Community / 『바티칸』의 유럽) 결성
6) 신(新, New-) 복음주의의 시작
등이며 이 역사배후의 실세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살다간 아담 스미스 같은 선진들의 도움말들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0044. 약대와 하루살이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20세기 말엽의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될 배도(살후 2:1-8)는 기독교와 천주교를 구분하지 못하여, 사단이 수천 년을 해온 수법(手法) “대화로 풀어보자”는 등의 소리에 속아 천주교와의 일치운동에 빠진, 하나님보다 더 선한 체하며 감상적이고도 낭만적(?)인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양들을 이끌고 이리의 소굴에 들어가는 것으로 그 절정을 이룰 것이다. 저들의 미소 뒤에 숨겨진 칼을 보지 못하는 소경된 지도자들은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표현대로 “적응, 타협의 명수”로 둔갑하였고, 한국기독교 100년사에 한국교회는 로마화(化), 즉 바벨론화의 재난에 처해있다. 오늘날 기독교를 한 장의 그림으로 그린다면, 기독교란 아파트에 가만히 들어온 침입자(사단의 에큐메니즘 세력)에 의해 아파트가 붕괴되려는 직전에 놓여있는데도 그 아파트에 들어 살고 있는 주민(교단 및 개교회들)들은 자기방 하나 꾸미기에 여념이 없어, 이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는 그림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결을 원치 않는다. 타(他)종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검은색을 검다고 힘주어 말할 때, 사단의 세력은 부정적인자, 종교적 완고주의자로 몰아 부친다. 그리고는 검은색을 희다고 거짓된 주장을 하는 진정한 완고주의자가 때로는 논쟁에 승리하기도 한다. 인간이란 언제나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며, 비열한 인신공격은 결코 그리스도인다운 행위로 간주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단지 인류를 기만해오고 있는, ‘한 몸에 두 혼’(종교와 정치)을 공유한 바벨론 조직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가 주장하는 그 엄청난, 가공할 교리들과 그 끔찍한 과거의 역사 앞에 어찌해서 벙어리가 되었는가? 사단의 최대 보루(堡壘)인 천주교에 무지, 그 결과로 하루살이 이단들은 걸러내고 오히려 이단들의 어미, 초대형이단(Super-Cult) 천주교(약대)는 삼키는 일치운동에 깊숙히 빠져있다. 또 입을 열어야 할 종들이 이 모양 저 핑계로 입을 다물고 있어, 요한 12:42~43의 말씀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는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지도자가 죽어도 흩어지지 않는 이단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교회를 더 철저히 파괴하는 자들은 실제로 교회 안에서 요직을 잡고 있는 이러한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임을 알아야 한다. 먼저 교회 안을 급히 돌아다 볼 때가 아닌가? 바울이 배설물로 여긴 것들을 가지고, 단순하고도 순전한 복음을 요란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스스로 지혜롭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을 점검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없이 멀리 떠나와, 이제는 바벨론 종교를 답습, 저들의 행위와 같다보니 저들이 변한 것으로 착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변한 것은 천주교가 아니라 기독교이다. 천주교와 일치운동에 빠져있는 자칭 기독교 지도자들과,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 믿고 있는 천주교도들은 성경과 로마카톨릭주의 이 모두를 오해하고 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자처하면서, 우리 주님이 빛과 어두움을, 생명과 사망을 갈라놓은 것처럼, 옛 선지자들의 기개를 가지고 참과 거짓을 갈라놓지 않는다면, 양(羊)들은 여전히 방황하게 될 것이다.

0045. ‘로마카톨릭교회는 마귀의 최대의 걸작품이다’

로마카톨릭교회는 바티칸의 베드로 광장에 바벨론 종교의 심벌인 오벨리스크를 세우고, 꼭대기에 세계통치를 꿈꾸었던 시이저(가이사)의 재를 담은 청동지구본을 올려놓았다.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로 자처, 지상의 세속통치권을 주장해온 로마제국의 후예들은 그 재 위에 십자가를 세우고 세속권세를 추구해왔다. 천주교 사제 플레쳐(Philip Fletcher)는 그가 편집하는 천주교 기관지에서, ‘만일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아니면, 그는 적(反) 그리스도임이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일명, 이그나티우스 사제로 불렸던 스펜서 (Hon.G.A.Spencer)경은 ‘로마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면, 그것은 마귀의 걸작품이다. 그 중간이란 있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로이드 존스(D.M.Lloyd Jones, 1899~1981) 박사는 그의 시리즈 설교 “마귀의 궤계”(엡6:11) 중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로마카톨릭교회는 마귀의 최대의 걸작품이다. ... 로마카톨릭교회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로마교회(천주교)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semper eadem). 어떻게 변할 수가 있는겠는가? 만약 로마교회가 변한다면 스스로 과거에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로마교회는 같은 모습으로 남는다...만약 하나의 거대한 세계적인 교회가 있다면, 로마교회가 다른 모든 교회를 흡수하고 무지한 그들을 삼켜버릴 것이다’.

그는 1969년 영국복음주의협회에서 행한 메시지에서 고전14:8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라는 말씀을 인용, 경고의 나팔을 울려야 할 것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또, 한 기고문에선 ‘단순히 예수께 나오세요,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라고 설교하는 기독교는, 로마(종교)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복음주의 전도캠페인을 벌리는 사람들이, 『당신은 천주교인이세요? 당신의 교회로 돌아가세요』라고 한다면, 그 전도자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옥스포드 대학 출신인 고전어(古典語)학자이자 영국왕실의 헨리 8세의 주치의로서, 완미한 로마카톨릭교도로 말년에는 로마교회 사제로 서품(敍品)을 받았던 리나크러(Thomas Linacre, 1460~1524)는 생전에 처음으로 신약성경을 읽다가 견디지 못해 책을 던지면서, ‘이 성경이 사실이 아니든지, 아니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부르짖었다. 그는 첫 눈에 로마교회의 조직이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기독교회의 개념과는 상반되는 것임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스페인의 로욜라 심리연구소 창설자로서, 세계천주교심리학자 및 정신병학자모임의 국제위원회 부회장이라는 요직을 겸하고 있었던 전 예수회 사제 신학자 파드로사(Luis Padrosa)는 기독교 신학자들과의 신학논쟁 준비를 하기 위해 성경을 상고하다가 거듭난 후 로마교회를 떠났다. 1950년대 전 유럽에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후에 복음주의교회 목사가 된 그는 여러 책을 집필하였고, 기독교와 천주교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기독교는 기독교이다. 천주교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 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찬송가147 / 주 달려 죽은 십자가 ④)

구영재 선교사 [KOO,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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